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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미 대법, 만장일치로 "대선 선거인단 '배신투표'하면 처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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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는 미국에서 선거인단이 지역 유권자의 의사에 반해 투표해서는 안된다고 미 대법원이 판결했다. 미 대선은 유권자들이 전국적으로 투표한 뒤, 각 주(州)별 선거인단이 자신의 주 선거 결과를 대표해 대통령 후보에 표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해 전국 단위로 대선 투표를 진행하기 어려웠던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일종의 요식행위다. 그런데 이 같은 ‘민의(民意)’에 어긋나는 투표에 문제가 제기되며 소송까지 번지자 대법이 판결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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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대법원 앞에서 보도진들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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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대선 모두 10명이 ‘배신투표’

미 CNN 등 외신은 6일(현지 시각) “대법원이 이날 각 주는 대선에서 해당 주의 투표에서 승자로 선정된 후보에 표를 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선거인단을 처벌할 수 있다고 9 대 0 만장일치로 판결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선거인단 배분에 득표율을 감안하는 메인과 네브래스카를 제외한 나머지 주는 한 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플로리다주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49.02%,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47.83%로 박빙이었지만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29명은 모두 트럼프 후보가 차지했다. 반면에 뉴욕주에서는 23% 포인트가량 앞선 클린턴 후보가 29명을 모두 휩쓸었다.

그런데 주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해야 할 선거인단이 이에 반해 투표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2016년 대선 당시 텍사스주에서는 트럼프가 52.23%를 얻어 43.24%를 득표한 클린턴을 압도해 주에 할당된 38표를 다 받아야 했지만 정작 결과에서는 36표에 그쳤다. 이른바 ‘신의 없는 선거인(Faithless Elector)’들이 배신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한 선거인은 대통령에는 론 폴 전 텍사스주 하원의원, 부통령에는 마이크 펜스를 뽑았고, 다른 한명은 당시 오하이오 주지사였던 존 케이식과 HP CEO를 지낸 칼리 피오리나를 선택했다. 반면 클린턴이 승리한 하와이에서는 한 선거인이 정·부통령으로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에 투표했다. 이같이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10명이 ‘배신’을 하면서 애초 306대 232였던 선거 결과는 최종 304 대 227로 끝났다.

32개 주와 워싱턴DC에는 이같이 ‘신의 없는 선거인’을 막는 법이 있기는 하지만 2016년 대선까지 투표 결과에 따라 처벌을 받거나 선거인에서 해임된 경우는 없었다. 이날 대법원은 “헌법과 역사 모두는 선거인단이 주 유권자가 선택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선거인은 수백만 시민의 투표를 뒤집을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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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법원 앞을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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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 의견 후폭풍 우려한 듯”

해당 판결은 지난해 워싱턴 주 정부가 배신투표를 한 선거인단에게 각각 1000달러(약 120만원)를 벌금으로 부과하자 이들이 자유로운 투표를 주장하며 소송을 내면서 이뤄졌다. 당시 워싱턴주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54.3%를 얻어 모든 워싱턴주에 걸린 선거인단 12명을 모두 가져가야 했지만 3명은 대통령으로 공화당 소속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뽑았고, 한 명은 원주민 활동가 페이스 스팟 이글에게 표를 줬다. USA투데이는 “이들 민주당 선거인단의 목표는 전국 득표에서 뒤진 트럼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현행 선거인단 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클린턴이 승리한 콜로라도에서도 한 선거인이 클린턴 대신 존 케이식 지사를 뽑았다.

앞서 콜로라도주 덴버 항소법원은 선거인들이 주별 선거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투표할 수 있다고 판결했지만, 워싱턴주 대법원은 주 정부의 벌금 조치가 정당하다며 주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스티브 블라덱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NN에 “해당 판결은 놀랍지 않지만, 만장일치라는 점은 놀랍다”며 “반대 의견이 낳을 결과에 대한 우려가 대법관들을 일치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조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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