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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슬람 예술의 백미… 바람도, 햇살도, 건축에 녹아들다 [박윤정의 hola!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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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그라나다 / 아치형 건물·대리석 기둥 / 공간미학의 절정 보여줘 / 기독교 손에 넘어간 후에도 / 문화적 유산 그대로 보존 / 정원 산책로 곳곳이 그늘 / 알 카사바 요새 ‘벨라의 탑’ / 궁전 내부·시내전경 한눈에 / 황금빛 물드는 풍경에 젖는 /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 기타의 선율 더욱 애잔하다

세계일보

어둠 속에서 아련히 불빛으로 치장된 알람브라 궁전은 달빛을 거두고서야 쓸쓸함을 담은 민낯으로 새벽을 맞는다. 달빛과 조명으로 화려함을 더하던 알람브라를 방문하기 위해 서둘러 아침을 시작한다. 이른 아침 언덕 아래로 좁은 길 따라 내려오니 작은 카페가 보인다. 이것저것을 팔고 있는 가게는 우리네 옛 복덕방 같은 분위기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는 동네 사람들 틈에 나도 현지인처럼 자연스레 어울려 본다.

세련된 인테리어도 간편한 테이크아웃도 없지만 이른 아침 카페로 모여든 사람들은 간단한 빵 한 조각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는 출근길을 서두른다. 사람들 틈에서 커피를 주문한 후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라나다는 무어인들과 기독교인들 밑에서 수세기 동안 중요한 문화 중심지였다. 그 문화적 유산이 집약되어 있는 알람브라 궁전과 그 내부에 자리한, 왕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Generalife), 그리고 궁전의 주위를 둘러싼 알바인 지구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알람브라 궁전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아침 햇살에 더욱 불그스름해진 언덕길을 오른다. 궁전에 가까워질수록 관광객이 더욱 많아진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진 알람브라 궁전은 그라나다를 한눈으로 바라보는 구릉 위의 좁은 부지에 세워져 있으며 견고하게 쌓인 벽과 13개의 타워로 보호되고 있다. 크기는 가로 세로 130m와 182m에 불과하지만, 변화가 많은 아치, 섬세한 기둥, 벽면 장식 등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미술의 진수가 집약되어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내궁인 나스르 궁전과 여름 별궁이었던 헤네랄리페 궁전, 성을 보호하기 위한 알 카사바 요새 등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슬람 예술의 백미는 단연 나스르 궁전(Nasrid Palace)이라고 할 수 있다. 알람브라 궁전 중 유일하게 관람객 수가 제한되는 곳이며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증을 받은 사람만이 시간에 맞춰 입장이 가능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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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르 궁전(Nasrid Palace). 알람브라 궁전은 내궁인 나스르 궁전과 여름 별궁이었던 헤네랄리페 궁전, 성을 보호하기 위한 알 카사바 요새 등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기독교의 손에 넘어간 뒤에도 정중하게 보존되었다고 한다. 정치적 이유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경이로운 이슬람 문화의 아름다움을 현재까지 이어지게 한 당시의 판단이 고마울 따름이다. 궁전은 18세기에 황폐되기도 하였으나 19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나스르 궁전으로 가기 위해 바코드가 찍힌 입장표를 보여주고 줄을 따라 입장 순서를 기다린다.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고 관람 순서에 따라 걸음을 옮긴다. 기대거나 만지지 말라는 부탁이 반복된다. 궁전의 내부는 훼손에 민감한 마음이 이해될 정도로 경이롭다. 무어인 출신의 시인들이 말한 ‘에메랄드 속의 진주’라는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건물의 반짝이는 광채와 고급스러운 배경은 바람에 실려 오는 오렌지 향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내부 대리석 기둥과 아치형의 건물은 공간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투명하게 드러나는 천장 아래에서 햇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시간의 흐름과 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크림색 공간에 파랑, 빨강, 금빛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에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쳐다본다.

외부 공간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알람브라가 건물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복합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가지를 이어 그늘을 제공한다. 산책로 곳곳의 시원한 그늘에서는 왕과 귀족들이 정사를 논하는 정치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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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는 건물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복합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가지를 이어 그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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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르 궁전은 유일하게 관람객 수가 제한되는 곳이며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증을 받은 사람만이 시간에 맞춰 입장이 가능한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신하들의 거처 역할을 했던 나스리드 건물들을 지나면 아름다운 직사각형의 뜰과 수많은 분수가 있는 알 카사바 요새가 나온다. 요새는 나스르왕조를 열었던 무함마드 1세가 기독교 세력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람브라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요새 중앙에는 궁전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벨라의 탑(Torre de la Vela)이 보인다. 탑에서는 알람브라 궁전 내부와 알바신 지구뿐 아니라 그라나다의 중심부 일대까지 수려한 경관을 지켜볼 수 있다.

무어인이 장식한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무늬와 종유석 모양의 세밀하고 방대한 장식을 가진 아치와 기둥, 각종 수로와 수변의 아름다움, 담담한 벽의 대비 등을 지켜보며 알람브라 궁전이 이슬람 예술의 절정이라는 말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날 전형적인 기독교 문화권이 된 도시에서 이슬람 예술의 절정을 마주하고 보니 인류문화 존중과 보존의 가치가 새삼 더 중요해지는 듯하다. 이슬람교의 도시인 이스탄불에서 동방정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며 보존되어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을 마주했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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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유산이 집약되어 있는 알람브라 궁전과 그 내부에 자리한, 왕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Generalife), 그리고 궁전의 주위를 둘러싼 알바인 지구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궁전을 나서며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가인 프란시스코 타레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휴대전화로 찾아 들어본다. 음악은 더욱 애잔하고 알람브라 궁전은 저물어가는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음악은 더욱 아름다운 선율로 가슴에 스며든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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