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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터뷰②]이봉근 “엄했던 父, 지금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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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투데이

엄했던 서예가 아버지는 이제 이봉근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제공|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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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새로운 꿈에 대한 이야기에 첫 번째 꿈, 아니 그의 본업 ‘소리꾼’에 대한 얘기가 궁금해졌다. 반전의 반전의 연속,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춘향가’, ‘흥부가’의 발상지, 전라북도 남원 출신. 서예가 집안의 아버지 역시 서예를 하셨다. 그러나 자신은 “왼손잡이에 악필”이라며 재치 있게 운을 뗀 이봉근은 “사실 나는 꿈을 적극적으로 꾸던 아이가 아니었다. 수동적이었다. 다만 서예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버지의 상심이 크셔서 본인께서 취미로 배우고 계셨던 판소리를 내게 권유 하셨다. 남원은 판소리 배우기가 아주 쉬우니까. 국립국악원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잘 따르다 보니 지금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외였다. 스스로 시작한 꿈이 아니었다는 게. 그는 “처음부터 내 꿈은 아니었다. 사실은 정말 싫어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싶기도 했다”면서 “판소리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성취감이다. 테크닉을 습득할 때마다 성취감이 있었다. 어느 날 ’이게 됐다’ 하니까 너무 뿌듯하고 점점 더 잘하고 싶고, 그러면서 판소리의 매력을 찾게 됐다”고 털어놨다.

“변성기가 지난 상태에서 접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어요. 배우는 과정에서 나름 시련도 있었고, 고민도 있었는데 대학교 때 처음 무대에 공연을 하고 나서 진심으로 판소리를 사랑하게 됐어요. 어떤 희열감 때문에. 너무 좋아서 손을 벌벌 떨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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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근은 "‘소리꾼’ 개봉을 가장 기뻐하는 아버지가 극장용 플래카드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제공|리틀빅픽쳐스


아버지와의 관계를 물으니, “복잡하다”며 여느 아들처럼 답한다. “가깝고도 멀고 단절도 있었고 굉장히 복잡한 관계였다. 그 경계가 무너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도 했다.

“어느 날인가, 어떤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슬퍼보였어요. 용기를 내 손을 잡았는데 아버지가 부들부들 떠시더라고요. 한 시간 정도를 그런 채로 시장을 돌아다녔는데 아버지가 처음으로 ‘술 한 잔 할래?’라고 하셨어요.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지금은 정말 많이 자랑스러워하시고 좋아하신다.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고, 내 스케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괜히 전화하셔서 ’응, 뭐한다고 했지? 어디 나온다고 했지?’라고 물어보실 때가 있다. 그럼 옆에 친척 분들이 계신 것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엄청 좋다. 하루에 두번 통화하고 손을 잡고 걷기도 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어 “걱정되는 건 남원에 영화관이 딱 하나 있다. 아버지께서 그 앞에 플래카드를 거실 것 같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만드셨다고 하더라. ‘남원의 아들’이 됐다”고 밝혀 좌중을 폭소케 했다.(인터뷰③에 계속)

kiki2022@mk.co.kr

제공|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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