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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엄마와 배 속서 숲 교감… 수목장은 친환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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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답(答)을 찾다]요람에서 무덤까지

동아일보

산림청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삶을 마감한 뒤까지 인간의 생애 주기별로 산림복지 서비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왼쪽 사진부터 숲 태교를 하는 젊은 부부와 대표적인 산림레포츠인 산악자전거, 경기 양평에 있는 국립수목장림인 하늘숲추모원.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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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충남 서천군 종천면에 있는 국립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 김자영 씨(33)는 남산만큼 부풀어 오른 배를 양손으로 감싼 채 남편과 해송 숲길을 걷고 있었다.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를 들려주려고 왔어요.”

8월 초 출산 예정인 김 씨는 “숲속에 오면 태아의 발길질도 늘어난다”면서 “아이도 맑은 공기와 자연의 소리에 신나하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최근 온라인에선 한 50대 여성이 쓴 ‘아빠의 병상일기’가 잔잔하지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부친을 경기 양평군에 있는 국립하늘숲추모원에 수목장(樹木葬)으로 모셨다고 한다. 병상에 있던 아버지에게 추모원의 나무를 보여줬더니 흔쾌하게 허락하셨다는 내용. 그는 글에서 “아빠는 천 개의 바람이 되셨다. 보고 싶을 때 쪼르르 달려간다. 굿바이, 아빠”라고 썼다.

이처럼 숲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걸 인간과 함께할 수 있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하는 숲

산림청이 ‘생애(生涯) 주기별 산림복지’ 개념을 도입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출생부터 유아기, 청소년기, 중·장년기, 노년기, 회년기까지 생애주기 단계별로 산림의 혜택을 누리게 한다는 개념이다.

숲과의 첫 만남은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숲 태교가 임신부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줄이고 무력감을 개선하며, 행복감과 태아에 대한 애착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그동안 수차례 발표됐다.

이에 산림청은 숲 태교를 정책의 주요 과제로 삼고, 이인숙 서울대 교수(간호대) 연구팀과 숲 태교 표준 프로그램 및 매뉴얼을 개발해 보급한 바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숲의 경관과 소리, 향기, 피톤치드, 음이온 등 산림의 환경 요소를 활용해 임신부와 태아의 교감을 돕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청은 또 “2018년 숲 태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3800여 명에 대한 만족도 조사 결과 100점 만점에 90.8점이란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전국 치유의 숲과 산림시설 등에서 체계적으로 진행해온 숲 태교 프로그램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재개할 예정이다.

○ 중장년, 숲 레포츠 이용객 증가

“당신은 숲을 어떤 목적으로, 누구랑 이용하십니까?”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달 발표한 ‘국민 산림휴양·복지활동 실태조사’ 결과는 주목받을 만했다. 지난해 8∼10월 전국 19세 이상 1만18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었다. 조사 결과, 20대는 산악마라톤 등 활동적인 산림 여가 활동을 선호했다. 반면 60대 이상은 숲길 걷기 등 차분한 활동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친구나 연인, 30, 40대는 가족이나 친지, 50대 이상은 단체나 동호회와 함께 산림 활동을 했다.

산림 레포츠는 세대를 통틀어 즐기는 인구가 해마다 늘고 있다. 산림청은 물론이고 각 지방자치단체도 최근 산림레포츠 시설을 앞다퉈 조성하고 있다.

경북은 최근 문경에 ‘국립산림레포츠진흥센터’ 설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체계적인 산림레포츠 시설 조성과 관리, 전문인력 양성, 교육 등을 담당하는 전문기관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다. 충남도 2037년까지 치유의 숲 등 11개 사업에 4008억 원을 투입해 산림복지와 휴양시설 72곳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산림레포츠 시설 3곳이 포함돼 있다.

산림복지진흥원은 산림레포츠에 관심 있는 국민들을 위해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산악자전거와 산악마라톤, 산악스키, 산악승마, 암벽등반, 오리엔티어링, 패러글라이딩 등이다. 최근에는 산림레포츠 활성화를 위한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도 국회를 통과했다.

이창재 산림복지진흥원장은 “산림복지 서비스를 다양한 계층, 다양한 취미활동을 가진 사람들이 적절하게 받을 수 있도록 촘촘한 복지 사이클을 구축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목장

수목장은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형식의 대표적인 장묘문화다. 기존 매장 방식이 아니라 고인을 화장한 뒤 골분(骨粉)을 나무 밑에 묻어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전국의 묘지 면적은 약 1025km². 국토의 1%가 넘는 땅으로, 국민 주거 면적인 2646km²의 38.7%에 이를 정도다. ‘죽은 자’가 ‘산 자’의 공간을 3분의 1 이상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화장 비율은 1994년 20.5%에서 2001년 38.5%, 2018년 84.6%로 계속 증가해 왔지만, 묘지 면적은 해마다 여의도 면적만큼 늘고 있는 추세다. 출생률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연장 문화 확산은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 양평군에 있는 국립하늘숲추모원은 국내에서 처음 조성된 공공 수목장이다. 2009년에 개원한 이곳은 소나무와 잣나무, 참나무 등 6315그루의 추모목이 있다. 현재 6315명의 고인이 모셔져 있으나 포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최대 10위까지 안치가 가능한 가족목은 등급에 따라 15년 사용료가 220만∼230만 원. 사설공원묘원 수목장의 30∼40% 수준이다. 공동목은 15년 사용료가 71만∼73만 원 정도다. 사용 기간 15년은 세 차례 연장이 가능해 최대 6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추모원 주변에 양평 치유의 숲과 산음자연휴양림, 용문사, 양평곤충박물관 등 볼거리도 많다. 추모의 시간과 여가의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추모원 관계자는 “최근 수목장림에는 가족 단위로 방문해 도시락을 먹고 책을 읽고 심지어 반려견까지 동반하는 등 수목장림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했다. ‘아빠의 병상일기’를 쓴 여성도 “다음엔 아빠를 만난 뒤 캠핑 장비를 꾸려와 야영하고, 근처 월정사 상원사까지 다녀오면 좋겠다”고 했다.

산림청은 2022년 충남 보령시 성주면에 ‘기억의 숲’이란 이름으로 두 번째 국립수목장림을 조성할 계획이다.

박종호 산림청장은 “국민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숲 유치원부터 수목장림까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산림복지 혜택을 누릴 다양한 형태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산림복지 서비스를 더욱 늘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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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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