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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없는 사이코패스"...이춘재는 어떻게 악마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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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프로파일러 등 투입, 52회 접견조사

희대의 연쇄살인마 이춘재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다. 범행 피해자는 물론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3)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나 죄책감은 없었다.

경찰은 지난 1년 동안 수사 과정에서 이춘재를 52회 면담해 조사를 했다. 특히 그의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하기 위해 한번에 많게는 10명씩 프로파일러도 투입했다. 그 결과 “욕구 해소와 내재된 욕구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범행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군대에서 전역한 23세부터 강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범행을 시작해 불과 4년 7개월만에 연쇄살인 14건을 저질렀다. 여기에다 처제 성폭행과 살인까지 범행 목록에 채워넣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수사 초기에는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했다. 또 자신의 건강이나 교도소 생활만을 걱정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어머니와 친동생, 30대인 아들 등 사회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경찰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춘재가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된 과정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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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고교시절 졸업사진. /조선일보 DB

◇내성적이던 아이, 군 생활에 쾌감 느꼈다

이춘재는 1963년 1월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1호선 병점역과 신도시 개발로 일대가 온통 도시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 논밭이던 시골이었다. 농사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이춘재는 매우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초등학생 시절 동생이 물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표출하거나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았다. 이춘재의 학창시절 동창들은 “착한 친구, 말수도 전혀 없고 유령 같은 친구였다. 목소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도 “매우 조용하고 착했던 아이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20대 초반 군에 입대한 이춘재는 탱크를 직접 운전하는 기갑부대에 배속됐다. 경찰은 이때가 이춘재의 내재했던 무언가가 폭발했던 시기로 봤다. 자신이 탱크를 몰고 앞으로 향하면 뒤에서 다른 탱크들이 연달아 뒤따라올 때 굉장한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니 다들 나를 따라오는구나” 등 희열을 맛봤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군 시절을 회상하며 말할 때는 감정이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며 “오히려 살인이나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차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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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주 경기남부청장이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피해자 및 유가족 등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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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범행은 그가 1986년 1월 군에서 전역한 직후인 그해 2월에 벌어진다. 이때는 살인이 아닌 여성에 대한 성폭행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어 첫 살인인 화성 1차 사건을 1986년 9월15일에 저지른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이춘재는 군 제대 후 단조로운 삶 속에 쌓여 왔던 욕구 불만을 표출하고자 밤거리를 배회하며 돌아다녔다”며 “지나가는 여성을 살피며 범행 대상으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차 범행은 같은 해 10월20일, 3차는 같은 해 12월12일 등 잇따라 살인을 저질렀다. 내성적이던 시골 소년은 성인이 되고 난 뒤 시간이 갈수록 수법이 잔혹해졌다. 대상은 70대 노인부터 8살 아이까지 구분없이 무차별적이었다. 또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하는 등 가학적이고 엽기적인 범행으로 나아갔다. 그는 이후 결혼을 하고 범행을 중단했다. 그러나 1994년 1월에는 처제까지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그는 이 범행으로 검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해왔다.

◇교도관에게 “내 언론 보도는 어떻게 나와요?”

경찰은 이춘재 조사 과정에서 사이코패스 심리 테스트도 했다. 그 결과 상위 65~80%로 사이코패스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과시했다”고 말했다.

특히 세간의 관심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춘재를 독방으로 분리하고 언론 보도 등 외부 정보를 통제했다. 이춘재가 수사 정보를 알게 됐을 경우 이를 감안하고 대응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춘재는 주변 교도관에게 자신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어떻게 나왔는지 등 꼬치꼬치 캐물으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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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가 1995년부터 수감 중인 부산 강서구 부산교도소의 모습.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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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자신의 살인에 대해서는 기억이 또렷했던 반면 이외 주장한 강간 19회, 강간미수 15회에 대해서는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들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자신이 살았던 경기 수원과 화성, 충북 청주 등 일대에서 벌어졌던 미제의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상태다. 경찰은 지난해 9월 18일부터 지난 4월24일까지 이춘재를 조사했다. 지난달 5일 수원구치소에 생활하던 이춘재를 원래 생활을 해오던 부산교도소로 이감조치했다.

[조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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