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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故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았다" 철인3종 최숙현 일기장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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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숙현 선수 일기 [최 선수 가족 제공]


“그만 좀 괴롭히라고 소리치고 싶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 내가 니들한테 무슨 죄를 어떻게 지었길래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니.”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 선수가 생전 일기장에 남긴 글이다. 최 선수는 지난 26일 어머니에게 “그 사람들 죄를 밝혀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7~2019년 몸담았던 경주시청 소속 감독·팀닥터·선배 선수 2명을 모욕·폭행 등 혐의로 고소한 상태였다.

2019년 1~4월 작성된 최 선수의 일기장엔 운동 기록과 함께 폭언·폭행에 대한 압박감을 호소하는 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최 선수는 “마음이 불안하다. 집중할 곳이 필요해 글 쓰는 걸 선택해봤다” “힘들 때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며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유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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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어머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최 선수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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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복귀”→“눈물만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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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선수 일기 [최 선수 가족 제공]


지난해 1월 최 선수가 남긴 글에선 우울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는 최 선수가 스트레스로 약 1년간 운동을 쉰 후 실업팀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다. 오히려 다시 시작하는 운동에 대한 기대감이 담겼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화려하게 트라이(트라이애슬론) 복귀해보는 거야! 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내 목표를 이룰 거야” “숙현아 넌 할 수 있어 힘내자!” 등이다. “1월의 마지막 날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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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선수 일기 [최 선수 가족 제공]


하지만 최 선수는 같은 해 2월부터 스트레스를 호소하기 시작한다. 특히 살이 쪘다는 이유로 폭언을 들었다는 내용이 다수다. 2월 초 최 선수는 “멘탈 솔직히 와장창…다 모르겠다 나는 뭐지 몇백 그램 안 빠진 걸로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오늘 억울 그 자체. 물먹고 700g 쪘다고 욕먹는 것도 지친다”, “체중 다 뺏는데도 욕은 여전”, “K에게 욕먹었지만 어쩌겠어” 등의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3월 일기엔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운동하는데 사람을 버젓이 앞에 두고 욕을 하냐. 적당히 해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이 팀은 아니다” 등이다. 이 시기 녹음된 파일엔 감독과 팀닥터는 최 선수에게 “이를 꽉 깨물라” “벗어”라며 약 20분 동안 폭행·폭언을 하는 정황이 담겼다. 이후 최 선수는 “하루하루 눈물만 흘리는 중.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 줄 알았다”“감독 선배들은 자기들 아픈 건 엄청 아픈 거고 나는 아파서도 안 되는 건지 서럽고 서러운 하루다.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옛날 일 생각나…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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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선수 일기 [최 선수 가족 제공]


일기장엔 구체적인 가해 선수의 이름도 등장한다. 최 선수는 “A는 대놓고 욕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무시하지”라는 글을 남겼다. 최 선수와 같은 팀에 소속됐던 동료 선수는 “A선수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실력이 뛰어나 감독·팀 닥터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선수”라며 “A선수가 폭압적인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들다고도 토로했다. “아직도 너희를 보면 옛날의 일들이 다 생각난다. 잊히지 않는다. 잊고 싶다”는 내용이다. 같은 팀에 몸담았던 동료 선수는 “2016년 감독·팀닥터가 최 선수 등에게 토할 때까지 빵을 억지로 먹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선수는 “팀닥터는 최 선수가 없는 자리에서 ‘내가 그 선수를 극한으로 몰고 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선수는 “선배 선수도 ‘너 뒤져라’ 등 발언을 자주 했다”며 “선배 선수가 나를 옥상으로 끌고 가 뛰어 내라리고 협박한 적도 있다. 나는 이들의 폭언과 폭행 때문에 팀을 옮긴 상태”라고 말했다.



가해자 지목된 감독 “억울하다”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감독은 “우리 팀이 그렇게 싫었으면 1년 쉬고 다시 돌아왔겠냐”며 “폭언·폭행을 한 적이 없고 억울하다”고 했다. 또 그는 “팀 내 선수 간 폭언·폭행은 본 적이 없고, 선배가 후배 잘되라는 의미에서 조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일 공식입장문을 통해 “사건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대한 철인 3종 협회 스포츠 공정위원회를 통해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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