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천년의 마법, 한지] ① 교황청도 루브르 박물관도 반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루브르 "전주 한지 복원력·보존성 탁월"…세계기록유산 복원 재료로 각광

연합뉴스

전주 한지문화축제에서 전주 한지로 만든 옷 입고 런웨이 하는 모델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편집자 주 = 세계 기록문화유산 복원 재료로 전주 한지(韓紙)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교황청도, 루브르박물관도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전주 한지의 생명력에 매료됐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질기고 보존성이 뛰어난 고품격 복원지(紙)"라고 가치를 인정했으며, 전주 한지로 복원한 '고종황제와 바티칸 교황 간 친서' 복본을 받은 교황청도 반색했습니다.

연합뉴스는 오래된 유산으로서 해외에서 주목받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낯설고 소홀히 다뤄진 한지의 가치와 산업으로서 가능성, 세계화를 위한 과제 등을 짚어보는 3편의 기획 기사를 마련했습니다.]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전주산 닥나무 재료로 만든 전주 한지를 사용해 보니 질기고 복원력과 보존성이 뛰어나 기록문화유산 복원 종이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올해 2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에 있는 한지 제조공장을 찾아 직접 한지 뜨는 체험을 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자비에 살몽 학예장.

그는 전주 한지의 우수성을 이렇게 평가하며 '엄치척' 포즈를 취했다.

루브르박물관 전시·보존·복원 관련 총책임자인 자비에 살몽 학예장은 "오랫동안 지켜낸 고유의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전주 한지가 감탄스럽다"고 탄복했다.

그러면서 "전주 한지가 루브르박물관뿐만 아니라 세계 지류(紙類) 시장에 진출하는데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

막시밀리안 2세 책상 관람하는 김정숙 여사와 마크롱 대통령 부인인 브리지트 마크
[연합뉴스 자료사진]



루브르박물관이 한지에 관심을 보인 것은 2017년 전주 한지를 이용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1527∼1576) 책상의 부서진 손잡이를 복원하면서부터다.

이듬해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할 당시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순방 중 프랑스 대통령 부인과 함께 찾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귀한 유물인 막시밀리안 2세 책상 복원에 한지를 사용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 김 여사는 "아흔아홉 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는 한지의 부드럽고도 강인한 미덕을 전 세계가 아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루브르 박물관의 판화 등 다른 소장품을 복원하는데 우리의 전통 한지가 활용되고 있다.

전 세계 문화재 복원 중심지로 꼽히는 이탈리아와 교황청에서 한지를 활용해 소장 문화재를 복원하는 사례가 최근 점차 늘고 있는데, 이는 전주 한지의 역할이 컸다.

2017년 김승수 시장은 로마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 전주 한지로 6개월에 걸쳐 복원한 '고종황제와 바티칸 교황 간 친서' 복본을 바티칸 비밀문서고 책임자인 장 루이 브뤼게 대주교에게 전달했다.

연합뉴스

고종 황제 친서 복본 교황에게 전달하는 김승수 전주시장(왼쪽)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종황제와 바티칸 교황간 친서'는 1904년 고종 황제가 교황 비오 10세의 즉위(1903년) 소식을 뒤늦게 듣고 축하하기 위해 보낸 서찰이다.

이 문서에는 (교황이) 우리나라에 복을 빌어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바티칸 비밀문서고에 잠들어 있던 이 문서는 2016년 이탈리아 고문서 전문가에 의해 발견되면서 100여년 만에 전주 한지로 복원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김 시장과 동행한 정종휴 주교황청 대사는 복간된 고종 서한의 의미와 전주 한지 등에 대해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간략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본을 받아들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주시는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 있는 국제연합(UN) 유네스코와 전주 한지를 세계문화유산 보존 재료로 활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 'LOI(의향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교황 요한 23세 박물관이 소장한 둘레 4m짜리 지구본 복원에도 우리 한지가 사용됐다.

연합뉴스

한지로 복원된 교황 요한 23세의 지구본
[주 밀라노 총영사관 제공]



경남 의령 한지로 2017년 복원된 이 지구본은 1958∼1963년 재위한 교황 요한 23세의 주문으로 제작된 것으로, 교황 23세의 순례지를 포함해 당시 세계 가톨릭 교구가 표기돼 가톨릭 역사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지구본은 처음 제작된 지 50여년이 지나면서 일광과 난방열 등의 영향으로 표면이 심하게 훼손됐으나 평면적 유물과 달리 원형으로 돼 있어 복원에 어려움을 겪던 중 장력이 우수하고 곡선 면에서도 주름이 잡히지 않는 한지를 활용해 옛 모습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약 1년에 걸쳐 복원 작업을 이끈 이탈리아 지류(紙類) 복원가 넬라 포지 씨는 "다른 재질의 지류를 시험적으로 붙여봤지만 곡선 면에서 주름이 잡히는 등 문제가 발생했으나, 한지는 장력이 뛰어나 곡면에서도 완벽한 배접이 가능해 이런 문제점을 깨끗이 해결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지가 수십년 간 세계 문화재 복원시장을 독점해 온 일본의 화지(和紙)나 중국의 선지(宣紙)보다 치수(가공 처리 때 가로·세로 줄어듦의 비율이 낮음) 안정성과 장력, 복원성 등이 뛰어나 기록문화유산 복원 재료로 새롭게 인정받으면서 세계 곳곳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주 한지 만들기 체험하는 외국인 공무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승수 전주시장은 "천년을 이어온 전주 한지의 마법이 루브르 박물관의 빛바랜 보물들에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면서 "전주 한지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시장은 "세계 기록문화유산 복원 재료로 전주 한지가 세계 곳곳에서 활용되고 세계 지류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수 있도록 소홀했던 전문 인력 양성과 인프라 등을 확충하는데 전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ch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