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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선택과 집중' 택한 트럼프… 대선 전략 먹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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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진보 표심 잃어도 ‘백인·보수 똘똘 뭉치면 필승’ 여기는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은 4일 전쯤부터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던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에게 주방위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군병력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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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워싱턴D.C. 백악관을 나서 ‘대통령의 교회’라 불리는 인근의 세인트 존스 교회 앞에서 성경을 들고 서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힌 뒤 성경을 챙기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대동해 백악관 근처 교회를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을 찍기 위해 백악관 주변에 모여있던 시위대를 강제해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행동을 한 의도는 비교적 명확하다. 비록 통합보다 분열을 택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핵심 지지기반인 백인·보수·기독교층은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 인구 구성을 보면 히스패닉 백인을 제외, 백인 인구 비율이 60% 정도이나 유권자로 좁혀 보면 백인 비율이 70%를 넘는다.

다양한 인종을 끌어안는 대신 백인층 지지를 결집해 이들 표라도 확보하는 ‘선택과 집중’이 트럼프 대통령의 차기 대선 전략으로 보인다.

미국 CNN방송은 지난 2일 기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나라를 치유하거나 긴요한 개혁을 발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대학살’을 활용하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들을 비난하고 음모론을 유발하며 현재 위기를 무기화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향해 “나약함은 무정부주의자와 약탈자·폭력배를 이길 수 없다”고 비꼬았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나약하고 시위대는 약탈자이고 폭력배라고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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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 AP연합뉴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움직임에 군뿐 아니라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기를 들며 트럼프 대통차질이 생긴 점이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법 집행에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며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과의 마찰을 피하는 인사로 분류돼 온 에스퍼 장관이 군을 동원해서라도 시위대를 진압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한 것이다. 이에 더해 에스퍼 장관의 전임자인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 분열적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주변에 시위대가 몰려오자 지난달 29일 밤에 지하벙커로 피신했던 사실이 보도된 것 또한 역정을 낼 정도로 현재 시위와 관련한 상황이 최대 이슈가 된 데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대중적인 여론이 악화일로자 여당인 공화당에서조차 “11월 대선에서 그를 뽑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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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현지시간) 야간통행금지령 내려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경찰이 '흑인 사망'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AFP통신은 지난 4일 공화당 소속인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이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고심하고 있다”며 “(그 문제로) 오랫동안 고심해왔다”고 토로했다고 보도했다. 머카우스키 의원은 “매티스 장군의 말은 사실이며 정직했고 필요했다. 그리고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아마도 지금 우리는 마음에 품고 있던 우려에 대해 좀 더 정직해지고, 용기를 내서 신념을 말할 때에 다다른 것 같다”고 밝혔다.

장관 시절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견제와 균형’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고 손꼽히는 매티스 전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을 언급하며 머카우스키 의원도 이에 동조한다고 시사한 것이다.

WP는 이 발언에 대해 “머카우스키가 이날 작심발언을 하면서 ‘지난 몇 년간 끙끙 끌어안고 있던 고민을 마침내 털어내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며 “2002년 상원에 입성한 머카우스키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으로 그간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TV 출연도 하지 않았다”고 그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런 그의 반란은 지금까지 나온 공화당의 반란 중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것인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취임 초기이던 2017년 8월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와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맞붙어 발생한 유혈사태인 ‘샬러츠빌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태의 책임을 백인우월주의자에게 분명히 따지지 않아 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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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워싱턴D.C. 백악관을 나와 ‘대통령의 교회’라 불리는 인근의 세인트 존스 교회로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옆 건물벽에는 백인 경찰에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낙서가 적혀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물론 11월 대선이 ‘인종차별주의 반대 선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라고 적었듯이, 현 유혈시위에 불만을 느끼는 보수 백인층이 대선 때 대거 결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일련의 트럼프 대통령 대응방식은 흑인과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 표심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공화당과 현재 백악관 내부에서는 ‘트럼프를 계속 뽑아야 할지’ 고심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일에야 비로소 “나의 행정부는 에이브러햄 링컨 이래 어느 대통령보다 흑인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며 흑인 실업·빈곤율 및 범죄율이 감소했고 저소득층을 위한 지역사회 발전 프로그램인 ‘기회특구’ 사업이 통과됐다는 점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비록 “최상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흑인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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