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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몇개월마다 계약갱신 경비원들…"맘에 안들면 자르면 그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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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약 못할까봐 처우 부당해도 항의 못해

열악한 처우 개선하려면 '고용안정' 우선돼야

뉴스1

(자료사진) 2018.1.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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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사람이 일 하나만 하다가 두 배로 하려면 고달프지"(A 아파트 경비원 B씨)

서울 동작구의 A 아파트는 지난 4월 약 20명이던 경비원 가운데 10여명을 해고했다. 절반에 육박한 해고대상에서 제외된 나머지 경비원들은 해고된 경비원들의 업무까지 떠맡게 됐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업무량이 두 배가 된 것이다.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큰 문제가 됐을 일이지만 A 아파트 경비원들은 항의하지 못했다. B씨는 "주민들이 필요해서 우리가 있는거니까, 싫어도 따라야지"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몇달 단위로 계약서를 새로 쓰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경비원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대부분 경비원들이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항의했다가는 재계약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노사관계 지원사업 공동사업단'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답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3400여명 중 30퍼센트(%) 정도가 근로계약기간이 3개월이나 6개월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고용불안이 경비원들을 '을'의 처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다. 경비원들은 눈에 보이는 폭력과 모욕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갑질에 시달린다고 입을 모은다.

방범 외 추가적인 업무를 경비원들에게 당연스레 떠맡기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대부분 경비원들이 방범 외에도 분리수거 등의 추가 업무를 수행한다. 동작구 A 아파트의 경우에도 상시 설치된 분리수거 구역을 수시로 정리하느라 정작 초소에 있지 못하는 경비원의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경비원이 '도난·화재, 그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발생을 방지하는 업무' 외에 추가 업무를 하는 것은 현행 경비업법상 불법이지만 '비용 부담'의 문제로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은 이달부터 경비원이 경비 업무가 아닌 일을 하면 단속할 계획이었지만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단속 시점을 내년으로 미루기도 했다.

경비원의 걱정도 비슷하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이모씨는 "내년부터는 경비원에게 경비 본연의 업무만 시키겠다고 하던데 "경비원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일주일에 분리수거를 몇 번 하지 않는데 인력을 따로 고용하면 오히려 경비원에게 쓸 인건비가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경비원의 열악한 처우 개선이 해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고용안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안정이 바탕이 돼야 부당한 갑질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1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한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11일 해당 아파트 경비실 앞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한 주민이 애도하고 있다. 2020.5.1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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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희석 경비원도 '고용불안'에 놓여있었던 사실이 알려졌다. 최씨가 일하던 아파트에는 입주민 10명만 동의하면 경비원을 해고할 수 있는 취업규칙 조항이 있었다.

서초구 경비원 이씨는 "입주민들의 갑질은 옛날 일"이라며 "재고용 안하면 그만인데 갑질할 게 있나. 다른 게 아니라 (재고용 안하는) 그게 갑질이지"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김선기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은 "경비원들이 1년이나 3개월씩 계약을 갱신하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며 "크게 사고치지 않는 한은 70~75세까지는 정년을 보장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096pag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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