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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시선의 확장] 북한은 지금 '브랜드 정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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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1) 상업미술

세계적 “명품 공화국”을 꿈꾸는 북한의 국제상표 등록 행보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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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 디자인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치맥'은 들어봤어도, <평맥>은…?"

<평맥>, <첫눈>, <백학>, <민들레>. 한국에서 이름도 생소한 이 브랜드들은 북한이 최근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에 등록하여 보호받고 있는 국제상표들이다.

상표를 등록한 곳은 다양하다. <평맥>은 평양 맥주공장에서 2019년 8월 1일에 등록한 브랜드이며, <첫눈>은 2019년 4월 1일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소속인 신흥무역사에서, <백학>은 평양 치과위생용품공장에서 2017년 10월 20일에 등록한 치약 브랜드이다.

북한은 2020년 1/4분기 기준으로 국제사무국을 통해 마드리드 시스템(Madrid System)에 의해 2개의 문장(엠블렘·emblem)을 포함해 총 86개의 국제상표 등록을 마쳤다. 2개의 문장들은 국가상징과 관련된 '국기(인공기)'와 '국장(State emblem)' 도안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2008년 9월 9일 같은 날 동시에 등록되었다. 다른 84개 국제상표들의 등록처를 관찰해보면, 대부분 식가공품, 주류의 제조공장들이며, 관광과 관련된 기업소들도 눈에 띈다. 마드리드 의정서 제9조에 따르면 각각의 국제상표들은 지정 국가를 명시하는데, 북한 상표의 경우 중국이 명시된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그 외에 러시아, 베트남, 우크라이나 등 북한의 우호국들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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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맥주공장에서 등록한 국제상표 <평맥>도안 . 신흥무역사에서 국제상표로 등록한 <첫눈> 도안. 평양무궤도전차공장 버스수리공장에서 등록한 <천리마>도안.(왼쪽부터. 자료출처 : WIPO)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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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의 공장 기업소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는 마크를 개발하는 '브랜드 시대'에 돌입했다. 북한의 상표 등록과 검열 등을 맡는 사무국은 2012년 4월 평양 평천구역에 준공된 '국가산업미술중심' 에 있다. 이 청사 정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표 및 공업 도안, 원산지명사무소> 마크가 달려있고, 북한에서 디자인 사업을 총괄하는 중앙산업미술지도국도 함께 건물에 입주해 있다.

북한의 브랜드 시대는 사실 하루아침에 조성된 것이 아니다. 북한은 1974년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에 가입했으며, 특히 1980년 상표 국제등록을 위한 마드리드 동맹에 가입하여 국제무역에서 자국 상표를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북한 상표법은 이보다 18년 뒤, 1998년 8월 22일에 노동신문에 '강성대국'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인 1998년 1월 14일에 채택되었고, 5개월 이후 북한의 '공업도안법(1998년 6월 3일)'도 채택되어 북한에서 상표, 디자인 보호를 위한 법 제도가 구축되었다. 국제상표 등록은 이로부터 10년 후 2008년, 공화국 창건 60주년 해부터 본격화되었다.

브랜드 저작권, 최고존엄 소유?

"새롭고 특색 있게 만들어진 산업미술도안은 하나의 지적 창조물, 지적재산으로서 국가적인 보호대상이 된다. 더욱이 새로운 창조물에 대한 제3자의 모방과 침해를 사전에 막을 목적으로 해당 상표나 공업도안의 창작가, 리용자들은 자기들의 상표, 공업도안을 국가등록기관에 등록시켜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는 <조선예술> 2008년 9월호에서 인용한 말이다. 북한의 상표들은 산업미술 전공자들이 디자인한다. 상표·포장의 도안은 산업미술 중 특별히 상업미술에 분류되며, 평양미술종합대학과 평양출판인쇄종합대학에서 인재들이 양성된다. 이들 대학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창작기관, 연구기관의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어, 기업소, 공장들의 디자인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평안북도 신의주화장품공장의 <봄향기화장품> 마크·포장과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의 <꽃망울> 마크 도안, 지방산업공장의 본보기로 알려진 강원도 원산구두공장에서 생산하는 구두의 상표 <매봉산>도 평양출판인쇄종합대학의 교원과 학생들이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한을 대표하는 유명 국제상표들은 대부분 김정은 위원장을 거쳐 간다. 일부 상표들은 디자인 지도뿐만 아니라, 이름도 직접 지었다고 북측은 소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들레> 상표이다. 이 상표는 2016년 4월 17일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비준하여 내려보내 주신 마크도안"이라고 민들레 학습 공장 전시관에 적혀있다. 국제등록은 2017년 10월 20일 되었고, 노트류(16. Writing or drawing books; papers, school supplies)와 담배(34. Cigarette) 상품에 함께 마크를 사용하는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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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담배공장 <민들레담배>의 상표 및 포장. 2017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의 <민들레학습장> 전시 부스.(왼쪽부터. 사진출처 : 선전매체 서광 갈무리)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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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학습장공장은 2015년 8월 20일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적인 발의와 지도하에 건설된 공장으로, 동백담배공장, 민들레담배자재공장, 동백건재공장, 민들레인쇄공장과 함께 2급의 '동백합영회사' 아래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산업체의 조직구조 속에 <민들레>라는 상표는 특이하게 북한의 고급 담배에도, 어린이 학습장의 브랜드에도 사용하게 된 것이다.

2018년 4월 12일 자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부터 2018년 4월까지 6년간 "5830점의 디자인들이 직접 지도를 받아 탄생되었다"라고 보도하였다. 십 단위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모든 지도자의 지도 창작일 기록을 남기는 북한 체제의 특성으로 미루어 보면 최근 그는 디자인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 관심이 상표 디자인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의 국제상표들은 경제적인 이유도 중요하지만, 지도자의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또 하나의 상징 기호로 북한 사회에서는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의 국제특허, 국제상표(trademark)의 출원 행보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제등록에 관한 헤이그협정에 따른 북한의 '국제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 출원'은 2020년 6월 1일 기준으로 아직 1건도 보고되지 않고 있다(아래 초록색). 현시점에서 북한이 진짜 브랜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제품의 얼굴인 상표도 중요하지만, 비정치적인 관점을 가진 산업 미술가들의 전문적 개입과 그들의 손길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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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PCT 국제특허(검정 막대), 국제상표(오렌지), 국제산업디자인(초록) 출원 현황.(자료 출처: WIPO)© 뉴스1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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