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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땅근~땅끈" 불황에 쑥쑥 크는 중고거래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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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편집자주] 코로나19(COVID-19)발 경제한파 속에 중고제품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당근마켓 등 새로운 중고거래 플랫폼들도 급성장하고 있다. 얇아진 지갑을 넘어 중고거래의 재미와 경험추구 성향, 실용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넉넉한 사람들과, 밀레니엄세대, 주부들까지 중고거래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다시 부는 중고거래의 열풍을 짚어본다.

[MT리포트] '코로나19' 시대, 다시부는 중고거래 열풍(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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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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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COVID-19) 장기화로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중고 거래'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정착하고 있다. 여기에 실용적 사고와 경험 가치의 중시, 윤리적 소비 흐름이 맞물리면서 중고 거래가 활성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직장인부터 가정 주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중고거래에 푹 빠져들고 있다. 지역기반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의 하루 이용자수(DAU)는 약 156만명에 달하며 전국에서 '땅근~'을 울려대고 있다. 무인 중고거래 자판기 '파라바라' 등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중고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김길준 파라바라 대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은 이제 막 중고거래가 커지는 단계"라며 "한국 처음으로 중고거래로 유니콘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불황' 먹고 쑥쑥 큰 '중고거래 시장'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며 불황형 소비의 대표적 현상인 '중고거래'가 활발해졌다.

중고거래 인기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모바일인덱스'가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3월 기준 중고거래앱 월간순이용자수(MAU)는 약 492만5000명으로, 전년 동기(약 298만명) 대비 65.7%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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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0일 기준, 일간 활성 사용자수(DAU)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고 시장이 성장해왔다.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경제적 이유로 새 제품보다 중고를 찾는 수요가 늘었고, 반대로 쓰지 않는 물품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저서를 통해 중고는 "저성장이 악화하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라면서 "나름의 수입 속에서 '적게 쓰지만 만족은 크게 얻으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한국 중고 시장 규모는 4조원대로 추산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고나라'를 중심으로 중고거래 시장이 점차 커지면서, 현재는 약 2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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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앞으로 이 시장이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고 물품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이들이 많던 과거와 달리, 점차 중고거래에 익숙해진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특히 2018년부터 쏘카, 우버, 에어비엔비, 위워크 등 공유경제 붐이 일면서 남이 쓰던 물건에 대한 인식까지 많이 개선됐다. 새 제품만 찾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면 사용하다가 필요성이 끝나면 되파는 중고거래 특성과 맞물리면서다.

한 중고시장 업계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8년 공유경제 붐, 최근 리퍼(미세한 스크래치가 있는 미개봉 반품 등) 제품의 인기 등이 중고시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윤리적인 중고거래…재미까지

괄목할만한 점은 최근 중고 물품을 둘러싼 시각 변화다. 과거엔 '초라해 보이는 것'으로 치부되던 중고품이, 최근엔 '윤리적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변화했다.

새 제품을 사서 마구 쓰고 버리는 고도성장기의 소비 행태가, 환경파괴를 낳는다는 반성을 낳으면서 중고 거래가 일종의 '지속가능한 윤리적 소비'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고 의류(빈티지 의류)는 윤리적인 것을 넘어 힙한 것(가장 최신의 유행), 개성의 표현으로까지 여겨지게 됐다. 중고거래가 미닝아웃(Meaning Out·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소비로 표현하는 것)의 일종이 된 것이다.

중고거래 소비를 통해 재미와 유능감을 찾게됐다는 점도 괄목할만 하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는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그만큼 경험 소유 여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같은 MZ세대는 중고 거래 역시 경험을 가능케 하는 소비로 여기고, 이를 통해 재미를 느낀다.

또 '새 제품을 가장 저렴하게 구매'하는 데서 재미를 찾던 것과 달리, 최근엔 '숨겨진 보석같은 중고제품'을 찾는 데서 재미를 찾는 것으로 변화했다. 이 같은 경험 속에서 소비자는 본인의 '유능감'을 발견하기도 한다.

박은아 대구대 소비자심리학과 교수는 "'숨겨진 보석'처럼 괜찮은 중고 물품을 찾아 거래하는 경험을 통해 소비자는 '유능감'을 느끼고 재미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중고거래는 판매자가 나름대로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이를 구매하는 이들은 제품이 얼마나 닳았는지, 가격이 합리적인지 알 수 없다. 최근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려 시도하고 있다.

직거래 콘셉트의 당근마켓, 투명박스 콘셉트의 파라바라 등이 그렇다. 파라바라는 투명박스를 통해 물건을 확인한 뒤 구매하도록 하면서, 언택트까지 가능케했다.

김길준 파라바라 대표는 "언택트 시대에 맞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중고거래 시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은 기자


"중고거래 유쾌하지 않았던 일들 한번씩 있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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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김길준 파라바라 대표 인터뷰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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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물건이 있어 연락했더니 이미 팔렸다고 하고, 택배로 거래하려니 사기가 걱정되고, 판매자랑 직접 만나서 구매하려니 꺼려지고… 중고거래 하며 유쾌하지 않았던 일들 한번씩 있으시죠? '파라바라'에선 이런 일이 없어요."

기존 중고거래의 단점들을 모두 없앤 플랫폼이 등장했다. 김길준 대표가 만든 오프라인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파라바라'다.

김 대표는 현재 연세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으로, 지난해 휴학하고 동대학 경영학과 친구, 고등학교 친구 등과 함께 파라바라를 창업했다. 김 대표가 중고시장을 선택한 건, 시장이 가치에 비해 크게 저평가 돼있단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일본 메루카리, 미국 오퍼업, 렛고 등 외국엔 중고거래 스타트업이 유니콘기업이 된 사례가 많은데, 한국엔 아직 관련 사례가 없다"며 "그만큼 한국 중고시장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그동안 중고 책, 게임기 등 직접 중고거래를 해오며 불편함을 느낀 것도 많았다. 그는 "먼 지역에 매물이 올라오면 직접 확인하고 살 수 없어 아쉬웠고, 지하철 역 등에서 직거래를 할 때는 '혹 무서운 사람이 나오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다 팔린 물건이 그대로 매물에 올라오는 일도 많았고, 물건을 직접 볼 수 없으니 계속 판매자한테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지쳤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중 중고나라 사기의 절반이 '택배 미발송'이란 기사를 읽고,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프라인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을 만들자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파라바라는 대학교, 영화관, 대형 몰, 대기업 본사, 스포츠센터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투명 파라박스를 설치했다. 사용자는 박스에 자기가 팔고 싶은 물건을 넣고, 가격과 휴대폰 번호 등을 입력한 후 잠근다. 살 사람은 박스를 통해 물건을 살핀 뒤, 액정 화면을 통해 동영상과 추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구매하려는 결심이 섰다면, '구매하기' 버튼을 눌러 카드 결제를 한 뒤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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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IFC몰 CGV 영화관에 설치된 파라바라 거래 사물함 /사진제공=파라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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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바라는 경매 형식의 가격변화 시스템을 적용해, 제품을 넣고 6일 뒤에도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면 7일째부터 매일 10%씩 가격을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물건은 결국 주인을 찾아간다. 물론 판매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물건을 회수해갈 수 있다.

김 대표는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아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경우,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자들은 '끌올'(다시 게시물을 작성하는 행위)을 통해 또 같은 물건을 게시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매력도가 떨어지는 물건을 계속 봐야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파라바라의 가격시스템에선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여타 중고거래 플랫폼과 특히 차별화가 나타나는 부분은 '수익성' 측면이다. 광고에 의존해 수익 안정성 측면에서 우려를 낳는 주요 플랫폼들과 달리, 파라바라는 2만원 이하 제품 2000원, 2만원 이상 제품은 가격의 10%를 수수료로 정했다. 규모가 커지고 거래량이 늘면 자연스레 수익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아가 파라바라는 광고 비즈니스로까지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몇개 사물함을 백화점 쇼윈도처럼 꾸며 제품을 광고하고, 판매할 예정이다. 이미 주요 화장품 회사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플랫폼이 한창 자리를 잡고 있는 찰나 코로나19(COVID-19)란 악재를 맞아 성장세가 조금 주춤한 건 사실이다. 유동인구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CGV에 위치한 기기 한대에서만 한달 150여건의 거래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먼저 파라박스를 설치해달란 문의가 늘면서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 최근 이니스프리에서 연락이 와 본사에 파라박스를 설치했고, 최근 용산의 한 대형몰에서도 설치 문의가 와 이번 달 안에 설치 후 운용할 예정이다. 이외에 최근 계약 논의가 오가는 곳만 5곳이 넘는다.

파라바라는 현재 5개에 불과한 파라박스를 올해 말까지 100개 설치하는 게 단기 목표다. 이를 통해 올해 말, 현재의 20~30배 이상의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 특성상 사용자 저변이 늘면 매출은 그에 비례해 느는 게 아니라 폭발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기존에 중고거래는 가성비라는 매력이 있음에도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했던 것이었다면, 파라바라는 이 같은 과정을 모두 없애 매력적이다"라며 "다음달 안에 애플리케이션을 론칭하고 더 본격적으로 저변 확장에 나갈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재은 기자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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