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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편집자 레터] 문화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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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한수 Books팀장


강력한 소수가 유약한 다수를 파괴하는 건 순식간이더군요. 미국 워싱턴주를 습격한 ‘아시아 킬러 말벌’ 이야기를 최근 인터넷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장수말벌이라고 부르는 이 개체는 길이 4㎝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이라네요. 이놈들 행태가 무섭습니다. 꿀벌 집에 침입해 집게 같은 이빨로 꿀벌들 목을 자른다네요. 장수말벌 10마리가 30분 동안 꿀벌 2만~3만 마리를 죽일 수 있답니다. 한 양봉 농가에서 꿀벌 6만 마리가 머리 잘린 채 떼죽음을 당했다네요.

소수가 다수를 몰락시키는 건 인간 세계에도 있는 일입니다. 17세기 여진족(만주족)은 100만명에 불과했지만 100배에 이르는 1억 중국(명나라)을 무너뜨렸습니다. 여진족의 강력한 전투력은 극명한 사례가 있더군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무장 사신단 17명이 귀국하는데 송나라 군대 2000명이 막아섰답니다. 금 사신단은 길을 비켜달라 요구했으나 송군은 듣지 않고 이들을 죽이려 했다네요. 그러자 금 사신단은 5·7·5 대열을 이루더니 순식간에 돌격해 송군을 궤멸시켰답니다. 17명 중 한 사람도 전사자가 없었다네요.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산수야)에서 읽었습니다. '송사(宋史)' 정강 원년(1126년) 2월조 기록에 나온다네요.

유약하다고 당하기만 하진 않더군요. 꿀벌은 말벌이 침입하면 날개를 비벼 벌집 온도를 높인다네요. 협력 문화를 가진 꿀벌이 말벌보다 높은 온도에서 더 잘 견딘답니다. 침입한 말벌은 벌집에서 쪄죽는다네요.

강력했던 여진족도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문화라는 고온을 견디지 못한 탓이겠지요.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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