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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주춤주춤, 슛! 꼬~올~”… 78세 캐스터의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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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 현역 최고령 캐스터 송재익

조선일보

현역 최고령 캐스터 송재익. ‘축구계의 송해’로도 불린다. 그는 “토크쇼를 진행하고 싶어 아나운서가 됐는데 무슨 이유인지 스포츠 중계만 50년 했다”며 “내 인물이 혐오감을 줄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잘났다는 건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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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본선을 6회 연속 뛴 축구 선수가 있을까. 리오넬 메시가 아무리 공을 잘 차도 받쳐주는 동료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전성기는 길지 않다. 부상이 없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라운드는 아니고 중계석에서.

송재익(78). 입만 가지고 평생을 먹고산 남자다. 1970년 MBC에서 복싱으로 스포츠 중계를 시작했고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곤 SBS로 건너가며 '억대 캐스터 시대'를 열어젖혔다. 1997년 한일전에서 후반 막판 이민성이 역전골을 터뜨릴 때 나온 멘트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를 비롯해 어록만 모아도 책 한 권이다. 은퇴한 지 10년 된 송재익에게 지난해 초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다시 마이크를 맡겼다. 이 '할배 캐스터'는 요즘 K리그를 중계한다. 월드컵도 A매치도 아니지만 목소리 톤은 여전하다.

"주춤주춤, 슛! 꼬~올~"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무관중(無觀衆) 시대. 중계 멘트는 그럴수록 더 달고 짠 양념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송재익은 "얼마 전에 K리그 중계를 하다 텅 빈 관중석이 보여 '마치 낚시터에 와서 축구를 하는 것 같다'는 애드리브를 던졌다"며 껄껄 웃었다. "관중이 없다고 해서 낚시꾼과 붕어의 싸움이 덜 치열해지는 건 아니잖우? 그 상황을 압축해 즉흥적으로 뽑아냈어요."

스포츠 중계만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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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신문선 해설위원과 중계하는 모습.


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부터 K리그 중계방송 일부를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다. 중장년 축구팬에게 친숙한 송재익을 캐스터로 영입한 배경이다. 1997년 '도쿄 대첩'의 그 목소리라며 시청자들이 반겼고 숱한 어록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중계 스타일이 최근 흐름과 달라 거북하다"는 지적도 있고 "유행을 잘 따라가는 식당도 필요하지만 쿰쿰한 냄새 나는 노포(老鋪)도 있어야지"라는 반응도 나온다.

―건강하신가요.

"당뇨 증세가 있어 약을 먹어요. 환자는 아니고 조심해야 하는 단계죠. 매일 5㎞ 이상 걸어요. 은퇴하고 여행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도 참 힘들더군요. 노년은 길어지고 시간을 주체하기 어려웠는데 작년 2월에 연맹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식사만 하고 헤어졌는데 열흘 뒤에 또 보자는 거예요. 다시 축구 중계를 한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축구는 야구와 싸우는 거예요. K리그와 KBO가 방송국에서 중계권료를 받잖우. 야구 중계권료는 축구보다 다섯 배쯤 비싸요. 또 방송국들이 축구 중계권을 사 가도 편성을 기피합니다. 프로축구는 프로야구보다 시청률이 낮으니까. 연맹이 고심 끝에 직접 제작해 케이블 방송국들에 팔기로 하고 '호감 가는 캐스터'를 설문 조사한 모양이에요."

―송재익 캐스터가 1위로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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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익은 10년 만에 한국프로축구리그(K리그)에서 ‘할배 캐스터’로 다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그랬나 봐요. 그런데 내 나이가 적지 않잖우. 만나서 송재익을 탐색한 거예요. 몰골은 성한지, 목소리는 살아 있는지, 말은 기승전결이 되는지, 혹시 치매 증상은 없는지(웃음)."

―낼모레면 팔순인데 현장에 복귀한 소감은.

"나를 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거잖우. 하지만 처음엔 좀 망설였어요. 시대가 달라졌잖아요. 험한 댓글도 많고 남에 대한 평가를 사납게들 하니까."

―중계 감각은 금방 살아나던가요.

"복귀할 때 세 가지 다짐을 했어요. 말을 줄이자, 톤을 낮추자, 즐겁게 하자. 시력이 나빠져서 선수 이름을 가끔 틀려요. 첫 중계를 한 전남 광양에서 '슛! 꼬~올~' 하는데 어, 옛날 그 소리가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귀에 익은 이 들뜬 목소리를 10여 년 만에 듣는다'는 등 시청자 반응도 좋다고 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댓글요? 아예 안 봅니다. 송재익이라고 왜 안티가 없겠어요. 인기의 부산물쯤으로 감수해야죠."

―며칠 전에 통화하면서 '입만 가지고 평생 살았다'고 하셨는데 목소리도 관리하나요.

"특별하게 신경 쓰진 않아요. 술은 한두 잔만 마시고 담배는 평생 입에도 안 댔어요.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서 어디 끌려가 고문당할 때 담배를 피워야 한다면 술술 다 불 거요. 하하하. 담배가 그 정도로 싫어요."

―중계 문화도 20년 전과는 꽤 달라졌지요.

"문전으로 공을 띄울 때 전에는 '센터링'이라고 했어요. 요즘엔 '크로스'라 부르더군요. 흐름을 거역할 순 없으니 고치려고 노력합니다. 과거엔 키와 출신 학교 같은 선수 프로필을 중간중간 알려줬는데 요즘엔 필요가 없대요. 정보가 흔해져 어지간하면 다 아니까. 대신 주심은 대개 본업이 따로 있어요. 취재해서 전하곤 합니다. '오늘 주심은 서른다섯 살, 그라운드 밖에서는 자영업자고 핸드폰 가게를 합니다' 하는 식으로요."

―옛날보다 나아진 것이라면.

"VAR(비디오 판독)이 등장했잖아요. 축구가 더 공정해진 겁니다. 시시비비도 없고 승복을 하니까 좋더군요."

축구도 결국 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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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익은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2루수로 뛰었지만 축구는 해본 적이 없다. “1990년 월드컵 중계를 하다 울컥했어요. 서독팀 주장 마테우스가 우승컵을 들 때 ‘독일 병정이 세계 축구를 평정하고 저 우승컵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나라가 통일이 돼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나도 6·25를 겪은 세대 아뇨. 아, 부럽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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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익 캐스터는 신문선 해설위원과 한 세트처럼 기억된다. "캐스터는 경기 상황을 묘사하고 해설자는 흐름을 분석합니다. 쉽게 말하면 불이 날 때 '불이야!' 하듯이 '꼬~올~'을 외치는 사람이 캐스터예요. 발등의 각도가 어떻고 디딤발이 어떻고 설명할 일은 아니죠. 해설자는 누전인지 방화인지 화재 원인과 발화 지점을 알려주는 사람이고요."

―신문선 해설위원을 종종 보나요.

"전혀 안 만나요. 연락도 안 하고. 세월만큼 정이 들진 않았어요. 그 친구는 개성이 강했고 나를 경쟁자로 생각하던 사람이에요."

―MBC부터 SBS까지 20년쯤 호흡을 맞췄는데.

"사실 서로 잘 안 맞았어요. 축구 중계 90분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캐스터예요. 그런데 욕심 많은 해설자는 자기가 먼저 '골이에요~ 골~' 하고 끼어듭니다. '그건 내 영역이니 침범하지 마쇼' 할 순 없어요. 지적하더라도 PD가 해야지. 신문선씨가 그 나름대로 말을 잘했어요. 대중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잖우. 대표팀 경기는 지상파 3사가 피 말리는 시청률 싸움을 했어요. 내가 망령 들어 하는 말은 아니고 2002년 월드컵까지는 우리 중계가 늘 일등이었지요. 하지만 '송재익 없는 신문선'이나 '신문선 없는 송재익'은 평가가 다를 수 있어요."

―입사할 때부터 스포츠 캐스터를 꿈꿨습니까.

"사실은 토크쇼를 하고 싶었어요. 다시 말하면 나는 중계도 그런 생각으로 합니다. 복싱도 축구도 마라톤도 결국 세상 사는 이야기예요. 운동장에서 22명이 공을 따라 움직이지만 그 상황만 가지고는 방송이 안 됩니다. 그래서 비유도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보태는 거예요. 내가 스포츠 중계의 어떤 벽을 깼다고 생각해요. 축구와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가 무슨 관계가 있나요? 일본 땅에서 하는 한일전이고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니까 순발력으로 던진 겁니다."

―회자되는 어록이 많은데.

"축구 중계를 오래 하다 보니 큰 경기를 맡았고, 월드컵이나 올림픽이나 A매치라서 경기 수준이 높았고, 시청자도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에요. 스포츠에는 간절함이라는 게 있어요. 꼭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 내가 좋아하는 코멘트 중 하나는 2002 월드컵 때 스페인과 벌인 8강전에서 나왔어요."

―한국이 승부차기 끝에 이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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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 마지막 키커가 홍명보였어요. 넣으면 4강으로 갑니다. 골대에서 11m 떨어진 지점에 공을 갖다 놓았고 몇 초 정적이 흘러요. 국민적 염원이 집중된 순간이에요. 2002 월드컵이 개막할 때 우리 목표는 16강 진출이었어요. 개최국이 16강에 못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히딩크 감독이 '감독 생활을 하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죽으라고 하면 선수들이 죽는 시늉까지 한다'고 할 정도로 정신 무장은 완벽했습니다. 폴란드를 이긴 게 월드컵 역사에서 한국이 거둔 첫 승이었어요. 옛날이야기를 하면 내 목소리가 이렇게 커져요(웃음). 아무튼 우리는 8강까지 갔고 홍명보가 키커로 나설 때 모두 숨을 죽였어요.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던진 말이?

"입에서 '시청자 여러분'이 나왔다가 '아니, 국민 여러분'으로 재빨리 바꿨어요. '두 손을 치켜들고 맞잡으십시오. 종교가 있으신 분은 신에게 빌고 없으신 분은 조상에게 빕시다.' 그때 무등산이 보이길래 '무등산 산신령님도 도와주십시오' 했습니다. 중계 코멘트에 샤머니즘까지 동원한 거요. 홍명보가 찬 공이 들어갔어요. 옆에 있는 다른 방송사 중계석에서 '골! 골!' 그러는데 나는 그 소리를 안 했습니다."

―그럼 뭐라고 했나요.

"그건 단순한 골이 아니었어요. 4강이지 4강. '시청자 여러분은 지금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여는 현장에서 산증인이 되셨습니다.' 극적인 상황과 맞닥뜨리면 그런 코멘트가 샘솟아요. 목소리며 톤과도 어울렸고 뜻을 음미할 수 있어 사랑받은 것 같습니다. 준비한 적은 없고 재활용도 안 해요. 어떤 상황에 맞는 애드리브는 하나뿐이니까. 10초 안에 생각해 던져야 해요. 음식도 식으면 맛이 없잖우."

'송재익 어록' 원천은 재래시장

현역 최고령 캐스터로 '축구계의 송해'로도 불린다. 송재익은 "아날로그 세대라 작년까지만 해도 각종 기록을 팩스로 받았다"며 "들으면 섭섭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밤잠 안 자고 축구 중계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손흥민이 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안 보셨나요.

"아침에 뉴스 보면 되지, 하고 잤어요. 특히 방송을 하는 사람은 컨디션이 좋아야 해요. 옛날 김장철에 내일 큰 중계가 잡혀 있으면 오늘은 김장독도 안 묻었어요(웃음). 피곤하면 목소리가 안 좋고 단어 선택도 잘 안 되니까요."

―실수한 적도 있습니까.

"왜 없었겠어요. 성급하게 '꼬~올~'을 외치다가 '꼬~올~대 맞고 나왔습니다'도 해봤지요(웃음). 멕시코 월드컵 땐 한국과 불가리아 경기를 중계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불가리아 선수 이름 써놓은 원고가 다 젖어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쪽 이름이 도스토옙스키처럼 길어요. 낯뜨거운 과거지만 '○○○○스키'라고 대충 지어서 불렀지요."

―중계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후배들 교육할 때 '자료는 많을수록 좋고 그렇게 준비한 자료를 덜 쓰고 많이 남기는 사람이 방송을 잘한다'고 말하곤 해요. 이만큼 노력했다며 알리고 싶은 게 사람 심리지만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는 선수 이야기를 왜 합니까. 우리가 음식점에서 '주방장이 가진 입맛'으로 밥을 먹진 않잖아요. 내 입맛으로 먹는 거죠."

―무슨 뜻인지요.

"대중적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의 비결은 '간을 안 하는 것'이에요. 사람 입맛은 다양하니까 간장 종지를 따로 놓으면 돼요. 중계하다 던지는 말도 그런 겁니다. 나는 내 가치관을 믿어요. 골이 터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축구와 야구, 복싱은 중계 방식이 다른가요.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잖아요. 깨알같이 써야 해요. 야구 중계는 가계부 정리와 비슷합니다. 나는 재래시장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자연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건 질색이에요. 축구는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일기장과 비슷해요. 복싱은 강펀치 하나로 끝날 수 있는 단편소설 같고요. "

―재래시장을 좋아한다고요?

"성남 모란시장이 집에서 가까워요. 자주 갑니다. 세밀하게 관찰하는 편이에요. 며칠 전에 참외를 사면서 '할머니 이거 달아요?' 여쭈니 '나도 몰라' 그러셔요. 그래서 만원어치 산 다음에 하나를 드리며 '잡숴보시고 누가 물으면 알려주세요' 했어요. 사는 게 그렇잖아요. 장터를 왜 좋아하냐면 파는 사람은 간절해요. 내가 오늘 '간절'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네요. 세상 사는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아요. 내가 말쟁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툭 던지려면 가까운 곳에서 소재를 찾아야 해요. 중계도 그렇게 합니다."

―아나운서에게도 철학이 있습니까.

"아나운서는 배고파도 안 되고 추워도 안 되고 숨이 차도 안 됩니다. 말은 편안해야 전달이 잘돼요. 누구와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식도 갖춰야 하고 밑바닥 세상도 알아야 합니다. 즉 중간에서 대화를 이끌 수 있어야 해요. '기똥차다' 같은 최상급 표현을 쓰면 안 되고요. TV 앞에는 왕후장상부터 일자무식까지 겹겹이 앉아 있습니다. 축구든 복싱이든 마라톤이든 시청자와 공감대를 이루려면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게 최고예요. 두루 통하니까."

송재익은 가요무대에 불려나온 원로 가수처럼 추억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40~50대 이상은 "주춤주춤, 슛! 꼬~올~"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축구 자료집 앞에는 두 단어, '절제'와 '겸손'이 적혀 있었다.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조심하고 나를 낮추며 중계하겠다는 다짐이다.

“중학생들이 몰려와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아버지가 보냈다’는 거예요. 그 말이 참 듣기 좋더라고(웃음). 내가 새로운 기능을 배워서 돌아온 게 아니잖우. 이 나이에 들려드리는 내 목소리가 함께 늙어가는 분들께 작은 위로나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건강하십시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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