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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기본소득 섣부른 공론화 앞서 民官政 기초연구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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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기본소득’이 여야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탈(脫)보수의 화두(話頭)로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꺼내놓자 진보 어젠다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여권은 금방이라도 관련 법안을 내놓을 태세다.

전날 ‘배고플 때 빵 사먹을 자유’를 거론하며 논의에 불을 붙인 김 비대위원장은 4일에도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불씨를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한술 더 떠 “증세 없는 기본소득은 불가능하다”면서 세금 인상까지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저소득층 중심의 ‘한국형 기본소득’을 검토하자며 논쟁에 끼어들었다. 실제 도입된다면 한국 복지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논의가 중구난방으로 진행되어선 안 된다.

원래 기본소득 개념은 ‘조건 없이 전 국민에게 동일 금액을 매달 나눠 주는 소득’이다. 행정비용이 절약되고 취약계층은 생계 위협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설 것이라는 게 도입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국가 단위에서 시행된 적은 없다.

당장 김 비대위원장부터 “적자재정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이다. 국민 1인당 매달 30만 원씩 나눠주려면 올해 본예산(512조 원)의 36.5%인 187조 원이 든다. 3차 추경까지 올해 복지 관련 예산이 총 194조 원인 걸 감안하면 기초연금 등 기존의 모든 복지 혜택을 없애고 기본소득만 지급한다 해도 마련하기 어려운 규모의 돈이다.

그럼에도 이미 불붙은 기본소득 논의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안전망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복지체계의 전면 재정비와 기본소득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의 기본소득 도입 주장이 대선을 노린 선심 공세가 아니라면 여야는 설익은 아이디어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대신 정부, 민간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기초연구부터 시작하는 게 옳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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