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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서울역 폭행 피의자석방'에 "수사권력 경계" vs "안일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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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김영상 기자] [theL]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피의자 이모씨, '불법체포' 이유로 석방 결정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서울역에서 30대 여성을 상대로 이른바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남성 A씨가 4일 오전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영장실심심사에 앞서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역 특별사법경찰대로 향하고 있다. A씨는 지난 5월26일 오후 1시50분쯤 공항철도 서울역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 앞에서 30대 여성 B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2020.6.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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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경찰의 '체포 실수'를 이유로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피의자를 석방해준 것을 놓고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씨가 언제 누구를 향해 또 다른 범행을 할지 모르는데 법원이 너무 안일하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취지다.

이를 놓고 수사권 남용을 경계하라는 합리적 판단이었다는 주장과 범죄현장 상황을 좀 더 고려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4일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서울역 폭행 사건 피의자 이모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국토교통부 특사경이 이씨를 체포하는 과정이 위법했으므로 구속영장을 발부해줄 수 없고, 일단 이씨를 석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 부장판사의 판단에 법적인 오류는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김 부장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국토부 특사경은 영장 없이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원칙적으로 수사기관은 영장이 없이 체포할 수 없다.

영장 없이 체포 가능한 예외가 있긴 하지만 요건이 엄격하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어 바로 체포할 필요가 있는데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올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체포 당시 특사경은 이씨의 이름과 집 주소, 핸드폰 번호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이씨 집을 직접 찾아갔다. 집 문 앞에서 이씨를 부르고 전화를 걸었지만 이씨는 자느라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특사경은 강제로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서 이씨를 체포했다.

김 부장판사는 상황을 종합해볼 때 특사경이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받아올 만한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고 봤다. 특사경이 이씨의 신상정보를 상당히 확보하고 있어 언제든 추적·체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사경의 긴급체포는 형사소송법이 요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위법한 체포라는 판단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씨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상황도 아니었다"며 "이와 같이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사기관의 앞선 직무집행에 잘못이 있다면 그에 기초한 다른 처분은 효력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법 논리를 독수독과론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김 부장판사는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며 "비록 범죄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밝혔다. 헌법이 보장하는 주거의 자유와 영장 제도의 원칙이 범죄혐의자 체포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흔하진 않지만 불법체포 당한 범죄 피의자가 독수독과론을 주장해 형사처벌을 피해가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일례로 지난 4월 마약 혐의로 기소된 50대 A씨가 경찰의 불법체포를 이유로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

사건 당시 경찰은 다른 마약사범들을 잡으러 모텔로 출동했다가 우연히 A씨와 마주쳤다. 경찰은 A씨의 안색과 언행으로 볼 때 마약사범으로 의심된다고 판단했고, A씨가 머물던 모텔방으로 그를 끌고가 마약을 압수한 뒤 긴급체포했다.

이 마약이 법정에 유죄 증거로 제출됐지만 2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텔방에서 긴급체포 당하기 전까지 A씨는 자유의 몸이었으므로, 경찰이 그를 모텔방으로 끌고간 것은 불법체포라고 판단했다. 모텔방으로 끌고가려면 긴급체포를 한 뒤 끌고갔어야 한다는 취지다. 유죄 증거로 제출된 마약도 이 같은 불법체포 과정에서 확보된 것이므로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피의자의 구속 문제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범죄현장의 긴박한 사정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번 이씨처럼 행동 예측이 어렵고 재범 우려가 있는 피의자의 경우, 구속 문제를 결정할 때 수사기관 쪽 주장에 좀 더 귀를 열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 7월 법원이 석방해준 가정폭력 남편 B씨가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경찰이 3개월 사이 두 번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경찰이 세 번째로 구속영장을 신청해 구속심사가 잡힌 날 참사가 일어났다.

B씨는 이미 전 결혼생활 때도 가정폭력을 휘둘러 실형을 산 전력이 있었다고 한다. B씨 구속심사를 담당했던 법원 측은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경찰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법원 판단에 대해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만약 경찰이 피의자를 놓쳤을 경우 '눈 뜨고 놓친 경찰' 이라며 시민들의 비난이 엄청날 것 아니냐"며 "오히려 도주 우려가 있는지는 법관보다 현장에 있는 경찰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 사건에 대해서는 "자고 있다는 이유로 긴급체포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결정을 두고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웃프다'"며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폭행하고 사라질 정도로 치안에 큰 문제가 생겼던 사건이라면 긴급체포가 위법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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