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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코로나19에 폭염까지…무더위쉼터 열 방역대책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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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열질환도 기저질환·고령자에 위험한데 운영 불투명

쪽방촌 주민 등 무방비…정부·지자체, 뾰족한 대책 없어

[경향신문]

경향신문

때 이른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벌써부터 실내 공기를 식히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지내는 집들이 눈에 띈다. 예년 같으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를 찾았겠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무더위쉼터가 문을 열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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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곳곳에는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1m 남짓의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그중에는 창문이 없는 방도 있다. 벌써부터 뜨거워진 햇살 아래 달아오른 실내 공기를 식히려면 현관문이라도 열어둬야 한다.

쪽방촌 주민 김모씨(63)는 “올여름은 코로나19 때문에 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난히 더웠던 재작년 여름, 도저히 방에 들어갈 수가 없어 에어컨 바람을 찾아 쪽방상담소의 무더위쉼터에서 밤을 보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올해는 30~40명이 나란히 누워 같이 자는 쉼터가 운영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그는 “기저질환자는 코로나19 고위험군이라는데 고지혈증이 있어서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나부터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올여름은 평년보다 폭염과 열대야가 잦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무더위는 이미 시작됐다. 기상청은 4일 대구·경북과 전북 지역에 올여름 첫 폭염주의보를 발효했다. 이날 대구의 낮 최고 기온은 35도까지 올라갔고, 서울도 주말에는 31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폭염 취약계층과 코로나19 취약계층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이다. 온열질환에 취약한 기저질환자와 고령자는 코로나19에도 똑같이 취약하다. 예년처럼 밀폐된 환경에 여러 명을 모아두고 에어컨을 트는 무더위쉼터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인 올여름에는 위험한 폭염 대책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아직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는 무더위쉼터의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무더위쉼터로 활용되는 경로당 자체가 문을 닫은 지역도 상당수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난해 야간에 무더위쉼터로 운영한 찜질방 반응이 좋아서 올해는 더 늘릴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며 “실내에서 하는 모든 무더위쉼터는 운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문제는 더위가 본격화하는 7~8월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폭염이 심해지면 그래도 쉴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할 테니, 방역수칙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대형 체육관을 무더위쉼터로 운영하는 방안을 각 지자체에 권고했다”고 전했다. 대형 체육관은 경로당의 쉼터보다는 거리 두기가 가능한 환경이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대형 체육관도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마스크 착용, 손 소독제 사용, 2m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체육관을 쉼터로 운영하라는데, 우리는 혹시라도 그 안에서 바이러스가 번질까봐 걱정돼서 안 하기로 했다”며 “다른 지자체에도 물어봤는데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전했다. 일단 대구시 등 지자체들은 하천 둔치, 다리 밑, 공원 등 야외의 그늘진 공간을 무더위쉼터로 이용하라고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무더위가 당장 닥칠 일인 만큼 정부 차원의 구체적 지침과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용석 대구국제폭염대응포럼 조직위원회 사무처장은 “에어컨을 틀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명확한 지침이 없어) 폭염 대책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폭염 대책 부서와 코로나 대책 부서가 따로 있는데, 폭염과 코로나19 취약계층은 상당 부분 겹치는 만큼 두 부서가 함께 종합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여러 명을 모아두고 에어컨을 틀 수 없으니 동사무소의 공구 대여 서비스처럼 소형 냉방 기기 대여 서비스를 운영하는 방안도 고민해봤다”면서 “다만 저소득층은 전기료 부담이 쉽지 않다는 점이 현실적인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장민철 대구 쪽방상담소장은 “65세 이상 취약계층에게는 생활치료센터 같은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한다”면서 “폭염도 코로나19 못지않은 위기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쪽방상담소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하면 잠시라도 더위를 피해 지낼 수 있도록 쪽방촌 인근의 게스트하우스를 물색하고 있다.

글·사진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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