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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日닛산 철수에 허찔린 스페인 경제…일자리 쇼크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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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르노삼성차 콤팩트 SUV인 캡처. 부산에 르노삼성차 생산공장이 있지만 아직 이 모델은 르노그룹의 스페인 공장에서 전량 제작돼 국내로 들여오는 구조다. [사진 = 르노삼성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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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붕괴를 막아라."

지난달 말 일본의 세계적 완성차업체인 닛산이 스페인 생산공장을 폐쇄키로 결정하면서 스페인 경제가 술렁이고 있다.

닛산의 충격적 발표를 받아든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즉각 자국 자동차 산업 지원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 마련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바르셀로나 공장 직원들은 닛산을 상대로 공장 폐쇄를 철회하라며 공장 앞에서 타이어를 불지르며 격한 시위를 벌였다.

2018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쇄해 지역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례가 지금 스페인 경제에서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닛산 스페인 공장 폐쇄가 확정되면 당장 직고용 인원 3000여명과 더불어 협력업체 등에서 대규모 실직사태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대량 실직사태에 대비한 실업급여와 세제 혜택 부여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민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스페인은 유럽에서 독일에 이어 가장 많은 자동차를 찍어내는 국가다.

지난해 282만대를 생산해 생산량 세계 9위를 기록하며 7위인 한국(395만대)을 바짝 추격 중이다.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10% 안팎으로, 한 해 수출의 약 19%를 담당한다.

자동차 생산에 직접 고용된 인원만 30만명이 넘고 판매망 등 전체 생태계에 200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스페인 국가경제에 자동차 산업은 척추에 해당하는 것이다.

실제 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일명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그룹 중 스페인을 가장 먼저 위기에서 구출한 것도 자동차 산업이었다.

폭스바겐, 다임러, 르노, PSA, 닛산, 포드, GM 등 스페인에 공장을 둔 유럽과 미국의 메이저 완성차 기업들은 스페인 경제위기로 인건비가 낮아지고 고용시장의 유연성이 확대되자 역설적으로 투자를 늘렸다.

스페인 내 주요 외국계 완성차업체들이 현지 공장 증설 등에 투자한 금액은 2016년에만 어림잡아 6조원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스페인과 한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치열한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 르노그룹의 경우 해외 생산기지 중 스페인(바야돌리드 공장)과 한국(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이 매년 생산물량 확보로 사투를 벌인다.

최근 한국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르노삼성차의 콤팩트SUV인 캡처는 한국이 아닌 스페인 공장에서 전량 생산돼 한국으로 들어온다.

르노삼성차의 쿠페형SUV 역시 스페인 공장과 한국 부산공장이 세계 수출물량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차종이다.

그런데 프랑스 르노그룹에 최근 정부가 보증하는 50억 유로(약 6조8213억원)의 실탄이 지급될 예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야기된 현금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차 투자를 위한 지원이다.

르노그룹 입장에서는 앞으로 50억 유로 재원을 세계 어느 지역에 안배할지 여부를 두고 당연히 스페인 공장과 한국 부산 공장의 가치를 저울질할 것이다.

일단 인건비 요소에서 스페인은 한국보다 경쟁우위에 있다.

스페인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제조부문 평균급여(사회보험료·각종 보조금 포함)는 월 440만원(3252유로)이다.

자동차 부문의 경우 이를 상회하는 수준이지만 르노그룹 스페인 공장의 경우 현대·기아차는 물론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임직원들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노삼성차는 최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스페인 공장의 인건비가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미래차 투자를 둘러싼 혁신의 환경은 한국이 더 유리하다는 평가다.

전기차 부문의 핵심부품인 배터리를 세계에 공급하는 혁신기업(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이 한국에 몰려 있다.

자율주행차 연구와 모빌리티 서비스 개발에 유리한 통신 인프라스트럭처 부문에서도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한국은 모범 방역 사례로 꼽혔다.

감염병 유행으로 인한 공장 셧다운을 걱정하는 기업에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배치에서 가산점을 줄 수 있는 지역이다.

반면 스페인 누적확진자는 4일 현재 24만명을 돌파하는 등 세계 5위의 최악 확산국이다.

일본 닛산의 스페인 공장 폐쇄는 그간 스페인 경제를 이끄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과거와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위기 시그널로 해석되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긴급 산업 지원책 마련에 들어간 것도 이런 연유다.

여기에 더해 격주로 발행되는 유럽의 자동차 전문매체인 오토모티브 뉴스 유럽은 최근 보도에서 팬데믹 대응에 실패한 스페인의 자동차 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에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7조원에 육박하는 긴급자금을 수혈받은 르노그룹이 한국 부산공장과 스페인 공장의 장단점을 어떻게 평가해 투자액을 배분할지 주목된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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