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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질본 인원·예산 다 줄이고 ‘청’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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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복지부서 질본 독립시키며

인원 161명, 예산은 1482억 감축

국립보건연구원, 복지부로 넘어가

“질본 위한다며 복지부가 이익 챙겨”

“보건소·방역공무원·검역소 총괄

지방질병청 둬야 제대로 방역”

행안부·지자체 기존 권한 고수

“보건소·방역직 통솔권 이관 안해”

중앙일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독립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3일 입법예고됐다. 질본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가 떼가는 등 질본의 손발이 잘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달 29일 충북 청주시 질본에서 열린 코로나19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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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를 질병관리청으로 독립시키고 보건복지부에 제2차관을 두는 방안을 내놨다. 행정안전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3일 입법예고했다. 질본이 보건복지부의 산하 조직에서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으로 승격한다.

이 법안은 17일께 국회에 제출해 민주당 신현영·정춘숙 의원이 제출해 놓은 법안 2개와 함께 처리할 전망이다. 여야가 모두 찬성해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권역별로 질병대응센터를 신설해 지자체의 방역을 돕는다. 질본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의 감염병연구센터를 확대 개편해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신설하되 국립보건연구원을 질본에서 떼어내 복지부로 이관한다. 국립감염병연구소는 감염병 감시부터 치료제·백신 개발, 상용화까지 전 과정 대응체계를 구축해 감염병 연구 기능을 담당한다. 질본의 장기이식·혈액·인체조직 관리업무도 복지부로 넘긴다. 복지부 제1차관은 기획조정과 복지 분야를, 제2차관은 보건 분야를 담당하게 된다.

질병관리청장은 지금처럼 차관급으로 한다. 정은경 본부장이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다. 질병관리청장은 지금의 질본본부장(산하 기관장)과 권한과 위상이 다르다. 질본본부장은 인사권이 없다. 복지부가 편의에 따라 국장·과장을 꽂는다. 현재 국장 6개 자리(국립보건연구원 제외) 중 4명이 복지부에서 왔다. 과장 5명도 그렇다. 본부장이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쓸 수 없다. 감염병관리센터장이나 긴급대응센터장은 의사가 더 어울리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복지부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차지해 왔다. 질본의 의사 공무원이 올라갈 길이 막혔다. 질병청이 되면 의사를 외부에서 채용할 수 있고, 역학조사관을 비롯한 내부의 의사 공무원을 발탁해 방역 전문가로 키울 수 있다. 예산도 복지부의 한도 내에서 쓰지만 앞으로는 직접 편성한다.

행정안전부 윤종인 차관은 3일 브리핑에서 “질병관리청이 감염병과 관련한 정책 및 집행의 실질적 권한을 갖게 된다”며 “전문성과 독립성이 향상되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게 돼 감염병 대응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질본의 손발이 잘렸다. 국립보건연구원에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설치하되 국립보건연구원을 질본 소속에서 복지부 산하로 옮겨버렸다. 또 질본의 장기이식·혈액·인체조직 관리업무를 복지부가 떼어 간다. 행안부는 “국가 보건의료 총괄 연구기관으로서 국립보건연구원을 육성하고 보건의료 부문 연구와 연계 강화를 고려해 복지부로 이관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조직이 쪼그라든다. 정원은 현재 907명에서 746명으로, 예산은 8171억원에서 6689억원으로 줄어든다. 전병율(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질본을 ‘방역청’으로 축소시켰다”고 지적했다. 정기석(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국립보건연구원이 질병관리청과 같이 있어야 치료제나 백신 개발 등에 협력할 것인데 떨어지면 협력이 잘 안 될 것”이라며 “질본을 위하는 척하면서 행안부·복지부가 실익을 챙겼다”고 말했다.

권역별 질병대응센터는 복지부 밑에 둬 ‘옥상옥’ 우려

개편안은 권역별로 질병대응센터를 두게 돼 있다. 영남·호남·중부 등의 권역으로 나눠 센터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센터가 옥상옥이 될 위험이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지자체장이 나서 감염병 대응을 총괄했다. 사실 단체장은 감염병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인이자 행정가다. 감염병 대응은 질본과 지역의 보건소, 방역 공무원이 책임지고 단체장은 행정적 지원을 맡는 게 적절하다.

정기석 전 본부장은 “질병대응센터를 만들 게 아니라 지방 질병청을 만들어 보건소·방역공무원·검역소를 거기에 넣어야 한다. 지방청에서 총괄해야 쿠팡 물류센터나 콜센터 집단감염이 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전 본부장은 “단체장이 표와 직결되는 보건소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지자체를 담당하는 행안부도 마찬가지”라며 “저런 조직(질병대응센터)을 만들어서 뭐하냐. 복지부 국장 자리(지역 질병대응센터장)만 더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병율 전 본부장은 “지방환경청·노동청처럼 명실상부한 지방 보건청(또는 질병청)을 만들어야 방역 조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차관은 “지역의 일선 보건소와 자치단체의 방역직 공무원에 대한 통솔권 이관 문제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번 개편안은 질병관리청이 중앙수습대책본부(중수본)를 설치하지 못하게 해놨다. 감염병 관련 업무라 하더라도 다수 부처의 협력이 필요하거나 보건의료체계와 밀접한 업무는 복지부가 계속 수행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현행 재난관리법에 청이 중수본을 만들 수 있게 돼 있다. 질병관리청이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를 맡고 중수본도 총괄해야 둘 사이에 혼선이 생기지 않는다. 이번에 복지부가 이 권한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편안은 의료기관의 감염병 손실 보상을 복지부가 맡도록 했다. 정기석 전 본부장은 “복지부가 돈줄을 쥐고 있는데, 질병관리청이 ‘병원 문 닫아라’고 하면 누가 듣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최은경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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