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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G7 정상회담

“한국은 OK, 러시아는 안돼!” 트럼프 제안이 촉발한 G7 논쟁 [구정은의 '수상한 G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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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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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휴양지 비아리츠에서 개최된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폐막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연단을 떠나고 있다.  비아리츠 | AP연합뉴스


미국, 일본, 캐나다와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네 나라로 구성된 주요 7개국(G7) 국가들은 2018년 기준으로 세계 전체 부(317조달러)의 58%를 차지한다. 세계의 총생산(GDP)으로 보면 46%, 구매력 기준 GDP로 따지면 32%가 이 7개국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에 늘 초청받는 유럽연합(EU)까지 합치면 세계의 ‘개발된 나라들’이 대부분 포괄된다. 하지만 부자들 잔치라는 것 외에 이 그룹이 존재 의미를 보여준 지는 오래됐다.

“한국, 인도, 호주, 러시아도 초대하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안을 계기로 G7 확대 논쟁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등에 초대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G7 회합을 진전시킬 방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영국 총리실은 “보리스 존슨 총리는 러시아의 재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생각을 바꾸려면 러시아는 영국과 동맹국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격적인 행동들을 멈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도 “러시아가 환영받을 수는 없다”며 “먼저 국제사회의 규범부터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과 인도, 호주에 대해서는 반대가 없을 것으로 외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한국과 호주가 참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뉴스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국을 비롯한 세 나라를 끌어들여 ‘수혈’을 하지 않으면 이미 힘 빠진 G7은 실상 존립의 명분을 찾기도 힘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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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1973년이었다. 산업화된 나라들의 포럼을 만들자는 당시 미 국무장관 조지 슐츠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돼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영국의 앤서니 바버 총리가 워싱턴에서 비공식으로 만났다. 몇 달 뒤 일본이 들어갔고 1975년 이탈리아가 합류했다. 1976년 미국과 영국은 “영어를 쓰는 정상이 더 필요하다”며 트뤼도 총리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당시 캐나다 총리를 불러서 G7이 됐다.

G7은 1987년부터 회원국 재무장관 정기 회동을 만들어 세계경제를 주로 논의했으며 1996년 빈국들의 부채탕감을 주도했다. 1997년에는 체르노빌 원자로의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콘크리트 방어막 건설자금을 지원하는 결정을 했으나 사실상 일본이 돈을 내는 것이었다. 이 그룹은 애당초 냉전시기 ‘자본주의 발전국가들’ 모임 성격으로 만들어졌고 정상들 간 역학관계에 좌우됐다. 유엔의 ‘1국 1표’ 대표성 원칙에도 맞지 않는 강자들의 회동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세계 경제, 세계 자본의 흐름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게 주된 논의사항이었으나 그 기능도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 20세기 후반부터 경제의 축이 아시아로 많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진 1999년 ‘국제통화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한’ 금융안정화포럼을 계기로 G20이 생겼다. 더욱 결정적이었던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뒤이은 2010~2012년 유럽 재정·금융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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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5일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 비아리츠 인근 바욘에서 환경운동가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사진을 거꾸로 들고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하고 있다.  바욘 |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경제가 몇몇 부자 나라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동안 금융자본의 고삐를 풀어주는 데에만 급급했던 이들 나라의 실책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것을 이 위기는 보여줬다. 학자들 분석에 따르면 10년 전 금융위기 때 즉시 돈을 풀어 대응을 잘 한 나라는 중국, 한국, 그리고 그나마 미국이었다. G7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너무 큰’ 발언권을 행사해온 유럽은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최근의 G7 정상회의는 경제 논의보다는 지구촌 이슈들의 집합장처럼 돼버렸다. 2015년 독일 베터슈타인 산악지대 휴양지에서 열린 회의 때에는 시위대 7500명이 ‘스톱 G7’ 시위를 했다. 한 줌의 국가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 정부는 회의장 주변에 경찰 2만명을 배치해 접근을 막아야 했다. 2018년에는 캐나다 샤를부아에서 정상회의가 열렸는데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정상들의 갈등으로 분위기가 냉랭했다.

지난해 프랑스 휴양지 비아리츠에서 열린 회의 때에는 미-중 무역전쟁이 화두였으나 이렇다할 내용은 없었다. 의장국인 프랑스는 호주, 칠레, 인도,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옵서버로 대거 참석시켰으며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앙숙인 이란 외교장관까지 깜짝 초청을 했다. 브라질 정부의 삼림파괴에 항의하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시위까지 겹쳤다. 이슈만 많고 실속은 없는 회의가 됐고 결국 공동성명도 내놓지 못해 마크롱 대통령의 ‘의장 성명’으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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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처음 참석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뒤를 따라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러시아는 이듬해부터 이 그룹의 멤버가 됐고 G7은 G8로 확대됐다. 덴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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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과 러시아의 관계는 오랜 갈등거리였다. 냉전이 끝나고 자본주의 국가들의 실적을 과시할 필요가 없어진 1994년, 이탈리아 나폴리 회의 때 러시아 관리들이 처음 초청받았다. 지금은 영국이 러시아를 막아서고 있지만 과거 러시아를 초청해 G8으로 만든 것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였다. 블레어 총리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옵서버로 초대했고 1998년부터 러시아도 공식 멤버가 됐다. 당시 러시아 경제는 파탄 상태였고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과 구제금융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러시아를 끼워넣은 것은 만남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였으나,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미국이 주도해 다시 러시아를 밀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에도, 지난해에도 러시아를 부르자고 거듭 주장했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만 찬성했고 나머지 5개국은 거부했다. G10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한 반대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브라질이 참여하는 G11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러시아를 포용하는 G12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영국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 한국·인도·호주를 포함시킨 ‘D10(민주주의 10개국)’ 그룹을 만들자는 제안을 얼마 전 내놨다. 그러면서 회원국들의 5G 통신망 구축에서 중국 화웨이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중국을 견제한다는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존슨 총리의 생각이 일치한 셈이다. D10으로 이름이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트럼프 시대’의 회원국들 혹은 잠재적 참가국들이 줄서기를 더욱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다. 환구시보는 “냉전시대의 의식구조”라 혹평했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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