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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여성 체포되자 경찰 포위… 방화·약탈 '아비규환'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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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시위사태 르포 / 시위대 수십 명 일촉즉발 대치 / 휴일 기점 美 140개 도시 확산 / 40개市 통금… ‘킹’ 암살 후 최대 / 트럼프, 가족과 지하벙커 피신 / 한인 상점 26곳 재산 피해 확인 / 美 경기실종 현실화까지 삼중고 / 소요 사태로 일터 복귀 물거품 / 시위로 코로나 ‘슈퍼확산’ 우려

“통행금지로 우릴 막을 순 없다. 침묵도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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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가혹행위로 흑인 남성이 숨진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린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한 여성이 체포되자 시위대가 “체포 이유를 대라”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워싱턴=정재영 기자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오후 7시40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 도로에서 만난 대학생 조이(23·여)는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 시장이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는 휴대전화 알람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가혹행위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을 규탄하는 야간 시위가 워싱턴에서 사흘째 이어지자 바우저 시장은 “통행금지는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을 이날 오후에 뒤집었고, 주방위군까지 소집했다. 이날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통행금지 발령 직전 경찰차 창문이 시위대 공격으로 부숴지는 등 폭력이 난무했다고 한다.

백악관 인근 도로에서는 한 백인 여성이 체포되는 과정에 경찰과 시위대 수십명이 대치했다. 알링턴에 산다는 직장인 맷 바우저(34)는 “그에게도 권리가 있다. 왜 그가 체포됐는지 설명하라”고 항의했다. 경찰은 “그는 이미 체포된 이유를 알고 있다”고 맞섰다. 얼마 뒤 폭죽과 화약 뭉치가 경찰차 트렁크에 실렸고, 해당 여성도 호송됐다.

사흘째 시위로 워싱턴 곳곳은 상처투성이였다. 백악관 인근 월그린과 CVS 등의 창문은 전날 시위로 파손돼 노란 합판으로 덧대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조지타운의 애플스토어와 인근의 고가 의류숍 등도 시위대 공격을 받았다. 공공건물 외벽이나 도로에는 ‘조지 플로이드’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등의 낙서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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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워싱턴 플로이드 시위의 지원지인 백악관 앞 라피엣 광장에는 수천명이 모여들었다. 워싱턴 외곽에 사는 테사(28·여)는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나왔다”면서도 “방화나 약탈은 저들에게 좋은 핑계를 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저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트럼프와 지지자들’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야간 통행금지 소식이 전해질 무렵 라피엣 광장을 출발해 큰 궤적으로 백악관을 한 바퀴 돌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을 때쯤 시위대는 백악관 앞에 다시 모였다. 이때부터 물병이나 주변의 물건들이 백악관 쪽으로 날아드는 등 과격한 행동이 이어졌다. 돌덩이나 야구방망이도 목격됐다. 경찰이 섬광탄이나 최루가스로 대응하자, 앞줄의 시위대가 일시에 도망치면서 아비규환의 상황이 여러 차례 펼쳐졌다. 공원에는 금세 매운 가스가 가득 찼고, 여기저기 기침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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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분노한 시위대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차량을 부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통행금지가 시작될 무렵 백악관 앞 세인트 존스 교회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미국 대통령들이 애용하는 이 교회는 1816년 지어졌다. 시위대의 전망대 역할을 하던 라피엣 광장 관리사무소와 백악관 인근에 주차된 차량들도 불탔고, 밤새 상점들을 향한 방화와 약탈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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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시청 앞 무장한 주방위군 5월 31일 무장한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이 로스앤젤레스(LA) 시청사 앞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 아들 배런과 함께 백악관 앞에 시위대가 처음 등장한 지난달 29일 밤 지하벙커로 불리는 긴급상황실(EOC)로 이동해 1시간가량 피신했다고 CNN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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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연합뉴스


워싱턴 경찰은 전날까지 폭동 혐의로 18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날 플로이드 시위는 휴일을 맞아 미국 140개 도시로 번졌다. 방화와 약탈, 총격 사건으로 최소 5명이 숨지고 2500여명이 체포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주방위군을 소집한 지역도 수도 워싱턴DC를 비롯해 15개 주로 늘었다. 전국 시위현장에 투입된 군 병력은 모두 5000명이며, 2000명이 추가로 배치될 수 있다고 방위군은 밝혔다. 시위 격화로 미국 전역이 무법천지 상황이 되자 40개 도시는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국의 많은 지방 행정당국이 동시에 통금령을 내린 것은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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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현지 시간) LA 시내 '코리아타운'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사진은 LA 시위로 가림막을 설치한 한인타운 상점. 연합뉴스


한편, 시위가 확산하면서 현지 한인 상점 26곳이 재산 피해를 본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인명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날 이태호 2차관을 본부장으로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설치했고, 미국 주재 10개 공관도 비상대책반을 설치했다.

중국은 흑인 사망 항의시위에 지지를 표명하며 대미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 브리핑에서 “흑인 생명도 생명”이라며 “그들의 인권 역시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이런 반응은 홍콩보안법 추진을 저지하려는 미국 정부를 겨냥한 역공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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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것을 애도하는 미국 미니애폴리스 주민들이 31일(현지시간) 그가 경찰에 연행됐던 현장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P연합뉴스


◆코로나 최대 피해 흑인·저소득층 분노 폭발

미국이 최악의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전국적인 소요 사태가 동시에 발생하는 ‘역대급’ 양대 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로 동시 다발 시위가 벌어지면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종돼 시위 참가자를 통한 코로나19 2차 대유행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제활동 재개에 나서자마자 폭력 시위와 방화 및 약탈 등으로 경제도 마비됐다. 소요 사태와 코로나19 확산 및 경제 침몰의 삼중고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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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한 상점을 약탈한 후 도망치고 있다. 산타모니카=AFP연합뉴스


특히 흑인 등 소수 인종과 저소득층이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가 됐고, 이들이 다시 소요 사태로 인한 경제활동 중단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TY)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시위 사태의 진원지인 미네소타주에서 흑인은 전체 주민의 6%이나 코로나19 환자의 29%를 차지했고,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미니애폴리스시에서 흑인은 전체 주민의 20%에 못 미치나 코로나19 환자의 35%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소수 인종 출신 젊은층이 계약직, 임시직 노동자이거나 2∼3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뛰면서 살아왔으나 이들 일자리가 소요 사태로 모두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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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연합뉴스


미국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신규 실업자가 4000만명가량에 이른다. 이들은 자택대피령이 해제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일터 복귀를 꿈꿨으나 전국적인 시위로 인해 물거품이 됐다. 전국 주요 도시에서 약탈과 방화를 우려해 가게 문을 열 수가 없고, 정부 당국도 통행금지령과 함께 상가개점금지령을 내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규모 시위 참가자로 인해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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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의 로데오 드라이브에 있는 구찌 매장이 31일(현지시간)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서 약탈을 당한 모습. 연합뉴스


시위가 야외에서 이뤄지지만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채 집단으로 구호를 외치고, 밀집대형으로 장시간 가두 행진을 하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높다. 더욱이 경찰이 최루 가스와 페퍼 스프레이(분사 액체)를 뿌림에 따라 시위 군중이 집단으로 눈물을 흘리고, 기침까지 하게 된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2주 후에 확진자 급증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고, 에릭 가세티 로스앤젤레스 시장도 “시위가 슈퍼 확산을 초래해 2차 대유행 사태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베이징=정재영·국기연·이우승 특파원, 백소용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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