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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프로그래밍’되어 신속 지급된 한국 재난지원금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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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79% 지출 시작했는데

일본 아직 72%가 신청 중

카드·주민번호가 ‘효율’ 갈라

미·캐나다 저소득층 지원

독·프 프리랜서 등 지원


한겨레

신용·체크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관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 5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이 이용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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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한 ‘재난지원금’ 정책이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각국은 저마다 재정 상황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행정력도 관건으로 떠올랐다. 특히 나라마다 다른 주민식별제도와 금융 및 정보기술(IT) 인프라는 지원의 속도까지 가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난다. 두 나라 의회는 지난 4월30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추가경정예산을 각각 의결했다. 19일이 지나 한국에선 79%의 가구가 재난지원금을 받아 지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날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19%만 지급을 시작했고, 72%는 신청서를 우편으로 발송 중이라고 <재팬 타임스>는 전했다. 같은 날 같은 결정을 했는데, 한국에선 이미 돈이 쓰이기 시작했고, 일본에선 아직 신청도 못 한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한-일 간 격차를 빚어낸 가장 큰 원인은 카드 이용률과 신원 확인 시스템이었다. 한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세원 양성화 및 내수 활성화를 목적으로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실시하는 등 정부가 사실상 카드 이용을 장려했다. 그 결과 민간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 비율은 2000년 13%에서 2019년 72%까지 증가했다. 반대로 현금결제 비율(2018년)은 한국 20%, 미국 26%, 일본 48%였다.

한국은 높은 카드 이용률을 활용해 신용·체크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181개국의 코로나19 경제대응 현황 자료를 보면, 이런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카드 충전’ 방식의 지원은 즉각적으로 지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원금이 쓰일 수 있는 업종, 지역, 기한 등을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필요와 취지에 맞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은 이를 가계 소비 진작 및 중소상공인 지원에 맞춰 설계했다.

반면, ‘현금 지급’ 방식의 지원은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채무 변제나 저축에 사용될 우려가 있다. 실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일본, 대만 등이 현금성 지원을 했으나 경기부양 효과에 대해선 논란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개인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하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제도 또한 도움이 됐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사회보험, 운전면허, 여권 등 특정 목적의 일련번호는 있지만, 통합을 시도한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중앙집권적 행정구조 아래에서 1968년 ‘김신조 사건’ 뒤 간첩 식별 등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번호를 부여했다. 번호 자체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아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이 있고, 모든 경우에 동일한 번호가 이용돼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감염 경로 파악과 재난지원금 지급에는 큰 도움이 됐다.

일본은 통합형 ‘마이넘버’ 제도를 2015년부터 시행했지만, 강제 사항이 아닌 탓에 보급률은 16%(5월 초 기준)에 그치고 있다. 1인당 10만엔(약 114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려면 마이넘버카드가 필요한 탓에, 마이넘버가 없는 많은 이들은 우편으로 신청서를 받아 관공서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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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보편지원하지 않고, 저소득층이나 경제적 피해가 큰 이들을 선별지원하는 나라들도 있다. 캐나다는 소득이 감소한 이들이 인터넷이나 전화로 신청하면 매주 500캐나다달러(약 45만원)를 최대 16주 동안 은행 계좌나 수표로 지원한다.

미국은 연소득 7만5천달러 이하의 납세자 94%에 대해 성인 1인당 1200달러(약 148만원)를 재난지원금으로 준다. 지급 수단은 국세청에 납세 신고를 하던 은행 계좌를 통한 이체와 수표 우편 발송 가운데 택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2001년, 2008년 경제부양을 위해 납세자에게 각각 300, 600달러를 같은 방식으로 지급한 경험이 있다.

개인에게 현금을 직접 주지 않고, 기업에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보조하는 경우도 많다. 독일과 프랑스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10명 이하 사업자에게 운영비 등을 지급하며, 이탈리아는 해고를 막기 위해 최대 9주 동안 노동자 급여의 80%를 지원한다. 피해 기준을 매겨 선별적으로 지원하면 형평성에 부합하고 재정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상 선정과 지급에 시간이 걸리는 단점도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싱가포르와 홍콩은 보편지원을 선택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계좌 이체와 수표 우편 발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소득별로 600~1200싱가포르달러(약 52만~104만원)를 지급한다. 홍콩 정부는 지난 2월 성인 약 700만명에게 1만홍콩달러(약 160만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지급 시기는 3분기 이후로 예상되고 있다.

김병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juan@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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