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국내조직, 테러단체 아냐” “트럼프의 우파 지지층 결집 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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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미 전역의 항의시위를 극단적인 이념 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실체도 불분명한 급진좌파 성향의 ‘안티파(Antifa)’를 배후로 지목하며 이들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내부의 적’을 만들어 책임을 전가하고 우파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인종차별 항의시위마저 정략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안티파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누가 안티파인지, 테러조직 지정 절차와 효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그간 시위대를 폭도ㆍ약탈자로 비난하며 연방군 투입까지 거론하던 데에서 사실상의 ‘색깔론’까지 꺼내들며 의도적으로 이념 대립을 부추기는 쪽으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그는 전날에도 “무고한 이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안티파와 급진좌파 집단이 폭력과 공공기물 파손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티파는 ‘안티 파시스트 액션’의 줄임말로 파시즘ㆍ백인우월주의ㆍ네오나치 같은 극우세력에 대항하는 무정부주의ㆍ급진 성향의 좌파활동가 집단을 지칭한다. 유럽에서 파시즘에 대항해 생겨난 이 운동은 미국에선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세력화하는 양상이다. 특히 2017년 샬러츠빌 극우 백인우월주의 집회를 조직했던 리처드 스펜서의 대학 강연을 막기 위해 화염병을 던지는 등 강경시위를 벌이면서 이름을 알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도 연이어 안티파를 폭력시위의 배후로 지목했다. 월리엄 바 법무장관은 성명에서 “곳곳에서 안티파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무정부주의ㆍ극좌 집단이 폭력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안티파를 폭력시위의 배후로 규정하며 “‘폭력적인 폭도’와 ‘평화로운 시위대’를 구분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안티파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애당초 실현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현행법에 따르면 외국 테러조직은 국무부가 자체 판단에 따라 지정할 수 있지만 국내 조직은 그렇지 않다”면서 “국내 조직과 외국 테러집단 간 연계 증명 등 세심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주요 언론들도 안티파가 공식 지도부나 회원이 없는 ‘느슨한 형태’의 자생적인 집단인 만큼 누가 안티파인지를 특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시위 사태를 좌우 이념대결 구도로 몰아가 우파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선언이 ‘문화 전쟁’을 촉발하고 그의 지지층을 기쁘게 하려는 시도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의 반(反)안티파 캠페인은 시위대의 진정한 분노로부터 주의를 환기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시위 주도세력에 ‘급진 좌파’의 낙인을 찍고 일부 폭력 양상에 총격 대응까지 경고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가 쉽게 바뀌진 않을 듯하다. 실제로 그는 이날 트윗글에서 “지난밤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한 주방위군이 신속하게 안티파가 이끄는 무정부주의자들을 진압했다”며 모범 사례로 치켜세웠다. CNN방송은 “백악관 내 온건파 참모들이 11월 대선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수용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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