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0486695 0012020060160486695 06 0602001 6.1.11-RELEASE 1 경향신문 0 false true true false 1591015441000 1591016168000 popular

여자의 적은 여자? 여자는 여자가 돕는다…‘여돕여’가 대세

글자크기

‘여성혐오 프레임’ 밀어내고 성장·우정 서사가 뜬다

경향신문

최근 방영 중인 SBS 월화드라마 <굿 캐스팅>(위 사진)과 엠넷 힙합 리얼리티 뮤직쇼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는 대중문화 속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이 구태로 밀려나고, ‘여돕여’(여자는 여자가 돕는다) 서사가 새로운 대세가 되는 풍경을 보여준다. SBS·엠넷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린 게 벌써 된장녀의 기미.” “계집애들이 뭉치니 말이 많아.”

‘국내 유일 여자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표방한 엠넷의 <언프리티 랩스타 3>(2016)는 ‘경쟁’ 아닌 ‘적대’로 얼룩졌다. ‘여자들은 감정적이다. 질투가 심하다. 외모에 대한 평가에 집착한다.’ 편견에 기반한 원색적인 비난들이 ‘디스랩’의 표피를 쓴 채 쏟아져나왔다. 래퍼로서 실력을 겨루는 경쟁의 장을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여성혐오 프레임이 대체한 결과였다. 남성 래퍼들이 주축이 된 엠넷 <쇼미더머니>가 경쟁의 틀 속에서 성장과 우정의 서사를 써내려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여성 래퍼들의 경쟁은 다분히 사적인 감정싸움으로 소비됐다.

“여자들끼리 모아 놓으면 적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돕는 게 대세다.” 지난달 14일 엠넷 힙합 리얼리티 뮤직쇼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굿 걸)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 래퍼 퀸 와사비의 말은 <언프리티 랩스타> 시리즈를 비롯해 대중문화계에서 지겹도록 반복됐던 ‘여적여’의 프레임을 단숨에 전복했다. 언더그라운드 래퍼부터 인기 걸그룹 멤버까지 10명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공연을 통해 ‘승부’를 본다는 뻔한 설정 위로, 이들이 적대가 아닌 협력으로 똘똘 뭉쳐 한 팀을 이룬다는 새로운 서사를 덧댄 <굿 걸>의 기획의도를 함축한 발언이기도 했다.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승부 다룬
엠넷 ‘굿 걸’의 ‘여적여’ 뒤집기
페미니스트 래퍼·걸그룹 간 우정
적대 아닌 협력으로 뭉쳐 경쟁

여자는 여자를 적대하지 않는다. 여자는 여자를 도우며 성장한다. 성차별적 고정관념 속에서 마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이른바 ‘여돕여’(여자는 여자가 돕는다) 서사가 대중문화 곳곳에서 만개하고 있다. ‘여적여’ 구도를 앞세워 인기를 끌었던 <언프리티 랩스타>의 구태를 폐기하고 <굿 걸>이란 실험을 시작한 엠넷의 변화는 ‘여돕여’가 대세가 된 대중문화계의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강요돼왔던 낡은 프레임을 박차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여성들, 그리고 이에 환호와 지지를 보낸 대중이 지핀 불이다.

지난해 방영된 엠넷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은 그 변화상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저 언니의 멘털을 무너뜨려야겠다.” ‘계급장 뗀 걸그룹 6개 팀의 컴백 대전’을 표방한 <퀸덤>은 방영 전 예고편을 장식한 멘트로 짐작하건대, <언프리티 랩스타3>의 낡은 여적여 구도를 그대로 계승할 태세로 시작됐다. 박봄, AOA부터 오마이걸, (여자)아이들까지 데뷔 연차가 상이한 여성 아티스트들은 각자 공연을 펼친 뒤, 어떤 팀이 자신의 ‘아래’ 혹은 ‘위’인지 평해야 하는 노골적인 적대의 장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퀸덤>의 인기를 견인한 것은 ‘여적여’에 기반한 ‘캣파이트’가 아니었다. 경쟁을 떠나 서로의 무대와 재능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열광하는 출연자들의 모습, 이 사랑과 응원을 디딤돌 삼아 전에 없이 새롭고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인 각 그룹의 실험이 <퀸덤>을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10명의 여성 뮤지션이 한 팀으로 뭉쳐 방송국이 데려온 상대팀과 매회 대결을 벌이는 <굿 걸>의 설정은 <퀸덤>의 ‘여돕여’ 서사로 재미를 본 엠넷이기에 가능한 실험이다. 그래서일까, <굿 걸>이 열어젖힌 ‘여돕여’의 세계는 대중이 기대했던 것보다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서 있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이자 채식주의자 래퍼 슬릭과 K팝을 대표하는 ‘국민 걸그룹’ 소녀시대 효연이 한 팀이 돼 ‘찰떡궁합’ 공연을 펼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색깔이 많이 다를 것 같다고 편견을 갖고 있었어요. 트러블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너무 미안해요.” 지난 28일 방송된 3회, 효연이 슬릭과의 공연을 마친 뒤 그에 대해 지녔던 편견과 오해를 사과했다. 페미니스트와 걸그룹은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여적여’의 망령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드라마 ‘굿 캐스팅’ 화제 요인도
여성 국정원 요원들의 협력 서사

망령을 몰아내는 ‘여돕여’ 물결 속에서 여성들은 한층 다채롭고 자유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SBS 월화드라마 <굿 캐스팅>이 첫 회 12.3%(닐슨코리아)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비혼과 기혼, 자녀의 유무 등 다양한 차이를 떠나 기꺼이 똘똘 뭉쳐 위력을 보여주는 국정원 여성 요원 3인을 중심에 세운 기획의도 덕이 컸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드디어 악의가 없는’ 배우 유인영의 등장이었다. TV 드라마의 뻔한 ‘여적여’ 구도 속, 틀에 박힌 ‘악녀’ 밖으로 빠져나온 유인영에게 대중은 따뜻하고 섬세한 새 면모를 발견했다.

“이제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움직여보려고요. 그래서 영화도 직접 만들고 싶고, 더 크게는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난 코미디언이니까 이것만 해야겠다고 제한을 두는 게 아니라 진짜 하고 싶던 연기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무대,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코미디언 안영미는 그룹 셀럽파이브를 통해 송은이, 김신영, 신봉선 등 동료 여성들과 연대하고 뭉친 경험들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굿 걸> 속 ‘여돕여’ 서사가 앞으로도 기대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침내 어깨를 겯은 여성들이 얼마나 더 진보하고, 더 도전할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 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함께 볼만한 영상 - TV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