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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코로나19 사각지대' 노인 곁엔 청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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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 반부터 줄 섰어요”

종로구 사회복지원각 무료급식소 번호표 1번을 거머쥔 노인의 말이다. 도시락 배부 시간은 10시 반부터니 무료 식사 한 끼를 받기 위해 길에서 기다린 시간은 4~5시간가량이다.

이날 배부되는 도시락 개수는 350개, 그날따라 사람이 많이 모이면 도시락을 받지 못할 수 있어 꼭두새벽부터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받은 도시락 한 개가 하루 식사의 전부인 노인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다수의 무료급식소 운영이 중단되면서 이를 통해 식사를 해결하던 노인들은 속수무책이 됐다. 종일 굶는 노인들도 생겨났다. 코로나보다 당장 먹을 것이 걱정인 이들에게 이마저도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포장된 도시락을 배부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시락 포장부터 그것을 옮기고 나눠주는 일까지는 꽤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더구나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한 명씩 손 소독을 해주는 등 최소한의 방역 작업을 거쳐야 하므로 봉사자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 봉사활동 위해 황금주말 내놓은 청년들
"앗! 거기 토마토 안 들어갔어요!"

약 350~400여명이 죽 늘어선 줄의 끝엔 도시락 포장으로 분주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젊은 청년들이다. 도시락은 한 사람이 봉투에 수저를 담아 옆 사람에게 넘기면 다음 사람은 요구르트를 담고, 다음 사람은 토마토를 담고 하는 방식으로 포장된다.

오랜 시간 길 위에서 기다렸을 노인을 생각하면 그들의 손은 더욱 분주해진다.

코리아레거시커미티(KLC)라는 이름 하에 모인 이 청년들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운영을 잠정 중단한 노인 관련 공공시설 및 다중 이용시설을 대신해 지난 9주간 노인분들께 무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지금까지 나눠준 도시락 개수만 6350인분이다.

KLC는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5년 만들어진 젊은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모인 비영리 민간단체다.

봉사팀장인 중앙대학교 유선호(27)씨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저소득층 노인들이 걱정돼 급식을 대신해 도시락 배부라도 진행하는 소수의 급식소에 봉사자와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했다"며 "매주 토요일은 성남시에 위치한 '안나의 집'에서, 일요일은 사회복지원각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특유의 젊은 감각으로 글로벌 소셜 플랫폼인 TikTok과 협업하여 총 1만개의 도시락을 기부받기도 했으며, 그 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홍보하며 글로벌 펀드레이징을 진행하는 등 더 많은 도시락 배부를 위한 모금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아주경제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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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마다 나오는 게 습관이 됐어요"
학업과 직장 생활로 바쁜 20대, 30대 청년들이 주말마다 봉사를 나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는 그들에게 '대체 무엇이 매주 이곳에 오게 하냐'는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그들의 답변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9주 동안 한 번도 봉사에 빠진 적이 없다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임상준(21)씨는 "저희가 도시락을 드리지 않으면 굶는 노인 분들이 계시지 않냐"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듯 "그냥 습관인데요"라고 답했다.

또 봉사팀의 리더 윤성일(33)씨는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며 자신이 꾸준히 봉사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 친구는 용인에서 오고, 이 친구는 동탄에서 온다. 심지어 경기도 이천에서 오시는 분도 있다"며 "생각해보면 봉사활동에 시간이나 거리는 중요치 않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4주째 주말마다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가수 김윤지(NS윤지)씨는 "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 앉아 우리가 나눠준 도시락을 드시는 노인들을 뵙는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어르신들이 이전처럼 다 함께 모여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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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를 마친 뒤 사회복지원각 무료 급식소 앞에서 KLC 청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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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 인턴기자 only1hye1@ajunews.com

이혜원 only1hye1@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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