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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韓 'R&D 위한 R&D' 벗어나 기술사업화·창업 중심으로 나가야"

글자크기

이스라엘 30년전 경제 악화...세계 겨냥 기술 사업화로 타개

韓 R&D 투자 많아...러닝머신서 운동장으로 나가 땀 흘려야

유대인 네트워크-한국 우수한 제조기술 결합 땐 시너지 커

코로나로 부각된 K-방역 韓에 기회...원격의료 적극 키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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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스닥시장에 벤처기업을 100여개나 상장시키며 세계적 ‘창업국가’로 꼽히는 이스라엘. 하지만 내수시장이 매우 작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30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에 급급했다. 규제도 많았고 자본시장도 불안했다. 지난 1991년 소련 해체로 2년에 걸쳐 소련 현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100만명이 귀국하는 바람에 높은 실업률과 주거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위기’가 ‘기회’로 바뀐 것은 귀국한 고급인력에다 국방 분야에서 쌓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술 사업화를 이뤄 세계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특유의 도전 의지를 의미하는 ‘후츠파 정신’도 한몫을 했다.

그렇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 측면에서 이스라엘을 제치고 세계 1위인 한국은 왜 ‘창업대국’이 되지 못할까. 이스라엘보다 인구도 6배나 많고 제조업 기반도 훨씬 나은데 말이다. 의문을 풀기 위해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이원재(37·사진) 이스라엘 요즈마그룹 아시아 총괄대표를 만났다. 그는 “R&D 투자는 양국 모두 엄청나게 많은데 기술 사업화에서 차이가 크다”며 “한국이 러닝머신에서 열심히 뛰어 근육을 많이 키웠으니 이제 운동장으로 나가 땀을 흘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30년 전만 해도 이스라엘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내수시장이 워낙 작고 자원도 거의 없는데다 소련에서 유대인이 대거 돌아오며 실업률마저 폭증했다. 한국 인구가 5,200만명 가까이 되는데 외부에서 갑자기 1,000만명가량 유입됐다고 생각해보라. 1990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미사일도 이스라엘에 떨어졌다. 당시 창업은 자살행위였다. 저도 두 번이나 폭탄테러로 죽을 뻔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켰나.

△기술 인큐베이팅을 통해 사업화했다. 모태펀드(Fund of Funds)인 요즈마펀드를 만들고 해외 자금을 유치해 벤처·스타트업을 키웠다. 마침 소련에서 들어온 교수·엔지니어와 박사급 연구원의 수준도 높았다. 당시 산업부 수석과학관(장관급)이었던 이갈 에를리흐 현 요즈마그룹 회장은 총리의 실업률 대책 주문에 요즈마펀드 설립을 건의했다. 요즈마의 뜻은 ‘창의’다. 세계적인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있었지만 내수 규모가 작아 R&D로 그냥 끝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대학과 연구소, 지역에 24개의 기술 인큐베이터와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TIPS)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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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마펀드 설립이 티핑포인트가 됐다는 얘기인데.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기술을 선별해 창업으로 유도했다. 글로벌 창업자를 비롯해 변리사·회계사·변호사도 지원했다. 당시에는 벤처캐피털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었다. 정부가 요즈마펀드에 40%를 출자하고 60%는 해외 자금을 끌어오자는 것이다. 1993년 정부가 1억달러를 출자하고 시큰둥하던 해외투자가들도 설득해 펀드를 만들었고 민영화를 거쳐 현재 40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23개 투자벤처를 나스닥에 상장하고 대박을 거둔 해외투자가들이 이스라엘에 공격적으로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이스라엘도 관료주의가 심해 애로가 컸을 텐데.

△부처 간 높은 칸막이와 규제 등이 만만치 않았다. 전 세계 유대인들이 모여 만든 나라이기에 정부에서도 알력이 있어 쉽지 않았다. 요즈마펀드를 설립할 때 국회의원들이 “돈도 없는데···”라며 반대하는 기류가 적지 않았다. 다만 고위관료들이 부국강병에 사활을 건 점은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에를리흐 수석과학관 등 일부 공무원들이 외압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파했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시장 논리가 적용되는 혁신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 바탕에는 후츠파 정신이 있다.

-후츠파는 유대인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말인데.

△히브리어로 ‘담대한’ ‘저돌적’이라는 뜻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때로는 뻔뻔할 정도로 당당히 주장하는 특유의 도전정신이다. 처음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학생이 심하게 언쟁하는 듯한 풍경을 보고 ‘버릇이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히브리어를 이해하면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수많은 질문을 하고 토론식으로 바보 같은 답변도 수용하면서 개념을 이해하도록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교육은 사회생활까지 이어지며 혁신적 사고와 다양한 시각을 갖는 데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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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강소국’이 된 비결을 이해할 것 같다.

△860만명의 소국이지만 나스닥에 미국·중국 다음으로 많이 상장(97개)시켰다. 1인당 창업기업이 가장 많다. 삼성·현대차·LG를 비롯해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의 R&D센터가 이스라엘에 400개나 있다. 이들 센터에 속한 기업 벤처캐피털(CVC)은 투자나 인수합병(M&A)도 한다. 미국·유럽의 유대계 네트워크도 큰 힘이 된다.

-요즈마의 투자기업도 나스닥에 많이 상장했는데.

△로스차일드·JP모건·골드만삭스 등 유대계 자금으로 시작한 글로벌 금융사들이 이스라엘 기술에 주목했고 미국 실리콘밸리 등의 투자를 끌어냈다. 스타트업·벤처의 성공은 글로벌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 글로벌 기술 트렌드에 맞춰 벤처 투자를 해야 한다. 패션처럼 시장에서 원하는 유행을 예상해야 하고 너무 빠르거나 늦으면 안 된다. 혁신기술을 갖고 와서 한국의 우수 중견 제조사와 조인트벤처를 만들려고 한다. 한국 파트너는 아시아 시장을 담당하고 이스라엘 측은 미국·유럽을 공략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즈마는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아시아 기술이전 사업권도 갖고 있지 않나.

△와이즈만은 기술이전을 통한 파생매출이 연간 42조원을 넘어 연구소 단위로 10년 넘게 세계 1위다. 처음부터 세계를 겨냥해 기초과학 기술을 벤처와 글로벌 제약사에 이전했다.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휴미라(연간 24조원 매출) 등 블록버스터 약도 이렇게 나왔다. 요즈마는 7년 전 한국에 처음 진출할 때 “와이즈만에 한국 출신의 우수한 의사·약사 인재들이 많고 정부의 바이오 R&D 투자도 많아 임상을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홍보했고 4년 전 아시아 기술이전 사업권을 받았다.

-요즈마가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은 이스라엘보다 큰 시장과 우수한 제조기술 등을 갖고 있다. 대기업도 많다. 요즈마 투자사 중 80% 이상이 글로벌 기업에 매각되거나 나스닥 상장이 이뤄진다. 에를리흐 회장은 한국 벤처에 관해 “세계로 나가면 백조가 될 수 있는데 작은 시장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고 비유했다. 싸이월드나 새롬기술이 처음부터 세계를 겨냥했다면 오늘날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프가 없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요즈마펀드는 요즘 ‘백조 찾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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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이 R&D 사업화 정도에서 차이가 큰데.

△매년 블룸버그 인덱스를 보면 한국과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혁신국가로 꼽힌다. 양국 모두 R&D 투자도 많이 한다. 하지만 결과물에서 이스라엘은 기술 사업화와 창업 중심의 R&D 정책을 펴 최상위권인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 R&D를 위한 R&D 탈피, 산학연 융합연구 활성화, 체계적인 창업보육, CVC 투자 확대를 이뤄야 한다. 실내 러닝머신으로 뛰며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달리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한국 벤처기업이나 출연연구소, 대학 연구실과 논의하다 보면 빠른 스케일업이 가능해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요즈마가 한국과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은.

△한국의 뛰어난 제조기술과 R&D 능력에다 이스라엘의 혁신기술과 유대인 네트워크를 결합하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혁신기술을 주로 미국·유럽으로 가져갔는데 한국이 파트너로 제격이다. 코스닥 기업인 바이오리더스에 와이즈만의 항암 기술을 이전했고 웰마커바이오(항암치료제), 신테카바이오(유전체 빅데이터)와 곧 상장을 앞둔 SCM생명과학 등에는 투자를 했다. 최근에는 노벨상의 산실인 히브리대가 최첨단 공기정화 기술을 제조할 한국 기업을 찾고 있다. 필터가 아닌 화학작용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없앨 수 있는 기술이다. 이스라엘이 가진 꿈 중 하나가 삼성·현대차·SK·LG 같은 대기업을 만드는 것일 정도로 한국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간 패권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과 손잡고 동남아나 인도·중동 등 신흥시장으로 진출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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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군을 창업사관학교로 잘 활용하는데.

△공군에서 유도미사일추진체를 연구하던 장교가 개발한 기술을 나스닥에 상장한 사례가 있다. 카메라가 달린 알약을 삼켜 대장을 촬영할 수 있게 한 기술이다. 군의 언택트 기술을 사업화하는 곳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K방역이 롤모델이 된 것이 우리에게는 기회인데.

△세계 언론이 대대적으로 한국을 높이 평가하며 바이오 산업 등이 주목받고 있다. 개방형 혁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전쟁·테러에 대응해 지정병원을 통해 원격의료를 활용하고 있는데 한국도 원격의료를 적극 키워야 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12세에 비교종교학박사 과정 유학길에 나선 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이스라엘에서 중고교를 거쳐 히브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그는 탈무드 교육을 받고 후츠파 정신을 배웠다고 한다. 귀국해 군 복무를 마친 뒤 다시 이스라엘로 건너가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체제에서 아시아 경제보좌관으로 일했다. 그 뒤 요즈마펀드에 합류해 현재 한국·중국·싱가포르·일본·홍콩법인을 총괄하며 벤처투자와 혁신기술 이전에 나서고 있다. 2016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요즈마캠퍼스’라는 기술 인큐베이터를 설치, 운영 중이며 세계 시장을 겨냥한 엑셀러레이팅(성장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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