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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태초에 알리왕왕이 있었다. 그리고…” 알리바바를 뒤흔든 메신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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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오씨(陆兆禧) 알리바바 전 CEO. 루자오씨는 모바일 메신저 라이왕을 전략 사업으로 추진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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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메신저의 시조새 알리왕왕(阿里旺旺)

알리바바에는 ‘알리왕왕(阿里旺旺)’이라는 오래된 메신저가 있다. 타오바오(알리바바의 C2C플랫폼)에서 사용하는 메신저로서, 판매자와 고객을 1:1로 실시간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수단으로 유명하다. 이를통해 물건값 흥정도 하고, 클레임도 걸고, 판매자는 상품 홍보의 수단으로도 사용한다. 타오바오에서 없어서는 안 될 킬러 콘텐츠였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중국만 가능한 인해전술적인 형태라 인력이 모자라고 인건비가 비싼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요즘엔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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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전통의 메신저, 알리왕왕(阿里旺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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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리왕왕이라는 메신저는 알리바바그룹 내에서 업무용 메신저로도 사용했는데, 당시 문제는 직원들이 잘 안 본다는 것이었다. 혹은 보고도 못 본 척하기도 했다. 급한 용건 대부분은 지급된 업무용 전화로 처리했다. 개인적으로 알리바바 입사 초반엔 중국어도 못했으니 답이 없을 때는 속이 터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 알리왕왕은 현재도 여러 버전으로 변주되어 판매자와 사용자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비운의 王子, ‘라이왕’의 등장

텐센트가 국민앱으로 등극한 ‘위챗’을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등 여러 영역에서 알리바바의 강력한 경쟁자로 나서는 시기가 도래한다. 이에 알리바바도 메신저를 출시하기로 결정하는데, 그것이 바로 ‘라이왕(来往)’이다. 당시의 분위기로 보자면 알리바바 그룹은 라이왕에 사활을 걸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CEO였던 루자오씨(陆兆禧)는 ‘CEO 프로젝트’라고 선포를 하고 회사의 모든 리소스를 이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실력 있던 디자이너들도 이 프로젝트에서 다 차출해 갔다. 엄청난 야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성공 시 엄청나게 달콤한 포상도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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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 라이왕 vs 위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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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이 출시되었고, 루자오씨는 서비스 붐업을 위해 무리한 KPI를 던진다. 전 직원에게 새 친구 300명을 추가하라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사람이 많은 중국이라고 해도 새로운 메신저에 친구를 300명을 추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친구 리스트에 추가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온갖 판매자들, 광고들, 사기꾼들이 유입되며 혼잡한 메신저 환경이 만들어졌다. 300명 달성을 못한 사람은 연말 보너스를 주지 않는다고 하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당시 동료 한 명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인원수 채우기를 하지 않았는데,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에게 보너스는 지급되지 않았다.

수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며 나름의 시장 전투력을 보여주던 라이왕은 이내 “왜 이서비스를 써야 하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에대한 본질적인 답을 내부에서도 찾지 못했고, 결국 아무도 쓰지 않는 툴로 전락하고 만다. 그 뒤로는 ‘디엔디엔총(点点虫)’이라는 다른 컨셉의 앱으로 변경하여 근근히 생명을 이어가다 최근에는 존재 유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처절한 실패라 할 수 있다.

프로덕트는 죽었으나 팀은 남았다.

항저우에는 ‘후판화원(湖畔花园)’이라는 유명한 아파트 단지가 있다. 마윈의 생가이자 알리바바가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라이왕으로 치욕의 참패를 했지만, 라이왕에 투입된 인력은 알리바바의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이들은 후판화원으로 들어가 장기간 합숙을 시작하며 새로운 메신저 서비스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용 메신저의 베타 테스트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찬바람이 불던 2014년 12월 1일이다.

바로 비즈니스용 메신저 딩딩(钉钉, 영문명 DingTalk)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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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슬랙과 트렐로 등 업무용 툴이 있었지만, 비즈니스용 메신저의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딩딩이 시장에서 성공할지 의문부호가 있었다. 그러나 한가하게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알리바바를 초토화시킨 단 하나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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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딩에는 알리왕왕이나 위챗과는 다른 매우 심플한 기능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보낸 메시지를 누가 읽고 안 읽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별거 아닌 듯한 기능은 알리바바그룹의 커뮤니케이션 효율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특히 비즈니스 단체창에서 강력한 역할을 하게된다. 일단 메시지를 읽고 답변을 안 하는 ‘읽씹’이 불가능하고, 누군가가 안 읽고 있다면 딩딩의 ‘DING기능’을 통해서 “문자/전화”를 통한 압박까지 송출할 수 있다. 전화 DING을 보내게 되면 친절히 AI가 전화를 걸어 메시지의 내용을 낭독까지 해준다.

속도가 생명인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러한 압박적 커뮤니케이션은 상당한 업무효율 향상을 가져왔고, 알리바바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로 작용한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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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그룹 화장실에 붙어있는 유머 이미지


엄청난 효율의 향상을 가져온 기능이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업무 효율만큼 늘었다.

특히 ‘996’이라 불리는 야근문화로 유명한 알리바바에서 더해진 메신저의 압박은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이 되었다. 밤낮없이 울리는 메신저 알람으로 인해 집에서 쉬고 있어도 쉬는 느낌이 안 날 정도였다.

오죽하면 알리바바의 화장실에서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의 휴대폰엔 연인의 달콤한 메시지가 와있지만, 본인은 100개가 넘는 딩딩의 알림만 있다’라는 유머 이미지가 붙었던 적도 있다.

이렇게 강력한 빛과 그림자를 만든 딩딩은 승승장구하여 상당히 많은 고객사를 확보한 잘 나가는 서비스가 되었다. 합숙도 불사한 프로젝트 팀은 엄청난 보너스와 함께 승진도 했다.

다만, 딩딩에 확인 기능을 만든 개발자는 죄책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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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 디자이너로 2011년 5월에 알리바바에 입사해 8년 반 근무했습니다. 타오바오 메인디자이너로 디자인 컨설팅, 메인채널 디자인을 리드했고, 타오바오의 수출 플랫폼의 타오바오해외(淘宝海外)의 디자인 팀장,, 알리페이 디자인스트럭쳐팀과 브랜드디자인팀의 팀장을 역임했습니다. 중국의 IT및 디자인 업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중국에서의 좋은 경험들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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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외부기고(contribution@plat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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