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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아이와 동반자살은 명백한 살해" 살아남은 엄마 2명 징역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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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동반자살, 온정주의 시각 걷어야"

두 사건 피고인에 각각 징역 4년 선고

중앙일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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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살아남은 엄마 2명이 동시에 법정에 섰다. 두 사람은 각각 2살 아들, 9살 딸과 동반자살을 시도했고 자녀만 숨졌다. 각기 다른 사건이지만, 법원은 “자녀와 동반자살은 결국 살해”라며 지난달 29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게 동일하게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2살 아들 사망, 기억하지 못 하는 엄마



울산지법의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A씨(42)는 2016년 재혼했다. 같은 해 12월 아들을 낳았고, 남편의 사업은 승승장구해 남 부러운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풍족한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남편의 사업은 두 번 부도가 났고, 남편이 외도까지 하자 매일 같이 부부싸움을 했다.

A씨는 지난 2018년 12월 울산의 자택에서 남편과 싸운 뒤 2살 아들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 남편은 집에서 자던 중 일어나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 아들은 사망했고, A씨는 실질적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3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사건 후 A씨는 인지 능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단기 기억 상실 등 후유증을 겪는 데다 사건 정황 등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남편을 알아보았으나 엉뚱한 이름을 댔다. 사건 동기를 묻는 남편의 질문에 “네가 바람피워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경찰 조사 등에서 A씨는 피해 아동을 언급하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남편의 울음에도 무표정한 채 기분의 동요가 보이지 않았으나, 면담 말미에 피해 아동을 언급하자 “죽고 싶어요”라고 진술한 적도 있었다.

남편은 선처를 요구했다. 남편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면서도 “아내가 멍청이 일지라도 곁에 있는 편이 낫다, 나도 자살 충동을 느낀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아내의 우울증은 자신이 원인 제공한 면도 있으니 징역형을 받게 될 시 자신도 함께 수용해 달라”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A씨에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사표현을 할 수 없고 방어능력이 전무한 영아에 대한 극단적 범행이며, 피해 아동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 점에서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나 혼자 가면 안 되니…같이 데려가려 했다”



B씨(40)는 자폐증을 앓는 9살 딸의 엄마였다. 딸은 사회적 연령이 2살 정도에 불과해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B씨는 딸을 돌보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2017년 11월부터 우울증 등을 앓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월 남편까지 무너졌다. 남편의 어머니가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남편은 우울증·공황장애로 휴직과 입원치료를 반복했고,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B씨는 자살을 결심했다. 동시에 B씨는 “자신이 죽게 되면 남겨진 딸을 돌볼 사람이 없고 남편에게도 부담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B씨는 딸을 먼저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깨어난 건 자신 뿐이었다.



재판부 “살해된 아이의 진술 들을 수 없어”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B씨에게도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딸이 다니던 학교의 교감과 B씨의 정신과 의사가 탄원서를 내 “아이의 교육과 치료를 위해 헌신하던 엄마였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이자 살인”으로 봤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2009년부터 최소 279명(미수 포함)의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의 죽음에 동반됐는데 매달 두 명꼴”이라며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지목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동반자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 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부모라는 점이 관대한 처벌의 이유로 거론되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는 그 어떤 경우도 용납될 수 없는 중범죄다”고 판결의 근거를 설명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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