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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봉쇄령 뚫고 열흘 동안 2000km 걸어 집에 도착한 인도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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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에서 한 20대 남성이 집에 돌아가기 위해 열흘 동안 2000㎞를 걸었다. 두 달 째 봉쇄가 이어지고 있는 인도에서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집에 돌아가기 위해 도보 여행을 하고 있다. 24일까지 집으로 걸어가다 사망한 이주 노동자가 최소 244명으로 추산된다고 CNN은 3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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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인도 중부 도시 하이데라바드의 한 기차역에서 출발을 앞둔 기차에 탄 이주 노동자들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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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는 3월 25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전국적인 봉쇄령을 시작했다. 봉쇄령으로 경제 활동이 중단되면서 도시로 일을 하러 온 농촌 출신 노동자 대다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할 일이 없어졌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대중교통이 운행을 멈췄고 마차 같은 이동수단은 평소에 비해 가격이 4배 가까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라제쉬 처우한(26)도 그중 하나였다. 인도 북부 출신인 그는 지난해 12월 남부 도시 벵갈루루로 석공 일을 하러 왔다. 고향집에서 2000㎞(1250마일)가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고향에 있는 가족11명이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벵갈루루에서 벌었다. 하지만 봉쇄령이 내려져 모든 공사 현장이 중단되면서 더 이상 일할 곳을 찾지 못하게 됐다.

처우한이 처음부터 도보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인도에서는 지난 3일부터 제한적으로 기차 운행이 재개됐다. 하지만 이동을 원하는 21만4000명 중 1만명 정도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봉쇄령 때문에 경찰이 차에 탄 사람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차를 태워주는 대신 터무니 없는 요금을 요구하는 운전자도 있었다. 처우한은 검문소와 경찰들을 피해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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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인도 중부 도시 하이데라바다의 한 기차역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집에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 줄을 서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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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동안 표를 구하려 했지만 실패한 처우한과 동료 10명은 지난 12일 집을 향해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처우한의 수중에 있는 돈은 170루피(약 2800원) 뿐이었다.

처우한 외에도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도보로 길을 떠났지만 여정 도중 피로와 배고픔, 탈수 증상으로 사망했다. 길을 걷다 기찻길에서 잠이 든 노동자 16명이 밤 사이 기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경찰에 붙잡혀 원래 있던 도시로 돌려보내지기도 했다.

처우한 일행도 벵갈루루 경찰의 감시를 피해 밤새 기찻길을 따라 2㎞를 달렸다. 48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어서 겨우 도시 사이 경계 지역을 빠져나왔다. 처음 3일 동안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고 휴대전화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지도를 볼 때만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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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한은 지난 12일 인도 남부 벵갈루루를 출발해 고향집이 있는 북부 바바간즈까지 열흘 동안 약 2000km를 걸어갔다. /구글지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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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되던 날 NGO 단체가 이주 노동자를 위해 운영하는 급식소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경찰이 달려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는다”며 “10피트(3m)씩 떨어져 앉을 수 있는 정도의 인원만 수용하라”고 했지만 수적으로 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물러갔다. 처우한은 “바이러스도 무서웠지만 그럴수록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고 CNN에 말했다.

벵갈루루를 출발한 지 열흘 째 되던 날 처우한은 집에서 3.2㎞ 떨어진 곳에서 경찰에 붙잡혔고 격리 시설로 보내졌다. 열흘 동안 처우한은 몸무게 10㎏가 빠졌고 발은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을 정도로 부었다. 24일 처우한은 가족들을 만나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을 받았고 꿈에 그리던 집에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처우한은 “봉쇄령이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 다시 일자리를 찾아 벵갈루루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CNN에 말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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