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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SK케미칼, 유해성 알고도 팔았나···가습기살균제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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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과 ‘가습기메이트’ 공동 제조, 옥시에는 ‘가습기당번’ 원료 공급


가습기 살균제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제품은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5월 27일 기준 폐 질환 신청자 4685명)과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폐 질환 신청자 1511명)다. 두 제품 모두 SK케미칼과 관련이 있다.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를 애경과 공동 제조했다. 옥시에는 ‘가습기당번’에 쓰인 흡입독성 원료를 공급했다. 두 제품에 대한 형사 재판을 각각 받고 있는 SK케미칼은 모두 유죄가 나오면 가습기 살균제 연루 기업 중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된다.

유해성 인지 정황 수두룩

‘가습기메이트’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다. 홍 전 대표는 SK케미칼이 애경과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한 2002년 당시 대표이사였다. 홍 전 대표 측이 받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제조·판매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경우다. 법원이 최종적으로 이 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당시 SK케미칼에 지켜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다는 점부터 규명돼야 한다. SK케미칼 측의 변론 전략은 이 점에 집중하고 있다. 당시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 흡입 독성 원료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을 인지하지도 못했고, 이 원료가 유해한지 여부도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의무’가 없다고 본다.

SK케미칼의 이러한 입장을 뒤집는 증거들이 최근 공판에서 밝혀졌다. 지난 4월 홍 전 대표 등에 대한 공판에는 SK케미칼이 과거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하면서 CMIT·MIT 원료 교체를 검토한 정황이 담긴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 PPT 파일과 엑셀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는 CMIT·MIT를 다른 원료로 교체하자는 제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주목하는 것은 이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이다. 보고서는 SK케미칼이 ‘가습기메이트’ 제품의 정식 리뉴얼 없이 돌연 ‘헌팅턴 라이프 사이언스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했다’는 문구를 용기에서 삭제했던 2003~2004년 무렵 작성됐다. SK케미칼은 영국 임상시험 대행 연구기관인 헌팅턴에서 CMIT·MIT 성분 의뢰를 하지도 않아놓고, 이곳에서 안전성을 인정받은 것처럼 허위광고를 했다. 이후 애경 연구팀에서 이를 문제 삼자 ‘헌팅턴’을 ‘서울대’로 교체하려다 안전성 문구 자체를 지워버린다. SK케미칼이 원료의 유해성을 인식한 뒤 내부적으로 용기 문구 삭제와 동시에 원료 교체를 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 문건은 홍 전 대표를 기소한 지 2개월만인 지난해 9월 발견됐다. 가습기 살균제 수사팀 소속 김방글 검사(36·사법연수원 40기)가 방대한 양의 SK케미칼 압수물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찾았다. 검찰은 이미 스카이바이오팀 여러 명을 조사해 보고서 작성 경위와 작성자를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추후 심리를 통해 이 보고서에 대해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흔들리고 있다. 지난 5월 12일과 18일에는 검찰 측 증인으로 환경독성보건학회 연구원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 교수, 김재용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가 증인으로 나왔다.

환경독성보건학회는 지난 5월 발표된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인정 및 판정기준 개선연구’ 보고서를 통해 “가습기메이트는 기존에 정부가 피해로 인정한 폐 섬유화·천식 등 일부 질병 외에도 다수 질환과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 보고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성분(PHMG 및 CMIT·MIT) 구분 없이 호흡기계 입원 발생의 급격한 증가를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독성간염·폐렴·기관지확장증에 대해서는 “가습기 살균제와 일정 부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들 질환도 구제급여 상당(구제계정)으로 우선 지원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간질성 폐 질환에 대해서도 “천식과 더불어 가장 피해 유병률이 높다”며 피해 인정 기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경향신문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지난 2019년 8월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방청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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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원료 소개 PT했다”

2016년 진행된 첫 번째 가습기 살균제 검찰수사는 신현우 전 옥시 대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는 2018년 징역 6년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당시 검찰은 옥시 제품에 흡입 독성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공급한 SK케미칼을 기소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될 줄 모르고 원료를 납품했다“는 SK케미칼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차 가습기 살균제 수사에서는 옥시 제품에 대한 SK케미칼의 형사책임이 드러났다. 검찰은 1998~2007년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 연구실에서 PHMG 개발 업무 등을 총괄한 최모씨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최씨 등에 대한 공판에서는 과거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될 줄 알고도 독성 원료를 옥시에 넘겼다는 구체적 진술과 증거가 등장했다. 2000년 옥시 연구원이었던 ㄱ씨는 지난해 10월 증인으로 나와 최씨를 포함한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이 2000년 하반기 인천 소재 옥시연구소를 방문해 PHMG 원료 홍보 PT를 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옥시 가습기당번 원료 변경과 관련해 PT를 한 업체는 SK케미칼이 유일했다”며 “최씨에게 PHMG가 가습기당번 용으로 사용한다고 분명하게 알려줬다”고 했다.

검찰은 최씨 등의 공판에서 SK케미칼이 2002년 일본에서 PHMG 특허 출원을 한 자료도 증거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PHMG의 용도로 ‘가습기’가 적혔다. 특허 출원 시점은 옥시에 PHMG를 납품한 지 약 2년이 흐른 뒤다. 옥시 측은 검찰조사에서 “종전 국내 출원 특허에는 PHMG 용도에 가습기가 없었는데, 2000년 10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로 PHMG를 사용하면서 SK케미칼이 일본 특허 출원에 가습기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SK케미칼이 검찰수사에 대비해 인지 사실을 숨기려 한 정황도 검찰수사에서 드러났다. 2009년 PHMG 분석 보고서에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가습기 청정기’로 기재한 배경에 조직적 은폐 시도가 있었다. SK케미칼 전 스카이바이오팀 직원 ㄴ씨는 지난 5월 25일 공판에서 “권모 SK케미칼 파트장 등과 상의해 보고서에 ‘살균제’를 ‘청정기’로 변경했고, 이는 PHMG 사용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란 취지로 진술했다.

SK케미칼이 PHMG의 인체 유해성을 인식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수사 결과에 따르면, SK케미칼은 2004년 PHMG의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협업한 미 업체 론자로부터 ‘스프레이형 제품에는 흡입 독성 실험이 필수’라는 얘기를 듣고도 독성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다. 옥시에 원료 납품 중단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SK케미칼 측은 ‘PHMG는 SK케미칼 전신인 유공에서 개발된 물질이기에 책임이 없다’, ‘최씨가 옥시연구소에 방문했다는 기록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에 쓰이는 PHMG 농도를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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