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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톡톡에듀]대화 많은 가정에서 우등생이 나오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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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나샘의 교육을 부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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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 그리고 제11차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협상, 코로나19 팬더믹 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원천기술의 가치가 확연히 드러나는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일본이 경제 보복의 무기로 삼은 포토레지스트나 고순도 불화수소,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코로나19 진료 키트,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운용하고 있는 방위체계 등이 그렇다.

원천 기술이 없으면 비싼 가격으로 사야 할 뿐 아니라,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나라는 가능한 한 많은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는 총력전을 펴고 있다. 물론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걸음마 수준부터 시작하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생산 시설과 연구 인력 육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눈앞의 비효율이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효율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편리성과 단기적 효율성을 위해서 구매 버튼만 클릭한다면, 그야말로 장기적인 ‘호갱’이 될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매 금액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의존성이 ‘스스로 시작하고 세울 수 있다’는 굳센 기상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원리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런데 교육에서는 거의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수수께끼라면 수수께끼다. 일단 교육의 ‘효율성’을 위해서 학부모 역할을 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즉 교육 정보는 엄마가 담당하고 아빠는 재정적인 지원만 해주는 식이다. 오죽하면 입시 성공의 3요소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할까. 아이가 뭔가 잘못했을 때 남편이 아내에게 "애를 도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라고 질책하는 드라마 장면도 많았는데, 진짜 어이없고 성차별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거꾸로 상대가 뭔가 참견할 때 “(교육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만히나 있지?”라고 쏴주고 싶다면, 이것 역시 성차별적인 발상이 아닐까?

모든 의사결정이 그렇듯이 한 사람이 독점했을 때는 실수가 잦을뿐더러, 한쪽에 치우치는 편향성을 고치기가 어렵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을 때 발생하는 감각의 왜곡을 ‘동굴의 우상’이라 표현했다. 예컨대 각종 정보가 쏟아지는 엄마들의 커뮤니티는 감각이 왜곡되기 쉬운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 맥락보다는 눈앞의 성과에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에, 자녀의 독자적인 리듬과 성장 곡선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자꾸 다그치게 되는 것이다. 다그치면 자녀는 도망가게 되니 결국 ‘비효율’적인 리듬이 된다. 그러다 보면 뭔가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교육 전문가들에게 자녀를 맡기고 싶어진다. 이렇게 해서 ‘유명하니까 이 사람 말이 맞겠지’ 식의 ‘극장의 우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게 원천 기술의 무게중심이 외부에 있게 되면, 학부모와 자녀가 의존적인 성향이 강해지게 되고 ‘스스로 시작하고 세울 수 있다’는 학습의 굳센 기상이 무너지게 된다. 시키는 숙제나 해가면 되는 줄 아는 아이에게 무슨 에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각자 관심사의 중요한 부분이 공유되지 않으니 갈수록 정보의 격차가 커진다. 그 결과 부부간의 대화가 적어지고 서먹해지는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한국가족치료학회에서는 2010년에 부부의 대화 정도와 자녀 성적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학술 자료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가족의 친밀감이 클수록 안정적인 심리상태에 기초한 에너지가 발휘된다는 얘긴데, 눈앞의 조그만 효율성을 찾다가 중요한 핵심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중앙일보

남양주 덕소고 교사. 23년 차 베테랑. 한문 교사이자 1급 학습 코치 및 전문상담교사. 취미이자 직업이 학생 상담. 1000여 명의 학생의 학습 심리 테스트를 진행했다. 자기 주도 학습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학교에서 ‘자기 주도 학습 클리닉’과 ‘학종내비게이션’(학종 지도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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