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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통합당 친이·친박 계파 싸움이 사라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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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수장 중진 의원들 총선 탈락 후 ‘무계파 시대’ 도래


20대 국회에서 한 미래통합당 의원은 의원 총회를 앞두고 당 중진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 의원은 친박계로 분류됐다. 전화를 건 중진 역시 친박이었다. 전화의 내용은 의총에서 친박의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비박(非朴) 쪽 역시 초·재선 의원을 앞세우기는 마찬가지였다. 의총에서는 친박의 목소리와 비박의 목소리가 사사건건 부딪쳤다. 초선 모임에서도, 재선 모임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중진들이 초·재선 의원을 앞세워 일전을 붙는 식이었다.

하지만 4월 총선 이후 통합당에서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계파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예측하지 못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한 통합당 의원은 “예전에는 의총에서 발언자를 보면, 발언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면서 “친박이면 친박 쪽의 주장을 했고, 비박이면 비박 쪽의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하지만 21대 국회의 당선인 총회와 연찬회에서는 어떤 발언자가 어떤 내용의 발언을 할지 미리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의원은 21대 국회에서의 원내 전망에 대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전혀 종잡을 수 없게 됐다”면서 “지금으로서는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내 친이와 친박이 사라졌다. 총선 이후 첫 선출직 선거에서도 계파 대결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 친이계였던 주호영 의원과 친박계였던 권영세 의원의 대결이었지만, 계파 대결 양상으로 가지 않았다. 주호영 의원은 러닝메이트인 정책위 의장 후보로, 친박계였던 이종배 의원과 손을 잡았다. 반면 권영세 의원은 러닝메이트로 친이계였던 조해진 의원과 연대했다. 예전에 당을 갈라놓았던 친이·친박의 경계가 무색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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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당선인들이 5월 22일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당선인 워크숍을 마친 뒤 ‘익숙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펼쳐나가겠습니다? 현수막을 들고 국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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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갈등 도지면 다시 몰락” 공감대

선거 결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지만, 누구도 친이계의 승리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84명의 미래통합당 의원(미래한국당과 통합 전 의석) 중 절반에 가까운 40명이 초선이었다. 이들은 친이·친박의 영향권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을 놓고도 벌어진 찬반 공방에서 친이·친박 계파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총선 직후 김종인 비대위를 찬성한 중진 중에는 친이와 친박이 각각 있었다. 김종인 비대위를 반대한 중진 중에서도 친이와 친박이 각각 포진했다. 특정 사안을 놓고 친이와 친박이 갈라진 20대 이전 국회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원내의 한 핵심인사는 “친이·친박이라는 계파는 계파 수장이었던 중진 의원들이 21대 국회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됐다”고 해석했다.

통합당 내부의 친이·친박 갈등은 2007년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처음 나타났다. 이명박 후보 캠프와 박근혜 후보 캠프가 격돌했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예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라는 계파에는 지역적 특성이라든지 이념적 특성이 있었지만, 순전히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캠프 간 갈등이 친이·친박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고, 이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후에도 양 캠프 간 앙금은 가라앉지 않고 갈등은 계속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계가 공천권을 잡고, 친박계에 불이익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박근혜 비대위가 공천권을 쥐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오히려 친이계가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친박계의 박근혜 청와대와 비박계의 김무성 당 대표가 일전을 벌였다. 김무성 전 당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의 중진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원조 멤버’였으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사이가 멀어져 비박으로 분류됐다. 공천에서의 계파 갈등은 결국 제1당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친박과 비박이라는 계파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대거 21대 국회로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통합당의 한 인사는 “상도동·동교동계처럼 친이계와 친박계가 1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가 사라진 공간에는 향후 어떤 권력 구도가 형성될지 예측할 수 없게 됐다. 통합당으로서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무계파 시대’다. 한 중진 측 인사는 “다시 계파 갈등이 도진다면 몰락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당내에서 이뤄져 있다”면서 “따라서 모든 것은 사안에 따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양수 통합당 의원은 “예전에는 중진들이 주장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지만, 앞으로는 합리적인 의견을 따라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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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오른쪽 두 번째)가 5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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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주도권, 일단 김종인 비대위에

일단 권력의 주도권은 김종인 비대위에 넘어갔다. 김종인 비대위는 젊은 세대 중심, 경제민주화 정책, 중도층 확장이란 목표를 내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이에 걸맞은 인사들이 당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일단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개혁에 힘을 보태는 김종인계가 자연스럽게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이번 총선 참패로 보수진영에서는 개혁하지 않고서는 정권을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졌다”며 “김종인 비대위에 보수 개혁을 맡기고 지켜보자는 흐름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계파 중진과의 네트워크가 중심이었다면,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는 의원 개개인의 정책 능력과 개인기가 당내에서의 존재감을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종인 비대위 중심인물들이 친이·친박과 같은 굳건한 계파를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음표가 붙는다. 김종인 비대위가 내년 4월까지라는 한시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계파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김종인 비대위의 임기인 내년 초에 이르면 유력 대권주자가 부각될 것이고, 그 후보를 중심으로 새로운 계파가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한 소그룹으로는 유승민계가 눈에 띈다. 새보수당이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통합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유승민계 후보들이 비교적 많이 공천됐다. 이들 중 10여 명이 당선됐다. 당내 한 인사는 “유승민계는 친이·친박과 같이 공고한 네트워크를 가진 계보가 아니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바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차기 대선주자감으로 원희룡 제주도지사, 홍준표 의원(무소속),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정욱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거론된다. 이들 예비 대선주자 역시 당내에서는 계보를 형성할 만한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장성철 소장은 “대선주자 주변으로는 아직 소수 그룹이 난립하고 있어서 유력 주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친이·친박 이후의 무계파 시대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양수 의원 역시 “아직 대선주자들이 윤곽을 드러내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친이·친박 계파가 사라진 이후 곧바로 대선주자별로 세력을 형성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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