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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박정희 병원 데려간 김계원, 그 순간 10·26 운명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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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그때 그 목소리, 10ㆍ26 ⑦


10ㆍ26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행보다. 그는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경호실장을 암살한 뒤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체포됐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당시 김 전 부장이 육군본부 대신 자신이 조직을 장악한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10ㆍ26의 운명도 바뀌었을 것이라고 본다.

궁정동 안가의 경비는 전적으로 중앙정보부의 관할이었기 때문에 김 전 부장은 대통령 암살의 책임을 차지철 전 경호실장에게 돌리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맞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부장에게는 그만큼 치밀한 계획이 없었다. 그는 행선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의견을 듣고 육군본부로 향했다. 그가 그곳에서 보안사에 의해 체포된 것은 불과 몇 시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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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빠른 조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궁정동 안가의 피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김계원 전 비서실장이 변수가 됐다. 홀로 궁정동 안가에 남겨진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의 시신을 국군서울지구 병원으로 옮겼다. 그런데 이 병원은 보안사 영내 있었다. 김병수 당시 대통령 주치의는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한 뒤 우국일 보안사 참모장으로부터 누구의 시신인지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고 진술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훗날 법정에서 “각하를 병원으로 후송한 것을 언제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며 “(병원 후송 여부를 물어봤다면)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엄청난 일을 하기는 해놨는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순간에 갈팡질팡하다가 조금 시간이 늦었는데 또 그것도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번 혁명 실패는 김계원 실장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부장은 “난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놨다. 20년 내지 25년 앞당겨 놨다 하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지만 치밀한 준비가 없었던 10ㆍ26은 또 다른 군사정부로 이어지는 길목이 됐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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