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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응답하라 1991…양현종vs소형준이 소환한 선동열vs김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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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왼쪽부터 선동열, 양현종, 김원형, 소형준. 스포츠서울 DB



[수원=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1991년 8월 14일 광주 무등구장.

홈팀 해태와 원정팀 쌍방울의 더블헤더 2차전이 펼쳐진 날이다. 이날 무등구장에선 보기드문 명품 투수전이 펼쳐졌다. 해태의 선발 투수는 당대 최고의 투수로 군림한 선동열이었고, 쌍방울은 갓 프로 무대에 데뷔한 김원형을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최고 에이스와 루키의 맞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커리어로 봤을 때 선동열의 우세를 점치는 건 당연했다. 또 김원형은 그해 4월 26일 전주 태평양전에서 데뷔 첫 승을 최연소 완투승으로 달성한 뒤 프로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9연패 늪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만난 상대가 선동열이었다.

하지만 경기는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연패 중에 당대 최고의 투수를 만나 긴장할 법도 했지만 김원형은 주눅들지 않았다. 해태 강타선을 상대로 최고의 피칭을 했고, 결과는 예상을 깨고 쌍방울의 1-0 승리로 끝났다. 김원형은 9이닝 2안타 10탈삼진으로 완봉승을 거뒀다. 훗날 주형광(롯데)에 의해 깨지긴 했지만 당시 최연소 완봉 기록이었다. 이날 선동열도 9이닝 5안타 10탈삼진 1실점으로 명불허전의 피칭을 뽐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최고 에이스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 김원형에게로 쏠렸다. 무결점 명품 투수전이 펼쳐진 결과 이날 경기는 불과 1시간 38분만에 막을 내렸다. 해태 소속으로 해당 경기를 지켜봤던 KT 이강철 감독은 “김기태 감독이 결승 타점을 때려서 쌍방울이 이긴 경기로 기억한다. 당시 해태 타자들이 커브를 잘 못쳤는데 (김)원형이 커브가 좋았다. 그 경기 이후 원형이가 ‘어린왕자’가 됐고, 좋은 피칭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2020년 5월 2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KIA의 경기는 마치 선동열과 김원형의 맞대결을 재현한 듯한 선발 매치업이 성사됐다. 현재 KBO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 양현종과 프로 데뷔 첫 해부터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꿰찬 뒤 신인왕을 바라보고 있는 루키 소형준이 마운드에서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쳤다. 당연히 소형준이 승리 투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이 감독은 최고 에이스와 슈퍼루키의 맞대결에 흥미를 드러냈다. 또한 소형준이 양현종의 투구를 지켜보면서 장점을 흡수하길 바랐다. 양현종을 프로 데뷔때부터 지켜본 이 감독은 “(소)형준이가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양)현종이를 보면서 경기 운영 능력을 잘 배웠으면 좋겠다. 현종이가 등판하는 날엔 상대팀이 긴장하지 않나. 형준이도 커리어를 잘 쌓아서 지금 현종이가 풍기는 인상을 갖길 바란다”며 진심어린 덕담을 건넸다.

이어 “이겨야 하겠지만 김원형이 선동열을 상대할 때 그랬듯 못해도 본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던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투수 파트에서도 형준이에게 잘 얘기해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운드에서 좀처럼 긴장하지 않고 담대하게 자신의 볼을 던지는 소형준을 믿는 이 감독은 “지난 경기 이후 본인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구위를 보면 퀄리티스타트는 꾸준히 할 것”이라면서 “(두 투수가) 재밌는 경기를 할 것 같다”고 흥미를 보였다. KIA 맷 윌리엄스 감독도 선발 매치업에 대해 “흥미롭다”면서 “소형준은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선수다. 우리 타자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승리를 다짐했다.

소형준은 1회 프레스턴 터커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2실점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대투수 양현종 역시 3-1로 앞선 4회 갑자기 흔들리며 5실점하며 3-6으로 역전됐다. 29년전 기대치않았던 ‘어린왕자’ 김원형이 그랬듯이 소형준에게 승리의 기운이 기우는듯 했다. 하지만 너무 일찍 김칫국을 마셨을까. 소형준은 5회 수비에서 나지완에게 2점홈런을 허용하며 6-5로 쫓긴 가운데 마운드를 내려왔다. 기대했던 투수전과는 양상이 달랐고 소형준은 KT 불펜진의 호투로 다소 부끄러운 선발승을 거뒀다. 그래도 대투수와 새싹 유망주의 대결은 팬들에게 추억을 상기시키기엔 충분했다. 다시 만날 그날, 양현종의 자존심 회복투구와 한뼘 더 성장한 소형준의 멋진 승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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