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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영업 재개 하면 죽일 거야" 코로나에 날뛰는 일본 '자숙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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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예방 위해 사적 제재하겠다며 나선 일부 시민들

협박 전화, 익명 편지, 벽보로 정당한 영업까지 방해

“(영업을) 다시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느냐.”
“죽일 거다.”

지난 6일 일본 이바라키현 이시오카시 한 동물원에 걸려온 익명의 협박 전화 내용이다. 동물원 측이 슬슬 영업을 재개하겠다고 공지했다가 일명 ‘자숙 경찰’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은 것이다.

이달 초 오사카부 한 라면집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코로나로 국가가 자숙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느냐. 당신 손님이 큰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다. (가게의)번창=공해라는 것을 잊지 마.’라고 적힌 편지를 받았다. 발신자는 역시 익명이었다. 정부 요청에 따라 오후 8시까지 단축 영업을 하고도 알 수 없는 인물의 공격을 받은 가게 주인은 심각한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 점포 내 영업을 중단하고 테이크아웃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은 요미우리신문에 “주위에서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길 들었지만, (누군가가) 어디서 보고 있을지 몰라 섬뜩하다. 정말 무섭다”고 토로했다.

최근 일본에선 이렇게 코로나 감염을 예방한다며 사적 제재를 가하는 ‘자숙 경찰’들이 곳곳에서 활동 중이다. 외출이나 영업 등을 자제(자숙)해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청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고 단속하겠다며 나선 시민들이 늘면서 이들에게 ‘자숙 경찰’이란 말이 붙었다. ‘경찰’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이들의 행위는 이성을 잃은 집단 광기로 비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스크 없이 다니는 사람이나 밀집해 선 사람들에게 폭언하는 건 예사고, 동물원 사례처럼 익명으로 협박 전화를 걸어 “기분 나쁘니 문 닫으라”며 영업 중단을 강요하기도 한다.

조선일보

지바현 한 사탕 가게 주인이 지난달 '자숙 경찰'로부터 받은 경고문. '아이들 모으지마, 가게 문 닫아'라고 써 있다. 주인은 이후 불안에 떨다 불면증에까지 시달렸다고 한다. /트위터 캡처


특히 주인 몰래 상점에 협박 문구나 허위 정보를 붙이는 행위가 많다. 지난달 29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한 이자카야 문에서 ‘바보, 죽어라, 망해라’ 라고 적힌 글이 발견됐다. 이후 주인이 잠시 자숙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며 붙인 글에는 ‘그대로 (영업)그만둬’라는 답이 낙서로 돌아왔다. 주인은 가나가와신문에 “그저 빨리 코로나가 종식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공격도 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쓰치야 가즈후미(55)씨도 4월 중순 자신의 이자카야에 ‘이런 사태에 아직 영업합니까’란 종이가 붙자 ‘신념을 갖고 영업 계속 하겠습니다’라고 반박을 했지만 더 큰 반발만 불렀다. 자신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영업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당당하게 대응했는데, 바로 다음날 가게에 ‘바보(バカ)’라는 비난 문구가 붙고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고 한다.

자숙 경찰들의 폭주에 대응할 생각은커녕 피해를 보는 사람이 대다수다. 지난달 말 지바현에서 사탕가게를 운영하는 무라야마 야스코(74)씨는 가게 문에 붙은 붉은 글씨를 보고 핏기가 가셨다고 한다. ‘아이들 모으지 마, 가게 문 닫아’라고 적힌 글이었다. 이 가게는 긴급 사태가 선언되기 전인 3월 말부터 휴업 중이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자숙 경찰의 습격을 받았다. 무라야마씨는 이후 불면증에 시달리다 정신안정제까지 처방받았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최근 도쿄도 지요다구 한 당구장 경영자는 ‘자숙 경찰’의 괴롭힘이 두렵다면서 “긴급사태가 해제됐지만 다른 가게의 상황을 보고 나서 영업을 재개하겠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자숙 경찰들 때문에 ‘현외넘버사냥’이란 말도 생겼다. 일본에선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은 만큼 계속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각 지자체도 이런 기조를 유지하며 대책을 발표해왔는데, 이를 자숙 경찰들이 ‘움직여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다른 지역 번호판을 단 차량에 테러를 가하는 것이다. 주간지 스파에 따르면 도치기현 한 파칭코점 주차장에서만 요코하마(가나가와현) 번호 차량 밑에 못이 대량으로 뿌려져 있거나, 이바라키현 번호를 단 자동차 앞유리에 날계란이 깨져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홋카이도에선 다른 지역 차량 운전자가 잠시 수퍼에 간 사이에 ‘바이러스를 옮겨오지 마라’같은 종이가 붙는 일이 있었다. 도쿠시마현에선 타 지역 차량에 보복 운전을 하는 일이 문제가 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부 지자체에선 타 지역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여기 살고 있음’ 같은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나눠주기도 한다.

자숙 경찰이란 문화는 어쩌다 생겨난 걸까.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인간 심리 등을 연구하는 도시샤 대학 오타 하지메 교수(조직사회학)는 “긴 자숙 생활로 울분이 쌓인 사람들이 ‘감염 우려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면서 스트레스를 배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일본 사회가 이러한 상황에 빠지기 쉬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동질적이고 이론을 제기하기 어렵고, 목소리를 높이면 공격받는 문화, 학교나 직장에서의 왕따와 같은 구조 때문”이라고도 했다.

정의감에 나섰다고 주장해도 자숙 경찰들의 행위는 협박, 업무 방해 등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 4월 도쿄 도시마구 음식점 두 곳에 ‘영업하지 마! 불 질러버린다!’라고 쓴 종이를 붙였던 60대 남성이 업무 방해 혐의로 지난 20일 체포됐다. 남성은 “감염 공포 때문에 잘못된 정의감으로 일을 저질러버렸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도시마구청 직원인 남성은 코로나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도쿄=이태동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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