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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대항마 없는 독주…‘도쿄도지사 재출마’ 고이케 유리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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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선거 이변 없는 한 재선될 듯

아랍어 통역사에서 정계 거물로

입지전적 인물이지만 우익적 성향

중앙정치 진출 시도 3년전 실패

코로나19 사태 계기로 다시 주목


한겨레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가 지난 3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감염 폭발 중대 국면”이라고 쓴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민영 방송 뉴스 앵커 출신인 그는 매스컴 활용에 능숙하다. 도쿄/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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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관동) 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들에 대한 추도사 송부를 거부하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67) 도쿄도지사가 오는 7월 치러지는 도쿄도지사 선거에 재출마할 의사를 굳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고이케 지사에 대항할 만한 유력 후보는 보이지 않아서, 이변이 없는 한 당선될 분위기다. 우파적 성향이 강한 고이케 지사가 도지사 재선을 발판으로 일본 중앙 정치에서도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아랍어 통역사에서 앵커 거쳐 정계 거물로

<도쿄신문>은 28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고이케 도지사가 오는 7월5일 투표를 할 예정인 도쿄도지사 선거에 입후보할 의사를 굳혔다고 보도했다. 집권 자민당은 고이케 지사에 맞설 후보를 내지 않을 움직임이고,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 야당의 통일 후보 추천 협의도 난항이다.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대응과 수출규제’ 조처를 강하게 비판하던 우쓰노미야 겐지(74)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이 출마 의사를 밝혔으나, 고이케의 재선을 저지할 가능성은 낮다.

고이케 지사는 세습 정치인이 많은 일본 정치계에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20대 때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아랍어를 배웠다. 졸업 뒤 아랍어 통역으로 활동했는데,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 및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인터뷰 통역과 코디네이터를 맡은 적도 있다. 이후 일본 민영방송 뉴스 앵커로 일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1992년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중심으로 창당한 일본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정계 입문 이듬해인 1993년 호소카와는 비자민 연립정권인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켜 자민당 중심 ‘55년 체제’가 종말을 고했다. 55년 체제 종말 뒤 일본 정계는 여러 연립 내각이 들어서며 어지러웠는데, 고이케는 당적을 최소 5번 바꾸면서 여러 정당에 참여했다. 2002년 자민당에 입당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 시절에는 우정(우체국)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선거에서 떨어뜨리기 위해서 고이즈미 총리가 공천한 이른바 “자객”으로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선명한 대결 구도를 만들고 매스컴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그의 정치 수법은 고이즈미 총리의 ‘극장 정치’와 닮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 2차 집권의 계기가 된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대신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쪽에 섰고, 이후 정부와 여당 주요 자리를 맡지 못했다. 결국 2016년 8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자민당도 탈당했다. 2012년 말 2차 집권 뒤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아베 정부이지만,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자민당 추천 후보가 고이케에게 패배했다.

■ 정치적 성향은 우파적

고이케 지사의 정치적 성향은 우파적이다. 대표적으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에 대한 추도문을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각종 망언으로 유명했던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를 포함해 역대 정권에서 추도문을 빠짐없이 보냈다. 고이케의 이런 조처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들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다. 그는 간토대지진 희생자 모두를 위한 추도문을 발표하고 있으니 조선인 희생자를 위해서 따로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학살과 자연재해 피해는 성격이 다르다는 비판에 “여러 역사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한 바 있다.

또한,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이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한 사과의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도, 미국을 방문해 이를 저지하려 했다. 당시 그는 총리 보좌관 신분이었다.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며 찬성하는 입장이다.

■ 중앙 무대에서도 성공할까?

그는 지난 2017년에 중앙정치에 다시 뛰어든 적이 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2017년 9월 일본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대표를 맡은 ‘희망의 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제1야당이지만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던 옛 민진당의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는 희망의 당에 합류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러나 고이케는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지 않는 민진당 의원은 합류 과정에서 “배제한다”고 말했고 이는 자충수가 됐다. 고이케 지사는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중의원 선거에서 ‘희망의 당’은 전체 465석 중 50석 획득에 그쳤다. 그는 희망의 당 대표에서 물러났고, 중앙정치 진출 시도는 실패했다.

다만, 최근 코로나19 감염 확산 사태로 고이케 지사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졌다. 아베 정부가 경기 침체 우려 때문에 각종 방역정책에 신중했던 반면, 고이케 지사는 “도시 봉쇄 가능” 같은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긴급사태 기간에 거의 매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언론 노출빈도가 높았고, 방역에 소극적인 아베 총리와 적극적인 고이케 도지사라는 구도도 만들었다. 고이케 지사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향후 일본 중앙 정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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