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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정희 암살’ 김재규 유족 40년 만에 재심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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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40년이 되는 올해, 10·26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합니다. 유족이 재심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하고자 하는 바는 ‘판결’이기 보다는 ‘역사’입니다. (중략) 재심 과정에서 10·26과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논의의 수준이 진화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유족 대표 김성신씨)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유족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김재규 유족과 김재규 재심 변호인단은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재심 청구는 김재규가 사망한지 40년 만에 이뤄졌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내란 목적 살인)로 군법회의(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하여 설치된 특별법원)에 넘겨졌다. 김재규는 기소된지 6개월 만인 1980년 5월24일 사형에 처해졌다.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재판 전 과정이 녹음된 테이프가 재심의 계기가 됐다. 유족과 변호인단은 해당 보도를 한 JTBC 기자로부터 녹음테이프를 입수·분석해 재심 근거를 마련했다. 이 녹음테이프는 보안사령부가 재판부 몰래 불법 녹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변호인단이 공개한 1심 공판 녹취록에 따르면, 재판부는 김재규 측의 녹음신청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유족 대표로 나선 조카 김성신씨는 “당시 보도는 철저히 통제됐고 10·26의 진실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나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며 “새로 발굴된 당시 자료들을 바탕으로 10·26을 역사로서 해석해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먼저 변호인단은 보안사령부가 법정 뒤에서 재판부에 쪽지를 전달하며 재판에 개입하고, 허위로 공판조서(공판 내용을 기재한 서면)가 작성되는 등 위법적으로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고 재심 사유를 밝혔다. 변호인단은 “녹음테이프 녹취록을 받아 검토한 결과, 보안사령부가 쪽지 재판을 통해 재판에 개입한 사실, 공판조서가 김재규가 발언하거나 재판에서 진행된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했다.

이날 변호인단이 공개한 1심 공판기일 녹취록을 보면, 김재규의 부하였던 박흥주 대령 변호를 맡은 태윤기 변호사가 ‘쪽지 재판’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나온다. 태 변호사는 “M16을 거총한 군인들이 경계하는 삼엄한 군법회의에서 계속 해서 쪽지가 날아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비상계엄하 단심을 받아야 하는 박 피고인을 위해서 위헌 여부 제정 신청을 했던 것인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짓밟혀버렸다”고 변론했다.

변호인단은 공판조서도 허위로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이 공개한 1심 공판기일 녹취록에 따르면, 재판부가 “어제 피고인들이 퇴정하면서 유혁인(당시 청와대 정무1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는데 그 요지를 알려드리겠다. (중략) 피고인들에게 각별히 불리한 증언은 없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즉 피고인이 퇴정한 뒤 증인신문이 이뤄진 것이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에 대해 반박할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위법한 절차 진행이다. 하지만 이날 변호인단이 공개한 공판조서에는 “(관계인이) 별 의견 없다고 하다”라고만 기록돼 있다. 변호인단은 “이와 같이 사실과 다르게 기재돼 있거나, 또는 축소돼 있거나 의미가 왜곡된 경우가 많다”며 “변호인들은 공판조서를 1심이 끝날 때까지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김재규가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한 동기도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권총으로 암살할 당시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말했고, 김계원 실장을 팔로 치면서 “각하를 똑바로 모십시오, 이 버러지 같은 친구”라고 말했다고 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하지만 범죄사실에는 이 같은 사실이 삭제됐다. 변호인단은 “의도적으로 살해 동기가 대국적 정치, 민주주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을 애써 지우고자 하는 의도”라며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권력 공백기에 김재규의 행위를 내란 목적 살인죄로 왜곡, 과장함으로써 정권찬탈에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김재규의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김재규 장군의 의거를 국민들 앞에 제대로 알리지 못한 점을 한탄스럽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재판 과정을 전부 녹음한 테이프를 입수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적어도 법적으로 ‘내란 목적’만이라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야겠다는 취지에서 재심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10.26사건 12일 뒤인 1979년 11월7일 공개된 현장검증.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해 권총 한 발을 쏜 김재규가 앞에 앉아 있던 박정희 대통령을 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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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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