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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한국, 위기는 이제부터" 하버드 경제학자 로고프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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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위기 패턴을 다룬 『이번엔 다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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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팬더믹 1차 위기에 미국ㆍ유럽보다 더 잘 대처한 건 맞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성과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아시아 국가들은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로고프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이는 아시아 각국 경제 상황이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징조”라고 지적했다. 로고프 교수는 세계적 경제 석학으로, 예일대 졸업 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하버드대의 스타 경제학 교수로 재임해왔다. 1953년생이다. 그는 '그린 뉴딜' 정책에 대해선 “원칙적으로는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로고프 교수가 하버드대 동료인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와 공저한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이 필독서로 꼽는 명저다. 경기 호황 때마다 사람들은 “이번엔 전과 달리 위기는 오지 않을 거야”라고 헛된 희망을 품지만 결국 호황의 끝은 위기라는 점을 역사적으로 실증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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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5차 비상경제대책회의' 내용을 전하기 위한 브리핑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 정책' 등으로 일자리를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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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로고프ㆍ라인하트 교수를 인터뷰하며 ‘이번 위기는 진짜로 다르다’는 제목을 붙였다. 로고프 교수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두고 “추락 속도가 전에 없이 빠르다”며 “이번 위기는 진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다르다”고 말한 것에 빗댄 제목이다. 한국과 세계경제에 대한 로고프 교수의 진단이 궁금해 e메일을 보냈고, “눈코 뜰 새 없긴 하지만 꼭 답하고 싶어 짬을 낸다”며 회신을 보내왔다. 그는 하버드대가 있는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의 자택에서 e메일과 화상으로 업무를 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한국 경제, 어떻게 진단하나.

A : “한국을 포함한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19 팬더믹의 1차 위기에 미국ㆍ유럽보다 훨씬 더 잘 대처한 건 맞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성과일 뿐이다. 아시아의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매우 높은데, 앞으로 다가올 팬더믹으로 인한 위기에서 이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수출은 두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어려워질 텐데, 경기 회복이 더딘 속도로 이뤄질 것이라는 이유와 그 과정에서 각국이 보호주의를 채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이제 다음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해외가 아닌 국내로 눈을 돌리는 상황에서 재편될 세계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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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미국 경제도 강타했다. 지난 3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주정부 취업센터 앞에서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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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처럼 토네이도 폭풍에 휘말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는데. 폭풍은 언제쯤 끝날까.

A : “중요한 건 토네이도가 도로시의 집을 어디에 데려놓을지다. 코로나19가 세계화의 전진과 수많은 장기 거시경제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건 분명하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세계화의 후퇴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인플레이션과 플러스 금리의 기조가 뒤바뀔지, 경제성장률은 얼마나 떨어질 것인지, 각국 정부가 직면한 포퓰리스트 정책에 대한 압박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 자체가 바뀔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Q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 등은 ‘V자 반등’과 같은 급반등이 3분기부터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A : “V자 반등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 앞에 닥친 깊은 경기 침체의 골에 있어서, 단순한 경제성장률을 분석하는 건 아주 훌륭한 도구는 못 된다. 경기 침체에 진입하기 전의 1인당 국내총생산 수준을 회복하는지가 유효한 척도가 된다. 설사 3분기의 경제성장률이 V자처럼 반등한다고 가정을 해보더라도 이는 가짜 성장이다. 이미 경제가 50% 곤두박질을 쳤다고 가정할 때, 그 다음에 25% 반등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가장 중요한 건 이제 팬더믹이 엔데믹(endemicㆍ풍토병)으로 진화했다는 것이고 백신 개발이 되기 전 2~3차 감염 확산이 있을 거라는 점이다. 일상생활이 재개된다고 해도 예전과는 다른 형태로 재개될 것이고 중소기업들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다. 세계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개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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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업률이 지난달 14.7%로 급등했다. 5월 실업률은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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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상황 악화시킬 수도



Q :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Fed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의 역할론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A : “Fed는 지금까지는 영웅과 같은 역할을 해냈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인데, 이 팬더믹으로 인한 위기가 더 오래가고 더 힘들어진다면? Fed와 ECB 모두 정부 당국자들이 바라는 수준의 조치들을 해낼 도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물론 경기부양책은 필수고, 더욱더 큰 규모로 해야 한다. 하지만 큰 정부의 과도한 지출에 수반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의 비정상이 뉴노멀이 되지 않고 과거의 정상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일이다.”

Q :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진단은.

A : “미국은 올해 대선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해외 상황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팬더믹 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 하다. 미국의 융통성 있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때에 그렇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해오던 역할을 벗어났고, 재선된다면 상황은 악화일로일 것이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미국의 역할을 회복시킬 수는 있겠지만,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은 여전한 문제로 남아있다.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끄는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이 트럼프와 똑같은 방식의 반(反) 세계화 기조를 선호하는 것도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샌더스 측의 정책은 사실 트럼프와 똑같다. 겉만 더 번지르르할 뿐이다.”

Q :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식 뉴딜 정책’과 ‘그린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A : “관련 정책의 세부적 내용의 뉘앙스를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기에 딱 잘라 분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볼 때, 한국과 같은 고도로 성장한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 동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불평등 이슈와 기후변화 분야에서 방법을 찾은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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