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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방위비 잠정타결안’ 뒤엎은 美… 韓 “지금 수정안 내면 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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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동맹관계 최대 난제로 부상 / 2년간 줄다리기 끝에 올해 3월 ‘돌파구’ / 매년 13% 인상·5년 후 13억弗 합의점 / 트럼프 “내년부터 13억弗” 고집에 불발 / 美 “우린 유연성 보였다” 증액 압박 계속 / 한국 “지금 상황 먼저 반응해선 안 돼” / 무급휴직 주한미군 지원… 장기전 준비 / 양국 우호관계는 여전… 변수는 트럼프

세계일보

방위비 협상이 2020년 한·미관계의 최대 난제로 부상했다. 지난 3월 말 실무진 간의 ‘잠정타결설’이 흘러나오며 약 2년간의 지지부진했던 여정에 돌파구를 찾은 듯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면서 이제는 출구를 찾기 어려워졌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지금으로선 말 그대로 꽉 막힌 상태”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근로자들의 무급휴직 사태도 계속될 전망이다. 더 근본적 문제는 앞으로 양국 동맹을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다.

◆트럼프가 돌려세운 협상, 실무진도 당혹

지난 4월 초 양국 협상단이 ‘잠정타결’까지 갔던 안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돌려세워진 이후 미국 정가에서는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클라크 쿠퍼 미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은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매우 유연했다”며 한국 정부도 ‘유연성’을 발휘하라고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제시했던 50억달러에서 대폭 줄어든 현재의 안은 미국의 ‘유연성’이 발휘된 결과라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에게 상당한 돈을 지불하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로선 당혹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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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만난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기자들과 문답을 하던 도중 방위비 협상과 관련, 한국이 상당한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양국 협상단이 합의한 잠정타결안에 따르면 매년 13%를 인상하고, 5년 후 13억달러가 최종 인상액이 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안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으로부터 보고받은 뒤 13억달러를 당장 내년에 인상하고, 단년 계약을 체결해 내년에 또 협상을 하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진 안을 완전히 무위로 돌리고 새로운 패를 던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일반적인 외교 관례를 한참 벗어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 행동’으로 제임스 드하트 대표가 이끄는 미국 실무진으로서는 자국 정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도 모른 채 협상에 임한 셈이 됐다.

◆“지금 받아들이면 굴복”

정부 내에선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반응해선 안 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공정하고 합리적인 분담’을 주장하면서 정부 내에선 어느 정도의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없지 않았지만, 이미 한번 합의 수준까지 갔던 안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돌려세워지면서 분위기는 더 냉각된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인 분담 수준’을 강조해 온 강경화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에 출석해 ‘13% 인상안’에 대해 “그 액수가 우리로서는 가능한 최고 수준의 액수였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는 “협상을 먼저 깬 것은 미국인데 우리 수정안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안을 내놓는 것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가 굴복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지금으로선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상 초유의 무급휴직 사태를 맞고 있는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생계지원금을 지급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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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의 상징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액수를 일부 조정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더 들어주는 모양새를 만들고, 대신 ‘실리’를 취하자는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액수 조정에 유연성을 발휘하는 대신 전략자산 운영 결정권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 사이에는 한국이 그간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안보 비용을 절약해 왔다는 인식이 없지 않다. 하지만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맹을 강조하는 현 정부로선 더 이상의 ‘양보’는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만 정부가 협상이 공식화되기도 전 협상 결과를 일부 언론에 알리며 성과를 성급하게 공유한 것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미 우호관계 이어가지만…변수는 트럼프

양국 정부는 순탄치 않은 방위비 협상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동맹은 튼튼하다는 점을 연일 강조한다. 방위비 문제로 양국 동맹에 금이 가는 모양새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우리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이후 미국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11일 미국에 단일 국가에 대한 지원으로는 최대 규모인 마스크 200만장을 미국 연방 재난관리청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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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사와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가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6차 회의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미국이 주한미군과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또 지난해 한국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때와는 달리 워싱턴 조야에는 방위비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공감대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방위비 인상을 대선 정국에서 큰 치적으로 삼으려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큰 변수다. 이미 ‘돈 문제’로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양국이 변화하는 주한미군의 성격,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과 맞물려 향후 동맹관계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도 숙제로 남는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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