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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대통령 전용기 이번엔 장만하나 "보잉 등에 자료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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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통령 전용기 구매를 염두에 두고 주요 항공기 제조사들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 시도됐다가 번번이 무산된 '한국판 에어포스원' 구매를 현 정부 임기 내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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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가의 에어포스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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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보잉과 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조사들에 대통령 전용기에 적합한 기종 등에 대한 자료를 비공개로 요청했다.

정부 관계자는 “구매와 임차를 비교했을 때 장·단점, 기종별 안전성과 가격 효율성 등에 대해 내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구매 쪽으로 상당히 기운 상태”라며 “현재 전용기인 B747-400 외에 B747-8은 물론 B777, A330 같은 중형기 기종 등을 공군 1호기 검토 대상으로 올리고 관련 부처 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공군 1호기는 2001년 제작된 B747-400 기종으로,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를 빌려 개조한 것이다. 해당 전용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2월 5년간 1157억원에 장기 임차 계약으로 도입됐고, 2015년에도 5년간 1421억원에 재계약이 이뤄졌다. 예정대로라면 2020년 3월 계약이 만료됐어야 했지만 새 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지금은 2021년 3월까지 1년간 계약이 연장돼있는 상태다.

정부가 구매에 무게를 두면서 향후 5년간 임차 사업자를 구하는 작업도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6차례, 올해 1차례 등 총 7차례 실시된 ‘공군 1호기 3차 장기임차 용역’ 공개 입찰에는 모두 입찰자가 나서지 않아 유찰됐다. 지난 18일의 8번째 입찰 결과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항공사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용기 임차 사업에 소극적이다. 군 관계자는 “앞서 7차례와 달리 이번엔 대형 항공사가 참여 의사를 표명했던 거로 안다”며 “정부 내에서 구매 방안이 논의돼 개찰을 미뤄두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2021년 3월 만료되는 대한항공과의 임차 계약을 1년씩 연장하면서 구매를 추진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전용기 입찰 등 제조사 선정에 1년, 실제 제작에 2~3년이 각각 걸리는 점을 감안해서다. 또는 5년 정식 임차 계약을 다시 하고 이 기간 내 구매를 차근차근 추진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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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공군 1호기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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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 안팎에선 국격과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이제는 대통령 전용기를 보유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 국가는 정부 전용기를 여러 대 보유·운용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전용기 구매가 더 효율적이다. 실제 이번 3차 장기 임차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3057억원이다. 임차 기종의 교체 등 여러 요소가 맞물리면서 1157억원에 계약한 1차 임차 사업 때보다 비용이 3배 가까이 늘었다.

항공업계는 구매가 이뤄질 경우 전용기 가격을 포함해 조종사 등 승무원 인건비, 각종 추가 장비 비용 등을 더하면 25년 기준으로 대략 1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한다. 2011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전용기 도입이 전세기 임차보다 경제성이 높다”고 주장한 데 이어 국회예산정책처도 “향후 25년간 운용을 가정하면 구매가 임차에 비해 4700억원이 절감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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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를 태운 에어포스 원이 2017년 경기 오산공군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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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정부가 구매 기종으로 현재 보유 기종인 B747 대신 B777을 도입하는 방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당초 정부는 단종 수순을 밟고 있는 현재의 B747-400 대신 새 전용기 기종으로 규모가 크고 비행거리가 긴 B747-8을 선호했다고 한다. 특히 B747-8은 엔진이 4개이기 때문에 1개가 꺼지더라도 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B747-8을 수용할 수 있는 공항이 전 세계에 많지 않고, 대당 가격이 1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형기 도입 가능성이 더 크다.

군 관계자는 “B747이 엔진 4개(사발기)를 달고 있어 안전성 측면에서 선호가 높았다”며 “하지만 B777과 같은 엔진 2개의 쌍발기 역시 장기간 운용되면서 연료 효율성은 물론 안전성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해 B747에서 B777로 총리 전용기를 교체한 바 있다.

전용기 구매에 국회 동의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거대 여당이 등장하는 등 정치적 조건이 갖춰진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국회에 전용기 구매 예산을 요청했지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명박 정부에선 거꾸로 한나라당이 대통령 전용기 구매를 추진했지만,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혔고, 이후 보잉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바람에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출범 초 전용기 구매가 논의된 적이 있다. 2018년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예전에도 이 문제를 몇 번 다뤄봤는데 국회에 오면 정쟁의 문제가 된다”며 “검토해보고 조용히 국회와 의논해 보겠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총선 후 정치 지형이 바뀐 상황에서 과거에 비해 전용기 구매 논의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탈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야권이 어려운 재정 상황 등을 이유로 신중론을 펼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6% 가까이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용기 구입에 국민 여론이 동의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실제 2006년과 2008년 전용기 구매 추진이 무산됐을 때도 국회 예산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이 같은 반대 논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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