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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4중 차단 효과…마스크, 이타적 생활백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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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본 마스크 착용 전과 후

한겨레

마스크는 감염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뿐 아니라 잠재적 감염자일 수 있는 나로부터 다른 사람을 보호해주는 도구다. 지난 20일 오랜만에 등교한 서울 양천고등학교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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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방울의 위험

30% 넘는 무증상 감염자 비율

초기 바이러스 복제 가장 활발

1분 말할때 바이러스 침방울이

1000개 이상 8~14분 공중 부유

“모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라.”

지난 14일 미국의 보건 과학자와 전문가 100명은 공동으로 미국 주지사들에게 이런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의료용 마스크뿐 아니라 스카프, 두건, 티셔츠, 심지어 종이타월까지 모든 얼굴 덮개가 코로나19 확산 차단에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전폭적인 마스크 지지 선언이라 할 만하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감염병) 대책에서 마스크의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마스크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던 서구에서도 속속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태도가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 높은 무증상 감염자 비율이다. 대략 30%를 웃돈다. 중국과 이탈리아 사례 연구에선 감염자의 거의 절반이 무증상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코로나19는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감염 초기에 바이러스 복제가 가장 활발하다. 독일 연구진은 감염 후 1~5일에 정점에 이른다는 걸 확인했다. 바이러스 검출량이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최대 1000배가 넘었다. 또 이전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표면이 끈적해 세포에 더 잘 달라붙는다. 인간이 방심하는 틈을 정확히 파고드는 노련한 번식 전략이다. 그 위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3월 미국 워싱턴주 한 합창단의 집단감염이다. 전체 단원 61명 중 53명이 감염된 이 사건은 한 사람에서 시작됐다. 당시 합창단 연습 시간은 2.5시간이었다. 과거 경험에 비춰 무증상기의 전염에 부정적이었던 보건 당국의 허를 찌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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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오를쪽은 마스크를 쓴 채로 `건강하세요'(stay healthy)라고 말할 때 입 밖으로 나오는 침방울을 레이저광으로 관찰한 모습.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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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면

① 큰 침방울은 직접 차단해주고

② 공기 흐름 바꿔 멀리 못 가게

③ 습도 높여 부유 시간 줄이고

④ 빠져나가는 공기 10%로 줄여

코로나19의 가공할 전파력은 기침, 재채기뿐 아니라 일상 대화 중 배출되는 침방울(비말)에도 주목하게 했다. 미국 국립보건원과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이 위험의 실체를 밝혀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커다란 밀폐상자 안쪽으로 `건강하세요'(Stay healthy)라고 25초간 반복해서 말하도록 주문했다. 그리곤 입 밖으로 나오는 침방울을 레이저광으로 관찰했다. 침방울은 나오자마자 수분이 증발하면서 크기가 처음의 20~34%로 작아졌다. 이를 비말핵(에어로졸)이라고 한다. 크기가 작아지면 낙하 속도도 떨어진다. 이는 공기 중 떠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걸 뜻한다. 실험 결과 그 시간은 8~14분(평균 12분)이었다.

소리가 크면 배출되는 침방울 수도 많아지지만, 같은 크기 소리라도 음의 성질에 따라 침방울 생성력에 차이가 난다. 유시데이비스 연구진은 모음 이(i)는 아(a)나 우(u)보다 더 많은 입자를 배출하는 걸 확인했다. 공기 통로를 막았다가 열면서 내는 파열음(g/d/b, ㄱ/ㄷ/ㅂ)이 포함된 2음절어는 공기 통로를 좁혀서 내는 마찰음(s/h/f, ㅅ/ㅎ)보다 많은 입자를 만들어낸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1분간 말할 경우 8분 이상 공기 중에 부유할 수 있는 바이러스 함유 침방울이 1000개 이상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공기전파를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다른 사람의 호흡기관 안으로 들어가서 2차 감염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양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바이러스는 에어로졸 상태로 최소한 3~16시간 감염력을 유지한다는 연구도 나왔다. 유람선이나 콜센터, 식당 등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잇따르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들이다. 에어컨, 선풍기를 틀거나 바람이 부는 야외공간이라면 날아가는 거리와 떠 있는 시간은 더 확대된다. 키프로스 연구진 실험 결과, 보통 걷기 속도인 시속 4㎞의 바람에도 침방울은 5초 안에 6m까지 날아갔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면 사정이 달라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입자의 크기는 0.1마이크로미터를 조금 넘는다. 마스크 구멍은 이보다 훨씬 크다. 보통 0.4마이크로미터 이상만 걸러낼 뿐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침과 섞여 배출된다. 마스크를 쓰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침방울은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 마스크는 공기 흐름도 바꿔준다. 인도 과학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침방울이 기류를 타고 5m나 날아가지만, 마스크를 쓰면 1.5m 이내서 바닥에 떨어지는 걸 확인했다. 마스크는 또 입과 마스크 사이의 공기 습도를 높인다. 습한 공기는 증발을 막아 침방울이 비말핵이 되는 걸 방해한다. 인도 연구진 실험에 따르면 입과 마스크 사이 틈을 뚫고 나오는 공기는 10% 남짓이다. 바이러스 묻은 침방울이 확산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든다. 마스크 하나에 4중 차단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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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할 땐 4만개, 기침할 댄 3천개의 침방울이 튀어나온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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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호하는 건강 용품 넘어

타인 보호하는 배려의 도구로

초기 연구들은 개인 보호 장비로서의 마스크 기능에 주로 관심을 뒀다.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느냐가 초점이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건, 잠재적 감염자일 수 있는 나로부터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마스크의 이타성에 눈을 뜨면 효과가 눈에 보인다. 마스크를 쓰면 20㎝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바이러스양이 36분의 1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지난 4월 나왔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를 감염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증거로 봤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면 이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확률을 낮추는 행위다.

5월 초 이태원클럽 확진자들은 이후 교회, 콜센터 등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착용한 덕에 추가 감염을 줄였다. 2003년 사스 연구에선 마스크를 쓰는 것만으로도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68%에 이른다는 걸 확인했다. 손씻기와 마스크, 장갑을 함께 사용할 경우의 차단 효과는 91%였다. 미 오리건주립대 연구진이 64개 논문을 분석한 결과, 마스크는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50~80%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시버클리 연구진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인구의 80%가 마스크를 착용하면 감염자 수를 12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대 데이터과학자 제러미 하워드는 과학언론 ‘컨버세이션’에서 “많은 연구 결과가 인구의 80%가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 확산은 차단된다는 걸 말해준다”며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마스크는 팬데믹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는 모두를 위한 생활백신이라는 얘기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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