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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르포]코로나에 조선사 매출 2배? 삼강엠앤티 '틈새공략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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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엠앤티 나홀로 성장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국내 첫 수출

벨기에·덴마크서 2800억원 수주

특수선 등 글로벌 틈새시장 공략

업계 불황 속 직원 3년 전의 2배

중앙일보

지난 21일 삼강엠앤티가 제작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이 바지선에 실려 대만으로 출항하고 있다. 사진 삼강엠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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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삼강엠앤티가 제작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이 바지선에 실려 대만으로 출항하고 있다. 사진 삼강엠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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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 빌딩' 해상풍력 구조물 첫 출항



지난 21일 오후 경남 고성군 장좌리 삼강에스앤씨 선적부두. 높이 61m의 해상 풍력발전 플랜트용 하부구조물 4개가 대만을 향해 출발했다. 20층 빌딩 높이의 구조물이 바지선에 실려 항해하는 모습은 '피사의 사탑' 4개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국내 기업이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을 제작해 수출한 건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이번이 최초다.

하부구조물은 바다 위에 풍력 발전기를 세우기 위해 땅속에 박는 지주로 '재킷(Jacket·덩어리)'이라 부른다. 내구성과 함께 갯벌을 파고 들어가는 기계장치 등을 결합해야 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날 수출한 재킷 한 개의 가격은 40억원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이보다 부피가 훨씬 큰 5000t급 화물선의 '메가 블록(배를 여러 조각으로 나눈 덩어리)'이 10억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알짜다.

부두 옆 야드(배를 조립하는 공간)엔 대만으로 갈 또다른 재킷 17개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으론 더 큰 규모의 재킷 조립이 한창이었다. 이번에 선적된 61m짜리보다 더 큰 80m다.

삼강에스엔씨의 모회사인 삼강엠앤티는 지난해 벨기에 해상풍력 기업 JDN으로부터 하부 조구물 21개를 800억원에 수주했다. 이후 덴마크 오스테드·블라터로부터 각각 1000억원의 계약을 따냈다. 이 구조물들은 벨기에·덴마크 업체들이 2025년까지 230억 달러(약 28조원)를 들여 짓고 있는 대만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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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석 삼강엠앤티 회장. 고성=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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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석(65) 삼강앰엔티 회장은 이날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국내 최초로 해상풍력 구조물을 제작해 수출했다. 지난 20년간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30년간 파도를 견뎌야 하는 재킷은 뼈대를 이루는 두꺼운 파이프인 후육강관이 생명이다. 두께 2~12㎝에 달하는 파이프로 1999년 삼강엠앤티가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삼강은 이후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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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엠앤티가 생산하는 후육강관. 고성=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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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에서 후육강관 국내 최초 생산



비철금속 기업에서 영업하던 송 회장은 1999년 삼강앰엔티를 설립하고 후육강관 제조에 뛰어들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후육강관을 신생 기업이 국산화하겠다고 하자 업계는 "그러다 망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송 회장은 뜻을 같이 하는 엔지니어들과 함께 글로벌 기업인 오사카특수강을 찾아가 어깨 너머로 보고 기계를 설계해 공장을 설립했다.

한국 조선업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가 호황이던 시절 삼강엠앤티도 후육강관을 앞세워 동반 성장했다. 빅3의 1차 밴더로서 하청받은 물량만 공급하면 먹고 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수요 부진이 이어지자 매출은 꺾이기 시작했다. 2017년 매출은 1200억원으로 2012년의 반 토막에 불과했다. 이때 "하청 업체에 머물러선 생존이 어렵다. 글로벌로 나가자"고 마음먹었다.

송 회장은 "당시 다른 중형조선소처럼 빅3의 1차 밴더에 머물러 있었다면 벌써 망했을 것"이라며 "후육강관을 앞세워 선박 수리·개조, 특수선으로 분야를 넓힌 게 살아남은 이유"라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재생 에너지가 주목을 받을 때, 해상풍력 분야에 진출한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송 회장은 "대만뿐만 아니라 일본·유럽 등에서 발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다각화에 글로벌 기업 영업을 직접 뛴 덕에 삼강엠앤티의 1분기 실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껑충 뛰었다. 분기 매출 13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70억원)보다 2배 이상 성장했다. 증권업계는 올해 매출을 지난해보다 30% 성장한 5000억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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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엠앤티 매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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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삼강에스앤씨 야드에 대만으로 수출할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고성=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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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중형 조선사로선 유일하게 고용 인원도 늘었다. 삼강엠엔티를 비롯해 2017년 STX 고성 조선소를 인수해 삼강에스앤씨로 개명한 양사를 합친 임직원은 지금 3000여 명(협력사 포함)으로 3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중형 조선업계에선 유일하게 성장하는 기업이지만 애로는 여전하다. 송 회장은 "정부는 금융권을 향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지원하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대기업이 어려우면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반면, 규모가 작은 기업은 성장을 거듭해도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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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조선 4사 매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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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조선, 틈새시장이 살 길"



지난 10여년 간 국내 중형 조선업계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도산하고 남아 있는 곳은 삼강엠엔티를 비롯한 대한조선·성동조선·STX해양조선 정도다. 이 기간 STX해양조선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전락했으며, 최근 주인이 바뀐 성동조선은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야드는 비어있는 형편이다. 2011년 4사의 매출 합계는 13조원에 달했지만, 지난해엔 1조4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중형조선의 주력 선종인 MR탱커(5만t급 화물선) 수주가 중국과 가격 경쟁력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급감했다"며 "결국 조선3사 하청을 벗어나 글로벌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경쟁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고성=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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