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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더오래]유기농은 비싸도 잘 팔려! 그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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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71)



귀농·귀촌을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시 생활 이후에 시골에서 지속해서 자기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경제적 활동이 전제되어야 하니 결국 귀농·귀촌은 ‘창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귀농·귀촌을 준비하고 이주하고 정착하여 사는 과정은 창업 과정에 준해 준비하는 것이 타당하다.

많은 귀농·귀촌자가 후회하는 것이 주로 토지 구매나 주택 짓기에 집중하는 바람에 농업이나 농업과 관련된 일을 찾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농업 창업과 관련한 정보 수집이 어려운 이유가 가장 크다. TV나 신문에는 성공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될 듯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패 스토리를 같이 알려주어야 시행착오를 줄일 텐데 성공사례만 나오니 아쉽다.

경기도 이천으로 이주한 젊은 40대 여성 K 씨는 귀농 6년 차지만 아직도 사업 아이템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역 특산물인 쌀 가공사업을 하고 있지만, 워낙 경쟁이 심해 매출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최근에 유행한다는 수종을 심어 보았지만 키우는 데 오래 걸리고, 막상 수확 시기가 되니 수요가 시들해져 판로 찾기가 쉽지 않아 낭패를 보았다. 그나마 쌀 가공식품 만들기와 쌀 체험 상품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상반기 매출은 ‘제로’에 가까워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귀농 초기에 창업 아이템을 잘 잡았어도 시장 환경이 자주 변해 사업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 등 언론에 나온 성공 농업인을 만나 보면 다수가 방송 당시의 사업 아이템에 대한 시장 환경이 변했음을 실토한다. 기본은 농업이지만 그 속에서 변화에 대응하고 혁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창업 아이템을 선장할 때는 주관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해야 한다. 과연 이 상품이 얼마나 팔리겠는지, 기술적으로 타당한지, 소요자금은 얼마나 드는지, 수익성은 어떤지 따져 본다. [사진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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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인의 창업은 사업 아이템 탐색으로 시작한다. 탐색하며 발견한 여러 가지 사업 거리를 놓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는 자신의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고, 아이템의 사업성을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사업 아이템의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함께 조사해야 한다. 지금은 다소 시들하지만, 한동안 유망 사업이라고 했던 ‘산업 곤충’도 성공 사례만 보고 많은 농민이 뛰어들었다가 협소한 시장과 치열한 내부 경쟁에 대다수가 손을 들고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산업 곤충’ 분야를 소개한 자료를 보면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만 두드러지게 소개된다. 장밋빛 미래에 투자했지만, 그 미래가 너무 벌어 3년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당장 내 손에 들어오는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시장 개척에만 몇 년 걸리니 사업 유지가 어려운 것이다.

창업 아이템을 선정할 때는 주관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해야 한다. 과연 이 상품이 얼마나 팔리겠는지, 기술적으로 타당한지, 소요자금은 얼마나 드는지, 수익성은 어떤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인식은 어느 정도고, 사업장을 과연 내가 쉽게 확보할 수 있는지, 필요하면 돈을 빌려야 하는데 금리는 어떤지 알아봐야 한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예비 분석 과정일 수 있다. 창업 아이템이 아무리 소비자 인식이 좋다 하더라도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아침 방송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어려운 용어를 읊어대며 몸에 좋고 다이어트에 좋다 하더라도, 어느 특정 기업이 판로를 이미 선점한 상태라면 시장 진입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농작물은 한번 결정하면 몇 년간은 쉽게 바꾸지 못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창업 아이템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자. 수익성은 생산 비용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노동력과 원자재 투입 대비 이윤이 보장되는지를 보는 것이고 안정성이란 기술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있는지, 자금 투입이 적정한지, 재고 관리가 용이한지 분석하는 것이다. 대체로 쌀이나 과채류는 사람들이 꾸준히 구매하는 상품이라 판매가 용이할 수 있으나 경쟁자가 많고 가격이 높지 않다. 그리고 과다 생산이나 수입 농산물이 밀려 들어오면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그래서 특용작물을 선택한다. 그러나 특용 작물은 매우 패셔너블하다. 올해 사람들이 찾는다고 내년에 또 찾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종자 구매비나 재배 비용이 과도하게 높을 수 있다.

아무리 사업 아이템이 좋다고 해도 나 자신의 상황과 조건에 맞지 않으면 곤란하다. 예를 들면 나의 건강과 의지력, 모험심, 집념, 책임감, 창조성 등과 같은 선천적 자질과 아이템의 궁합이 맞아야 하며, 지식과 경험, 사회적 지위와 같은 후천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소규모로 가족끼리 할 것인지, 여러 명이 모여 창업할 것인지 규모를 보고 경영능력과 서비스 능력도 고려해야 한다. 사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이 농산물 판매 매장을 내거나 체험 관광 사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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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도 경제적 활동이 전제가 되어야 하니 결국 ‘창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귀농귀촌을 준비하고 이주하고 정착하여 사는 과정은 창업 과정에 준하여 준비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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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이 시장성 분석이다. 내가 하려는 사업 아이템의 시장 상황이 어떤지 보자. 농업의 사업아이템을 6차 산업의 기준으로 보면 1차 농산물, 2차 식품 가공 상품, 3차 서비스 상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통 1차 산업에 해당하는 농산물 원물 판매만 생각하는데 오히려 2차 산업인 식품 제조·가공과 3차 산업 분야인 관광과 유통 사업이 부가가치가 높다. 농민은 농산물을 재배해 식품으로 만들어 직접 유통할 수 있고 체험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이러한 유통 채널에 따라 전체적인 시장 규모와 특징, 소비자 형태, 제품 자체의 강·약점, 라이프 사이클, 보급률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경쟁적 요소를 분석해야 한다. 유사 상품이나 대체 상품은 어떤지, 시장점유율이 어떤지 조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판매전략 수립에 들어간다. 과거에는 양을 따지고, 현재는 질을 따지며, 미래에는 가치를 따진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미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의 매출만을 따지게 된다. 그래서 판매 전략이 필요하다.

농민은 가진 땅에서 나오는 소출량만큼 파는 것이 목표이다. 경작지가 수십만평에 달해 양적 매출이 무척 높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같은 규모의 농산물을 좀 더 값을 받아내는 질적 가치를 상승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판매처는 어디로 할 것인지, 판매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판매를 위탁하거나 도매상이나 중간상에 납품하는 것이 타당한지, 직접 매장을 내서 팔거나 온라인으로 판매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가격이 과연 적정한지도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우리나라 농산물이 제값을 못 받는다고 푸념하더라도 대다수의 소비자는 싼 제품만을 찾는다. 유기농이 좋은 줄 알면서도 저렴한 농산물을 찾고 있다. 특히 온라인 유통은 질보다는 가격이 우선순위다. 이율배반적이지만 현실이 차갑다는 것을 알고 적정한 가격을 찾아야 한다.

지금 소비자는 취향이 까다롭다고 하지만 식품에 대해서는 단순하다. 가성비라는 것을 따지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충성도가 높은 구매를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몇 달째 지속하는 이때 우리 소비자는 소량으로 구매하고, 온라인 구매를 선호하고, 웰빙을 추구하며, 식품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 이유다. 창업 아이템을 자신의 입장에서 찾지 말고 소비자 입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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