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한국경제 리마인드 20년]③Y2K와 버블의 역사, 그리고 신기술의 욕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창간20돌 특별기획/ IT업계, 미지와 조우는 '현재 진행형'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1999년 세기 말. 사람들은 Y2K(밀레니엄 버그)의 공포에 떨었다. 실제로 연도의 가장 앞자리가 ‘2’로 변하며 기존의 전자기기가 이를 인식하지 못해 세계적인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몰아쳤고 이는 섬뜩한 종말예언이 되어 대중에 소비된 바 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우려처럼 2000년이 시작되며 종말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Y2K는 우리가 미지의 시대와 조우하는 순간 느끼는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중문화현상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나아가 이후의 IT 업계 흐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이코노믹리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닷컴, 열풍에서 버블로

1997년부터 시작된 외환위기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2000년 3월, 코스닥지수는 2925.50이라는 역사적인 고점에 이른다. 1999년 초반 720에 머물렀던 코스닥지수가 그 해 7월 2000을 넘기더니 2000년에 이르러 말 그대로 수직상승을 거듭한 셈이다.

그 중심에는 닷컴열풍으로 대표되는 IT산업의 ‘위험한’ 급성장이 있다. 당장 IT산업이 전체 명목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불과 8.1%에 머물렀으나 2000년에는 3.1%, 2001년에는 12.9%로 증가했고 외환위기 이후 IT산업의 부가가치 성장률은 전체 GDP 성장률에서 무려 33% 이상을 기록했다. 마침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를 바탕으로 외국자본이 파도처럼 밀려오자 1997년 5.7%에 그쳤던 IT산업의 외국인 투자 비율은 1999년 14.8%, 2000년 17.2%, 2001년에는 42.0%로 폭등한다.

정부도 닷컴열풍에 일조했다.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미명하에 강력한 투자열풍을 방조했고 저금리 기조에 투기심리까지 발동하자 코스닥은 닷컴열풍에 빠져들었다. 이를 상징하는 회사가 솔본의 전신인 새롬기술이다. 1994년 설립된 새롬기술은 1998년 코스닥에 입성한 후 시가총액 5조원을 넘기는 폭풍성을 거듭하며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는 회사 이름에 닷컴이라는 표현만 들어가면 ‘묻지마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시기다.

균열은 2000년 3월 미국 나스닥이 휘청이며 시작됐다. IT산업 전반에 대한 회의감, 특히 수익성 창출 여부를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벌어지며 국내의 닷컴열풍은 말 그대로 허망한 버블이 됐다. IT 기업들은 줄도산 했고 산업은 크게 후퇴했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고 인터넷 산업 자체를 ‘허상’으로 보는 일각의 시각이 만들어진 것도 이 때다.

버블에서 건진 희망

닷컴열풍이 닷컴버블로 바뀌며 광란의 축제가 고통의 지옥으로 변질됐으나, 폐허에서도 희망의 싹은 돋아나고 있었다. 닷컴버블의 광풍속에서도 미래를 정조준한 IT 샛별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를 비롯한 5명은 1996년 6월 ‘항해하다’라는 영어표현 ‘navigate’에 사람을 뜻하는 ‘-er’을 더한 네이버(NAVER)를 만든다. 이들은 2000년 7월 온라인 게임업체 한게임, 검색전문회사 서치솔루션 등을 인수합병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후 몇 번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며 급성장한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의 전신인 다음 커뮤니케이션은 1995년 설립되어 1999년 코스닥에 입성, 밀레니엄의 시작인 2000년 1월 다음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후 카카오와 합병해 사명을 다음카카오, 카카오로 변경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편 닷컴버블의 홍역을 겪었던 세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닷컴버블의 폐허 속에서도 IT 업계를 이끌어 갈 보석 같은 기업들이 끝까지 살아남아 강행군을 시작한 가운데, 세계에서는 기존 PC 기반의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비전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혁명가들도 속속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 1993년 공개된 최초의 스마트폰인 IBM의 사이먼에 이어 2000년, 노키아는 세계 최초 컬러 TFT 액정을 탑재한 노키아 9210 커뮤니케이터를 가동하며 2000년대 초반 모바일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다.

그렇게 닷컴버블의 혼란과 모바일 시대의 기대감이 혼재되던 2007년 모든 사람들이 노키아의 모바일 제국에 숨죽이고 있을 때였다. 검은색 폴라티에 청바지를 입은 돌아온 CEO,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나타난다. 그는 2007년 1월 9일 맥월드 2007 행사에서 기존 출시된 스마트폰을 비웃으며 특유의 빈정거림을 숨기지 않은 후, 좌중을 돌아보며 말한다. “Today, Apple is going to reinvent the phone(오늘, Apple은 전화기를 재발명합니다)” 아이폰 1세대의 등장이다.

아이폰의 등장은 모바일 혁명의 시작과 함께 우리의 일상을 바꿨다. 국내를 기준으로 보면 닷컴버블에서 살아남은 기업들 대부분이 PC에서 모바일 중심의 플랫폼 비즈니스를 택했고, 사람들은 PC에 앉아 일하거나 영화를 보기보다 손바닥 만한 스마트폰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에 중독됐다. 통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다.

한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퀄컴과 협력해 세계 최초 CDMA 기술을 상용화시켜 IT 강국 코리아의 초석을 마련했으며 통신사들은 네트워크 기술을 발전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이후 4G 및 5G에 이르는 통신 인프라의 발전은 국내 통신사의 손에서 세계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으며, 최근 SK텔레콤은 독일 도이치텔레콤에 기술 엔지니어를 파견하며 통신 노하우를 알려줄 정도로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관련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타트업, 그리고 다시 Y2K

모바일 혁명이 시작되며 닷컴열풍에 비견되는 새로운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초반부터 배달의민족, 야놀자 등 대형 IT 스타트업들은 온오프라인의 사용자 경험을 묶으며 O2O 플랫폼 비즈니스에 돌입해 큰 성공을 거두며 지금도 순항하고 있다. 스타트업 열풍이다. 다만 2010년대 초반부터 이어지는 스타트업 열풍에 대해 일각에서는 닷컴버블의 재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스타트업 연합군으로 잘 알려진 옐로모바일이 최근 침몰하기 시작하며 이러한 공포는 더욱 배가되는 분위기다.

한편 소프트웨어, 플랫폼 비즈니스 측면을 넘어 전자와 통신 등 다양한 신기술을 묶은 온라인 사용자 경험도 발전하고 있다. 통신의 5G와 더불어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과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등 다양한 성장의 가능성은, 말 그대로 사유의 수평선을 달리고 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및 기존의 관념을 부수는 신선한 IT 경험이 체화되고 있으며 전통의 오프라인 기업들도 유통업을 중심으로 옴니채널을 가동하는 등 새로운 가능성을 자랑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의 IT가 걸어온 길이다. 닷컴버블의 폐허에서 옥석 가리기를 통해 나타난 네이버와 카카오, 이어 모바일 혁명을 거치며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발전하는 한편 그 틈새에서 나타나 어느새 주류로 올라선 현재의 스타트업들이 IT의 역사 그 자체다. 여기에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을 바탕으로 포스트 모바일 시대를 타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한편, 온라인의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풀어내려는 다양한 기술적 시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20년은 어떨까. 과거 20년은 하나의 기술 패러다임이 시대를 단편적으로 흔들었다면, 앞으로는 복수의 기술 패러다임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편 기존 전통 사업의 체질을 바꾸는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 비대면 트렌드의 확산은 이러한 극적인 흐름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망 역시 현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예측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20년이 흘렀지만, 앞으로의 20년을 맞이하는 우리가 아직도 ‘Y2K’라는 미지의 시대와 조우하며 불안해하는 한편, 펼쳐질 미래를 은근히 기대하는 이유다.

최진홍 기자

-Copyright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