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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온몸 굳는 희귀병과 싸웠다…"내가 롤모델되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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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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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인 김명지씨(23) 집에서 온라인으로 직원 연수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다. /사진제공=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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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단 한 번도 두 발로 서보지 못했다. 팔과 다리에는 서서히 근육이 빠져 움직이기 어렵고 오래 말하다 보면 금세 숨이 가빠온다. 그런데도 꾸준히 학업을 놓지 않고 대학까지 들어갔고 결국 국내 대기업 입사를 앞두고 있다.

주변에서는 "항상 당찬 친구"라고 말한다. 희귀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 김명지씨(23) 얘기다.


2살 때 희귀질환 진단…공부는 포기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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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 어머니와 함께 참여한 김명지씨(23) 모습. /사진제공=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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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은 전신 근육이 서서히 약해지고 호흡기 기능도 떨어지는 희귀질환이다. 대부분 휠체어에 의존하거나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지만 의식이나 판단력에는 문제가 없어 '잔인한 질환'으로 불린다.

김씨는 고작 2세때 병원에서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그뒤로 꾸준히 호흡훈련과 물리치료를 받아 지금은 인공호흡기 없이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정도다.

팔에 힘이 없어 책장을 넘기거나 오래 글씨를 쓰기도 어렵지만 최근 국내 보안 분야의 한 회사에 취업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그가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은 역설적으로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은 다 같이 이동할 일이 있으면 저에게 도움을 주는 대신 혼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결국 부모님이 불합리하다고 문제를 제기해서 반을 바꿨는데 나중에 제 성적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공부를 못 놓은 거죠." 이때의 기억으로 그 뒤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에 16학번으로 입학했다.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주변 도움으로 성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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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의료사회복지사 이미란씨(37)가 환자 가족과 상담하는 모습. /사진제공=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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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가장 힘든 점은 자신을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한 번은 휠체어 리프트를 탔는데 소리가 나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니 제가 도착하니까 다같이 박수를 치더라고요. 그때 가장 충격받았죠." 김씨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한 적이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괜히 주눅들고 사람들을 직접 쳐다보기도 두렵다.

다행히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기에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꾸준히 병원에 다녀 학교를 자주 빠지고 필기도 오래 하기 어려운 그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의 도움 덕이었다. 그는 친구들의 필기를 빌리거나 스터디를 꾸려 서로 대화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이어나갔다.

희귀질환 환자를 지원하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치료비를 포함해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씨는 이 재단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꿈을 키웠다. 이곳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신경근육계 환자, '호킹 졸업생'은 2012년부터 김씨를 포함해 총 33명이었다

환자 옆에서 심리·경제적 문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의료사회복지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미란씨(37)는 항상 당차고 힘든 티를 내지 않는 김씨를 보면서 더 많은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저는 명지가 입사한 것도 대견한데 명지는 '저는 그냥 한 거에요'라고 하더라고요. 대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사실이 오히려 부끄럽고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김씨도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준 선생님, 병원에서 저를 치료해주는 의료진,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후원자 등 저에게는 항상 도와주시는 분들이 옆에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다들 꿈 포기 않았으면…롤 모델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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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27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희귀 난치성 신경근육 질환 환우들의 입학·졸업을 축하하는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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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성 근위축증은 아직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김씨도 어느 순간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끌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활하는 날이 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앉아있는 탓에 항상 다리가 붓고 허리와 엉덩이의 통증이 심하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김씨의 목소리는 호흡이 달리는 듯 중간중간 끊겼다.

자칫 희망을 잃기 쉬워 보이는 환경이지만 그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에도 김씨처럼 희귀질환을 앓으며 치료받고 있는 환자가 약 50만명에 달한다. 희귀질환 환자 중 4명 중 1명은 최근 1년간 치료를 받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희귀질환 환자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희귀질환 극복의 날(5월 23일)을 맞아 김씨도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건이 좋지 않아서 공부를 포기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이만큼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더 잘 돼서 그분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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