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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유통 공룡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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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최근 미국 대형 유통회사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올해 설립 113년을 맞은 고급 백화점 니만마커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118년 역사의 중저가 백화점 JC페니도 뒤를 이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대부분 매장의 문을 닫아 매출이 급감하고 부채 상환이 불가능해졌다. 대형 의류회사 제이크루와 스테이지 스토어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코로나지만, 이들은 수년 전부터 성장을 멈추고 침체에 빠져 있었다. 아마존이 이끄는 전자상거래의 성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시장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지난 20년간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배달 서비스로 쇼핑 방법을 바꿨다.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쇼핑하던 소비자들은 이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터치해 상품을 주문한다.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특히 소비자들이 구매 과정에서 남긴 빅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매출을 창출한다. 아마존은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추가로 살 가능성이 높은 다른 상품도 추천하는데, 이 추천 영업으로 얻는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에 이른다. 심지어 소비자가 구매하기도 전에 좋아할 만한 상품을 보내 사도록 유도하는 ‘예측 배송’ 기술도 개발했다.

드물지만, 아마존의 공세에 위기를 겪다 되살아난 회사도 있다. 월마트는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하고 매장에 들러 받아 가는 서비스 등 다양한 혁신으로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코로나 속에서도 1분기 매출과 이익이 늘어났고, 20만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한국에서도 대형 유통회사들이 위기를 맞았다. 1위 롯데쇼핑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년 사이에 영업이익이 8010억원에서 4279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마트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5849억원에서 1507억원으로 급감했다. 현대백화점도 3937억원에서 2922억원으로 줄었다.

유통회사들은 수익성 낮은 매장을 폐쇄하고 있다. 롯데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 700개 점포 중에 200개를 줄이기로 했다. 이마트도 삐에로쑈핑과 부츠의 문을 닫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대신 월마트를 참고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유통회사들의 위기 인식은 본질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이들은 최근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같은 정부 규제를 꼽는다. 물론 규제가 대형마트 경영을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유통회사들이 한국과 같은 규제가 없는데도 파산하는 것을 보면 규제가 실적 부진의 핵심 원인은 아니다.

변화 속도도 느린 편이다. 롯데는 백화점, 마트, 닷컴 등 7개 브랜드를 통합한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을 4월 28일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 당일 앱과 홈페이지가 작동되지 않았다. 과거 경쟁회사를 참고해 첫날 접속자 수를 150만명으로 예상했는데 훨씬 많은 사람이 접속하는 바람에 마비됐다고 한다. 업계에선 롯데의 높은 인지도를 감안하면 더 많은 사람이 접속할 것으로 예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진통 끝에 접속은 됐지만, 이용자들은 여전히 불편을 호소한다. 경쟁사에 비해 상품이 별로 없다, 롯데닷컴에서 받던 혜택이 사라졌다, 결제 수단이 제한돼 있다, 상품 검색이 느리고 부정확하다는 말이 나온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오픈했기 때문이다.

롯데온을 널리 알리는 마케팅을 코로나가 진정된 후 하반기쯤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경영진의 판단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소비가 급증한 상황은 롯데온 같은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확대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이런 기회를 놔두고 코로나가 끝난 후에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롯데뿐만 아니다. 뒤늦게 전자상거래에 뛰어든 다른 유통회사들도 비슷한 실수를 하며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그 사이 쿠팡과 마켓컬리 등 ‘한국의 아마존’을 표방한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파격적 할인과 로켓 배송, 새벽 배송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며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이 막대한 적자를 내는데도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쇼핑의 판도를 바꾸고 이용자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기업 가치를 빠르게 향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전자상거래는 쇼핑의 주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계속 성장하고 투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은 지난 20년간 아마존을 비웃으며 변화를 거부하다 줄줄이 파산하고 있다. 국내 유통기업들도 쿠팡과 마켓컬리가 적자로 곧 망할 것이라며 변화하지 않는다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수 있다.

김종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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