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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노무현의 ‘풍수론’과 ‘여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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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야외전시장에 시민들이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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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풍수전문가 김두규 교수는 청와대 관계자들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답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거처할 사저 부지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사저 예정지는 생가 뒤 감나무밭으로 봉하산 부엉이바위가 바라보이는 곳이었다. 김 교수는 사저 건립지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옛 무덤 자리인 데다 전면의 부엉이바위가 지나치게 강하며, 집터 옆 시내에서 골바람이 분다는 세 가지 이유였다. 전통 풍수지리에 근거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예정대로 사저가 들어섰다. 노 대통령은 풍수설을 믿지 않았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당선 뒤에 추진한 행정수도 이전은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급기야 위헌 결정까지 받으면서 이전은 좌절됐다. 대신 행정수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바뀌었다. 지금의 세종시가 그것이다. 노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풍수론에 근거한 천도(遷都)와는 달랐다. 서울 인구집중 해소, 지방 균형발전 등을 고려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1990년 청와대 경내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바위글씨가 발견됐다. 청와대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명당터라는 얘기다. 그간 항간에서는 전직 대통령들의 말년이 좋지 않은 근거로 청와대 풍수지리를 대곤 했는데, 이 글이 속설을 반박하는 증거로 인용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 글씨를 보고 “천하제일복지 좋아하네. 대통령한테는 복지일지 모르겠지만 국민이 잘 살아야 복지지”라고 했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22일 밝힌 일화다.

노 전 대통령에게 청와대가 천하제일이니 아니니 하는 풍수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던 것 같다. 대신 그는 청와대 안팎을 어떻게 시민과 함께 누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시민들의 청와대 관람을 정례화했다. ‘1·21 사태’ 이후 30년 넘게 통제했던 북악산 등산로를 개방했다. 비서동을 신축한 뒤 ‘여민관’으로 명명했다. 23일은 노 전 대통령 11주기이다. 풍수의 길흉을 따지기보다 현실 속에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꿈꾸었던 그가 그립다.

조운찬 논설위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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