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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魚友야담] 얼마나 젊으면, 100살 어린 나와 말이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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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일간 혹은 주간 마감의 신문기자는 종종 불가능한 꿈을 꿉니다. 유효기간 하루를 넘어서는, 시간을 이겨내는 기사에 대한 욕망이죠.

'털없는 원숭이(The Naked Ape·문예춘추사)' 국내 출간 50주년 기념판을 읽다가 든 생각입니다. 1967년 초판이니, 영미판보다 3년 늦은 출간. 50년 전 대중과학서를 과연 지금 국내 독자들이 좋아하려나, 출판사의 고민이 있었겠죠.

저자인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올해 92세. 스물을 막 넘어서던 1991년, 김석희의 번역으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이 생각납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짝짓기·아이기르기·싸움·먹기·몸손질에 대한, 가차 없지만 해학 가득 관찰기가 거기 있었죠.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의 동물학자라면 귀환해 이런 보고서를 제출했을 것 같더군요.

이번 기념판에는 역시 동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모리스의 여러 대답 중에 반세기를 버텨낸 자부(自負)가 있더군요. 최 교수가 이렇게 묻죠. "책에서 밝힌 주장과 가설 가운데 삭제하거나 수정할 내용이 있나요?" 모리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니요. 오랜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많은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이 고전(古典)으로 남기를 꿈꿉니다. 기억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7년 전 이상문학상의 간담회 자리. 수상자는 이 상의 역대 최연소 수상자인 김애란이었습니다. 등단 12년 차, 당시 나이 32세. '최연소'의 소감을 수상자에게 물었을 때, 김애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젊은 작품은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 150년 전 고전을 읽다 보면, 이 소설을 쓴 선배는 얼마나 젊으면 백 살 어린 나랑 말이 통할까 신기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계속 젊은 작품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최연소와 고전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겹쳐지더군요. 92세 데즈먼드 모리스는 얼마나 젊으면 2020년의 독자들과 말이 통할 수 있는 걸까요. 신문기사는, 과학은, 문학은, 각자 존재 의미와 목적이 다를 겁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교집합 하나. 우리는 모두 인간을 첫 문장과 마침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100년 뒤 젊은 독자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으로, 아무튼, 이번 호를 마감합니다.

[어수웅·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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