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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인수 무기한 연기-정몽규 ‘비상의 꿈’ 끝내 포기하나

매경이코노미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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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인수 무기한 연기-정몽규 ‘비상의 꿈’ 끝내 포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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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면서 항공업계가 시끌시끌하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황이 악화되면서 정몽규 HDC그룹 회장 고민도 갈수록 깊어지는 분위기다.

HDC현산은 지난 4월 30일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일정을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부터 10일이 경과한 다음 날 혹은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명확한 인수계약 완료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앞서 HDC현산은 지난해 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 30.77%를 3228억원에 인수하기로 계약하면서 4월 30일까지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공시했다. HDC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은 구주 인수대금을 포함해 2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둘러싼 우려가 커졌지만 HDC그룹은 지난 3월 중순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 정상 추진 중’이라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코로나19 문제로 기업결합 신고 절차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었으나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고 인수자금 조달 또한 당초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HDC현산이 4월 초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를 연기한 데 이어 4월 말 예정이었던 회사채 발행 계획도 중단했다. 급기야 인수 마감 시한이 닥치자 향후 주식 취득일을 명시하지 않은 채 기존 인수 일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셈이다.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연기한 이유로 “러시아 정부의 기업결합 심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지만 항공업계 분위기는 다르다. 정몽규 회장이 사실상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미국, 중국을 비롯한 5개국에서 이미 기업결합 승인이 난 만큼 인수 의지가 있다면 굳이 주식 취득을 미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HDC그룹이 인수계약 내용을 전면 재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재계 우려에도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문제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무기한 연기 결정은 뭔가 달라 보인다. 경영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냥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담긴 듯하다”고 귀띔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매경DB>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매경DB>


▶HDC 무기한 인수 연기 왜


▷채권단 1조7000억 대출 현산엔 빚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원점으로 되돌아간 배경은 뭘까.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 불황이 장기화될 우려가 큰 데다 인수가 성사되더라도 HDC그룹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적자는 4437억원, 당기순손실도 8179억원에 달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연결 기준 영업손실을 낸 것은 2013년 이후 6년 만이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 무역갈등 등 글로벌 악재가 쏟아진 데다 LCC(저비용항공사) 공급 확대로 여객·화물 부문 수익성이 동시에 떨어진 영향이 컸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비수익 노선 구조조정 효과가 기대됐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실적은 계속 악화되는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도 흑자전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최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1조7000억원의 신규 한도대출을 의결했다. 마이너스 통장처럼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자금이다.

채권단은 앞서 지난해 4월에도 아시아나항공에 1조6000억원을 지원했는데 이번 대출로 지원 규모는 총 3조3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막아야 하는 시장성 차입금은 2조5000억원 수준. 매월 내야 하는 고정비용만 2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자금난에 처했다.


채권단은 이번 지원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가 성사되는 시점까지 아시아나항공이 재무건전성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항공업황 악화를 감안한 조치지만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혹여 HDC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면 채권단은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HDC그룹 내부 분위기는 다르다. 채권단 지원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마이너스 통장 대출이라 결국에는 새 주인 HDC그룹이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이다.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은 그대로지만 갚아야 할 부채가 늘어나 그만큼 인수 부담이 더 커졌다는 우려다.

“경쟁사인 애경그룹보다 무려 1조원 비싸게 인수대금을 제시한 만큼 HDC그룹 입장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경영을 정상 궤도로 올려놔야 하는데 경영 정상화는커녕 채권단 대출을 갚는 데 급급할 우려가 크다. 일단 인수를 미뤄놓은 뒤 구체적인 인수 조건 변경을 두고 채권단과 줄다리기에 나선 듯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 귀띔이다.

변수는 또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컨소시엄 파트너인 미래에셋이 최근 논란으로 인수전 참여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최근 중국 안방보험 소유의 미국 내 15개 고급 호텔 인수계약을 취소했다. 7조원대 대형 계약이었지만 인수 대상 호텔에 소유권 분쟁이 발생해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안방보험은 “계약을 예정대로 이행하라”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치열한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미래에셋이 1조원 이상을 투자한 프랑스 파리 마중가타워도 기관투자자를 찾지 못해 셀다운(재판매)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승자의 저주’ 우려도

▷실적 탄탄한 HDC현산 영향 관심

증권가에서도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실적이 탄탄한 HDC그룹 핵심 계열사 HDC현산이 부실 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을 경우 ‘승자의 저주’에 시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건설 경기 침체에도 HDC현산은 올해 1분기 1373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대비 35% 늘어난 규모다. 1분기 매출도 1조원을 넘어섰다. 박형렬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확정될 경우 정부 지원을 고려하더라도 차입금 증가, 항공 수요 회복 속도를 감안할 때 HDC현산 영업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HDC그룹이 만약 인수를 포기할 경우 인수금액의 10%인 계약금 2500억원가량을 날리게 된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것이 재무적으로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편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되 에어부산 등 일부 LCC 계열사를 매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에어부산 매각대금으로 자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국내 LCC 1위 제주항공조차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을 중단한 상태에서 에어부산이 손쉽게 팔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계에서는 “산업은행이 결국 아시아나항공 대주주로 올라서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다. 이래저래 정몽규 회장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8호 (2020.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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