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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뺀 물가 21년來 최저…황금연휴 지나도 소비회복 `먼 길`

매일경제 이지용,문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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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뺀 물가 21년來 최저…황금연휴 지나도 소비회복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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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發 디플레 먹구름 ◆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4일 오후 농산물 할인 판매를 실시했지만 찾는 소비자들이 없어 한산한 가운데 한 고객이 방울토마토를 고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4일 오후 농산물 할인 판매를 실시했지만 찾는 소비자들이 없어 한산한 가운데 한 고객이 방울토마토를 고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코로나19 쇼크로 지난달 소비 절벽이 본격화하면서 근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영향이 있었던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근원물가는 계절적 영향이 큰 농산물과 글로벌 가격 변동에 좌우되는 석유류 등 53개 품목을 제외한 407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핵심 물가지수다. 식료품 등을 포함한 소비자물가도 4개월 만에 다시 0%대로 주저앉았다. 이에 따라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근원물가는 작년 4월 대비 0.3% 오르는 데 그쳤다. 이는 1999년 9월(0.3%) 이후 20년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연간 수치로도 한국은행의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0.7%)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코로나19로 소비 패턴이 변한 게 물가에 영향을 미쳤다"며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외식 수요가 줄었고, 고교 2학년 무상교육으로 공공서비스 물가가 하락한 점도 낮은 물가상승률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수요와 공급 측 요인이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근원물가 상승률이 둔해진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절벽이 본격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꼭 소비해야 하는 농산물 등 식료품과 석유류 등을 제외한 다른 품목에서 소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료품 등을 포함한 소비자물가도 전년 동월보다 0.1% 오르는 데 그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하다 올해 1~3월 1%대를 회복했지만 4개월 만에 다시 주저앉는 모습이다.

이날 발표된 품목별 물가에 따르면 승용차 임차료(렌트) 비용은 전년 동월 대비 16% 하락했으며, 해외단체여행비 역시 10.1% 떨어졌다. 해외단체여행비는 조사할 수 있는 상품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가격을 조사한 2월 수치를 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입국 제한 조치가 확산되며 3월부터 해외여행 상품이 사라져 가격 조사가 불가능하다. 앞선 달 수치를 쓰는 것은 물가동향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오락·문화 물가도 2.5% 하락했다. 모든 국민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서비스 물가도 0.2%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외식 물가 상승률은 0.8%로 둔화했다. 전월 대비 외식 물가 상승폭이 4개월 연속 0%대에 머무른 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한 2012년 5월~2013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쉽게 말해 코로나19 공포 때문에 나가지 않고, 놀지 않으며, 외식도 하지 않으면서 지갑을 닫았다는 얘기다.

배럴당 20달러 수준까지 급락한 국제유가도 소비자물가 상승을 끌어내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류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7% 하락해 물가상승률을 0.28%포인트나 낮췄다. 석유류는 앞으로 물가 하락폭이 계속 확대된다면 디플레이션의 단초가 될 우려도 크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유가가 하락하면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만큼 5월 이후 통계청 물가조사에서 석유류 가격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석유류 가격을 포함한 총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지난달 크게 하락해 0.1%를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유가 추이에 따라 언제든지 마이너스로 전환될 위험이 크다.

정부는 방역체계가 생활방역으로 전환되고 개학으로 학교급식 등이 재개되면 소비자물가가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심리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물가는 1차로 소비자의 경제 여건과 심리가 개선되고, 2차로 실제 소비활동이 활발해진 뒤, 3차로 판매자가 가격을 올려야 수치가 올라가는 후행성이 강한 지표"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생활방역으로 전환이 이뤄져도 3~4월에 비해 개선되는 것이지 평상시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지용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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