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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세계읽기]다시 우한이 궁금한 건, ‘팬데믹 그 후’의 미리 보기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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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그후

경향신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커우역. 위 사진은 이용객이 전혀 없는 지난 4월7일 촬영된 것이고, 아래는 봉쇄령이 풀린 8일 사진이다. 6개의 에스컬레이터마다 이용객들의 모습이 보이지만 여전히 붐비는 수준은 아니다. 우한 |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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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비꼬던 서구 도시들

결국 우한 조치 그대로 뒤쫓아

봉쇄령 풀렸지만 이전 모습 요원


두 달 보름 동안의 봉쇄령이 풀리자 도시 곳곳에 약간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268편의 항공기와 276편의 열차가 오고 갔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마다 수백대의 차량이 줄을 지었다. 그새 신록이 돋아나고, 나무마다 살림을 불렸지만, 사람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8일 0시를 기해 76일 동안의 봉쇄령이 풀린 중국 후베이성 우한 이야기다.

떠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중앙정부가 개발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 집 주소와 최근 여행지 및 의료기록 등에 근거해 코로나19 감염 위협 여부를 알려주는 앱이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더디게 온다. 그런데 미래가 희망일까.

세상이 뒤집힌 날은 지난해 12월8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첫 확진자 발생일이다. 밀도살된 야생동물이 거래되던 화난 수산물시장에서 확진자가 나온 뒤 인구 1100여만명의 우한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월23일 전격적인 봉쇄령이 내려지자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비아냥이 서구 언론에서 제기됐지만, 밀라노와 베네치아, 파리, 마드리드, 뉴욕 등 서구 중심도시들이 우한의 뒤를 좇았다. 우한의 세계화, 세계의 우한화였다. 세계의 이목이 다시 우한에 쏠린 것은 ‘팬데믹 이후’가 궁금한 다른 도시, 다른 국가의 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주간 우한의 코로나19 확진자는 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문을 닫았고, 1급 감시체계는 계속됐다. 5만여명의 확진자와 2571명의 사망자는 가족, 친지, 동료를 잃은 시민들에게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아직도 515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제조업 중심지이자, 중국 내 9개 성과 연결된 교통의 십자로였던 우한이 ‘코로나 이전’ 모습을 되찾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상점들이 문을 열었지만, 점포 앞 매대에 야채와 술, 담배 등 물건을 꺼내놓았다. 고객들이 상점 안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운행을 재개한 버스와 지하철에도 이용객은 적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배송받은 상품을 포장했던 종이박스들이 쌓여 있다. 온라인 배송업체 제이디닷컴(JD.com)은 주문량이 2월에 비해 3배가 늘었다. 이전엔 의류와 화장품, 여행 액세서리 등을 많이 찾았지만, 이후엔 일용품과 가정용 운동기구 주문이 늘었다. 우한 내 산업 가동률은 94%에 달했지만, 제조업 회사들은 직원의 60%만 투입하면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0%의 전력만 쓰고 있다. 바이러스가 정점에 달했던 2월 한 달 동안 단 한 건의 주택거래도 없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차이나데일리는 이날 시진핑 국가주석의 ‘인민 퍼스트(people first)’ 방침을 상기시켰다.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면, 사람의 생존에 관심을 기울이며 또 그것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중국에서 치료받을 것”이라는 캐나다 감염병 전문가의 말을 전하며 ‘중국 모델’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우한 봉쇄령 해제가 코로나19에 대한 ‘인민의 전쟁’에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면서 “우한이 이기면 후베이가 이기고, 후베이가 이기면 중국이 이긴다”는 시 주석 말도 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밀라노와 뉴욕을 비롯한 각국 대도시들에서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한창인 것을 지적하면서 우한의 봉쇄 해제는 코로나19가 위험하고 거칠지만 제압될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용품 부족에 시달리면서, 우한이 거쳐온 ‘초현실적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전 세계 수억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도 했다.

우한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 접시였다. 확진자 5만여명과 사망자 2571명. 중국 전체 확진자(8만1740명)의 61%, 사망자(3331명)의 77%가 우한에서 나왔다. 숫자에 가려진 것은 개인의 삶이었다.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한 GE의 현지인 판매이사는 확진자였다. 당국이 열흘 만에 급조한 레이선산 병원에서 15일 동안 치료를 받고 나온 그는 삶의 최우선 순위를 건강과 가족으로 바꾸었다고 단언했다. 우한 봉쇄 해제는 다분히 정치적, 경제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후베이성 코로나19 방역 지휘부는 “봉쇄 해제가 방역 해제는 아니다”라면서 방역체계 1급을 유지했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주택 단지 밖으로, 도시 밖으로, 성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게 당국의 엄명이다. 갇힌 공간에 약간의 환기구를 열어놓았을 뿐 우한 주민들은 여전히 ‘진지전’에서 이탈할 수 없다.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 통합되지 않았다면 봉쇄령은 훨씬 더 오래갔을 것이다. 우한 시당국은 3월 말 현재 방역 관련 제품 및 생필품 제조업체-금융·무역 업체-일반 산업·건설업 업체-기타 업체 등의 단계별로 업무 복귀를 완료했다.

코로나19는 우한에서 출발, 중국 전역과 홍콩, 한국, 일본, 이란,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로 퍼져나갔다. 바이러스가 먼저 발흥한 지역과 주민에 대한 공포와 증오, 견제심리가 발동했지만, 선발 발흥지에서 확진자가 감소세로 돌아설 무렵 후발 발흥지에서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순서가 달랐을 뿐 한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관념이 전복되고, 각국의 기존 이미지는 전도됐다. 중국식 사회주의는 그 단점과 장점을 함께 보여주었다.

언론통제와 정보차단 탓에 작년 12월30일 처음으로 코로나19의 존재를 알린 우한의 의사 리원량이 숨진 시점은 중국 내 상황이 최악이던 때였다. 서구는 소련 공산당의 몰락을 야기한 “‘체르노빌 순간’이 시진핑에 왔다”(자밀 안데리니 파이낸셜타임스 아시아 에디터 등)면서 관찰자연했다. 하지만 곧 당사자가 됐다. 슬라보이 지제크가 르몽드 디폴로마티크 기고문에서 지적했듯이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비롯된 전염병을 막기 위해 공산주의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까지 확진자가 ‘0명’이라는 북한의 강변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 주요국에서 심각하게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체르노빌 순간’은 미·영 간 헤게모니가 바뀐 것처럼 미·중 간 헤게모니가 바뀔 ‘제2의 수에즈 순간’(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 등)으로 전도됐다.

지난 2월26일 백악관 특별 회견에서 미국의 전염병 대처능력이 세계 1위라고 떠벌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제 마스크·진단키트·인공호흡기 등 방역 3종 세트 공급 상황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보고하고 있다. 미국은 프랑스와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으로 향하던 중국산 마스크를 채가는 ‘해적국가’가 됐다. 변종 신자유주의자인 트럼프가 2조2000억달러의 부양책을 내놓았다.

서구 주요국들이 잇달아 바이러스의 숙주국가가 됐고, 국가 내 지역의 위치도 전도되고 있다. 이탈리아 국부가 집중된 북부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가 가난한 남부보다 더 홍역을 앓고 있다. 미국에선 중서부가 아닌,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이 더 큰 ‘우한’이 됐다. 9일 저녁(현지시간) 현재 미국 전체 확진자 46만1437명 중 15만9937명이, 사망자 1만6478명 중 7067명이 뉴욕시를 포함한 뉴욕주에서 나왔다. 세계화의 본산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세계화의 미래에 관한 담론을 낳는다.

각국 감염 폭발 순서는 다르지만

세계 경제 붕괴는 함께 겪을 것


각국이 코로나19에 휩싸인 순서는 다르지만, 미국에 닥칠 세계 경제의 붕괴는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는 1일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 전망률(2.5%)을 1%포인트 정도 낮춰잡았다. 각국이 내놓는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 예산이 민간부문의 소비·투자·수출 감소분을 상쇄할 것이라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서 주요 7개국(G7) 및 중국 경제의 성장률을 평균 1.2%로 잡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 일본, 한국, 미국 및 유럽연합(EU)에서 공급부문의 충격 및 유가 50% 하락 등 악재들이 성장률을 0.9%포인트 잠식할 경우다. 이 정도면 2009년 금융위기 당시의 1.7%포인트 감소에 비해 충격이 적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EU를 비롯한 주요 경제국의 경제활동 제한이 2분기 중반까지 갈 것을 전제로 잡은 예상치다. 활동 제한이 3분기로 넘어간다면 전망치는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세계무역기구(WTO)가 8일 발표한 세계무역 감소치가 13~32%로 신축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분기 전 세계 노동시간이 7%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규직 노동자 33억명의 5분의 2에 달하는 12억5000만명이 실직하는 것과 마찬가지 재앙이다. 특히 고객과 대면해야 하는 서비스 산업의 붕괴가 우려된다. 회사에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임시직 긱 노동자(Gig worker)들은 각국의 부양책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팬데믹 이후’를 둘러싸고 각국 언론과 지식인들은 저마다 총천연색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연구시간이 부쩍 많아졌을 정치학자들이 신조어 제조에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 이전 유행어였던 ‘뉴노멀’에 빗대 ‘세미 노멀(Semi-normal, 로스 도댓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라는 말도 나왔다. 최악을 지났지만 정상이 아닌, 방역-추적-검진-치료-방역의 쳇바퀴를 계속 돌려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군사력과 경제력이다. 바이러스는 총과 대포를 녹슬게 할 수도, 금융자본을 없앨 수도 없다. 세계화의 복원력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신종플루 탓에 ‘4F(식량·연료·독감·금융)의 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체를 만들어 헤쳐나갔다. 갈수록 무정부 상태 양상을 보이는 세계가 같은 방식으로 대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계는 금세 바뀌지 않는다. 모든 ‘순간(moment)’은 지나고 본 뒤 규정하는 사후적 개념의 성격이 짙다. 흐릿한 변화의 추상화를 그리는 것보다 확보 가능한 데이터를 놓고,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는 게 안전하다. 일단 쓰러진 사람부터 부축해야 한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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